행사자료

2021 춘계 석전대제 팜플렛
21/04/28 12:23:08 김정현 조회 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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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례
 
 

Ⅰ. 鄕校의 釋奠儀禮(석전의례)
 
1. 釋奠의 意義 3
2. 釋奠의 說文解字(설문해자) 3
3. 釋奠의 由來(석전의 유래) 3
4. 學校(成均館, 鄕校)에서 釋奠이 奉行된 理由 4
5. 釋奠을 仲春중춘(2월), 仲秋중추(8월) 上丁日에
奉行하는 理由(이유) 4
6. 釋奠儀式의 節次(절차) 5
 
Ⅱ. 大邱鄕校의 釋奠大祭

1. 大成殿 聖賢奉安 位次圖 6
2. 奉安二十五位 聖賢略史 7
3. 釋奠大祭 儀式의 進行過程 16
4. 文廟 拜禮 儀式 20
5. 祭需 23
6. 祭器 24
7. 陳設圖 26

人事 말씀
 
  酷寒의 땅 속에서도 새로운 生命이 움트고 꽃은 피어납니다.
暗鬱했던 지난 1年間의 코로나의 危險 속에서도 우리는 希望과 克服의 意志로 이렇게 健康한 모습으로 또 다시 새 봄을 맞았습니다.
이제 새 봄의 문턱에서 코로나 克服의 懇切한 所望을 담아 오늘 孔紀 2572年 陰曆 2月 8日 上丁日(丁卯)을 맞아 先聖先賢의 遺德과 遺訓을 崇慕하는 春季釋奠大祭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바쁘신 中에도 不拘하고 初獻官으로 參席하여 주신 蔡鴻浩 大邱廣域市 行政副市長님과 亞獻官이신 李桓範 嶺南大學校 經營戰略副總長님, 그리고 終獻官이신 裵相澤 儒林을 비롯한 내외 貴賓과 儒林 諸賢께 깊은 感謝의 人事를 드립니다.
지난 봄 春季釋奠大祭는 鄕校 600餘年의 歷史에서 처음으로 定日에 釋奠을 奉行하지 못하고 孔夫子의 忌辰日에 맞추어 釋奠을 奉行한 적이 있었습니다만 秋季釋奠大祭에서는 우리 儒林들께서는 코로나19의 防疫守則에 따라 秩序整然하고 敬虔한 마음으로 釋奠大祭를 奉行함으로서 많은 분들의 稱誦을 받은 바가 있습니다. 이는 大邱鄕校 掌議님들과 儒林께서 防疫指針에 積極的으로 協助해 주시고 몸소 지켜주신 德分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코로나 危險이 持續되고 있으며 安心할 段階는 아니기에 아무쪼록 끝까지 조심하시고 健康하시기를 빌어마지 않습니다.
大邱鄕校는 儒敎를 開創하신 孔夫子를 비롯한 顔子. 曾子. 子思. 孟子 5聖位와 宋朝二賢, 그리고 우리나라 18賢 等 25位의 位牌를 모신 儒敎 聖地로 大邱儒林의 本山입니다. 우리가 이분들을 모시고 每年 釋奠大祭를 올리고 또 초하루와 보름날에 焚香禮를 올리는 것은 儒敎의 根幹이 되는 仁·義·禮·智·信의 五常과 修齊治平의 大道를 實踐하기 위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大成至聖文宣王이신 孔夫子의 思想과 가르침은 時代와 國境을 超越한 萬古의 普遍的 眞理이며 人類의 平和와 安寧의 기틀이며 人間의 本性의 價値가 되기에 우리는 해마다 春秋에 釋奠을 奉行하며 이를 通하여 敬虔한 마음가짐을 다지고 있습니다.
儒學의 根本精神은 中庸에서 말한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라고 할 수 있습니다.
中庸에서 中은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함이 없는 것이며(無過不及), 庸은 언제나 변함없이 그것을 지키는 바른 길을 말합니다. 儒學의 窮極的 價値는 이를 通한 人間性의 實現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大邱鄕校와 儒林들이 指向하는 目標이며 이를 實踐해야 하는 責務이기도 합니다.
이를 위하여 大邱鄕校는 明倫大學의 運營을 正立하고 자라나는 靑少年들에게는 선비精神을 通한 人性敎育에 많은 努力과 智慧를 다하고 있습니다.
明倫大學의 刷新을 위하여 먼저 훌륭한 敎授님을 招聘하기 위하여 最善을 다하였으며, 교수 편성은 한 敎授님이 한 講座만을 맡으시도록 하여 훌륭한 敎授陣으로부터 多樣한 講座를 受講 할 수 있는 機會를 擴大하고, 各 講座別 受講申請과 함께 固定座席를 配置하여 安靜된 修業雰圍氣 造成이 되도록 하였으며 修了期間을 1년으로 하고 2/3이상 出席하여 受講하신 受講生들에게는 修了證을 發給하고 그 名單을 明倫誌에 揭載하기로 하여 修了生들의 矜持와 自負心을 높이도록 改定하였습니다.
그리고 每月 焚香禮에는 講座를 20分間 休講하고 受講生들이 參禮할 수 있도록 配慮하였으며 講義室에서도 拜禮에 參拜토록 하였습니다.
이러한 方針으로 지난 2日 開講한 明倫大學은 現在 12개 講座에 500餘名의 受講生들이 登錄하여 開講式과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成功的으로 講義가 始作되었습니다.
또한 儒學을 後學들에게 傳承하고 未來의 儒林을 키우기 위한 ‘선비精神을 통한 인성교육’을 위하여 大邱市敎育廳과 MOU를 맺고 大邱市內 初·中學生을 對象으로 한 ‘선비精神 體驗敎育’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6,500여명이 申請하여 4월부터 實施할 準備를 다하고 있습니다. 지금 씨앗을 뿌리지 않으면 훗날 儒學의 열매는 영영 이 땅에서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우리 先祖들이 목숨 걸어 지켜 온 선비精神은 우리 民族의 正體性으로 자랑스럽게 繼承發展되어야하기 때문에 마땅히 大邱鄕校는 그 中心에서의 役割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大邱는 예로부터 鄒魯之鄕으로 嶺南 禮學의 中心에 있었습니다. 大邱鄕校 禮節大學은 名實相符한 大邱地域 禮節敎育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目標로‘國家認證 禮節師資格證 發給機關’으로 2019年 設立되었습니다.
第1期를 修了 後 지난해는 예상치 못한 코로나로 因하여 開講하지 못하고 代身 12月부터 1期 禮節師資格取得生을 中心으로 한 深化課程을 運營하여 專門性을 높이는데 크게 寄與했다고 생각됩니다.
今年 第2期 受講生 募集에는 50名을 定員으로 하였으나 80餘名 以上으로 申請이 넘쳐 座席 不足으로 不得已 80名으로 制限하여 지난 3일 開講하였습니다. 大邱鄕校 禮節大學은 指導 講師陣을 嚴選하고 禮節의 基準을 定立하여 實習爲主의 敎育을 通하여 國家認證 禮節師資格證 發給機關으로서의 位相을 드높이도록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지난 한해는 끊임없는 코로나 感染의 危險 속에서도 이를 克服하고 大邱鄕校의 本然의 일들을 推進하고 큰 成果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여러 儒林들과 任職員들의 獻身的인 努力과 協助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며 盡心으로 이에 感謝를 드리며, 앞으로도 더 많은 協助와 激勵, 그리고 주저없는 叱責을 바라마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은 비록 物質的 豐饒는 이루었지만 美風良俗과 傳統文化가 사라지고, 하늘이 우리에게 賦與한 本然之性을 喪失함으로써 天倫과 人倫을 저버리는 社會的 病理現象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 儒林이 해야 할 일은 오늘 釋奠大祭를 通하여 孔夫子를 비롯한 先聖先賢의 가르침을 본받아 스스로 實踐하고 이를 擴散시켜 나가는 일입니다. 이런 姿勢가 바로 眞情한 儒林의 責務이며, 儒學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葛藤과 對立과 不信을 解消하고 아우르게 해야 하는 所以然이라고 생각됩니다.
오늘 孔紀 2572年 釋奠大祭를 奉行하기 위해 그동안 準備에 萬全을 기해주신 鄕校 任職員 여러분과 釋奠大祭에서 職任을 맡아 애써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感謝 드리며, 오늘 이 釋奠에 精誠어린 獻誠을 보내주신 各 門中과 機關, 團體 및 儒林여러분께 感謝드립니다.
아울러 初獻官 蔡鴻浩 大邱廣域市 行政副市長님과 亞獻官 李桓範 嶺南大學校 經營戰略副總長님, 終獻官裵相澤 儒林을 비롯하여 이 자리에 參禮하신 모든 儒林분들께 先聖先賢님의 恩惠와 加護가 함께 하시고 恒常 健康하시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感謝합니다.
 
孔紀 2572년 3月 20日
 
大邱鄕校 典校 禹鍾益 드림
 
 
 
 
 
 
 
Ⅰ. 鄕校의 釋奠儀禮(석전의례)
 

1. 釋奠의 意義
釋奠大祭는 仁義禮智(인의예지) 四德을 根本삼아 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大道를 闡明(천명)하신 孔子를 비롯하여 儒敎(유교)의 道統(도통)을 繼承(계승)한 先聖先師의 學德(학덕)을 기리는 祭禮儀式(제례의식)으로 儒敎的 祭祀儀式의 典範(전범)이며 規模가 가장 큰 祭祀로 1986년 無形文化財 第85號로 지정되었다. 成均館의 釋奠大祭는 中國이나 日本에도 남아있지 않은 옛 악기와 제기를 保有해 使用하고 있다. 또한 古典音樂인 文廟祭禮樂(문묘제례악)과 八佾舞(팔일무), 祭官이 입는 傳統的인 衣裳(의상)과 古典的 儀式節次가 모두 華麗(화려)하고 莊重(장중)해 綜合藝術的 價値(가치)가 클 뿐 아니라 世界的으로도 唯一하게 그 原型이 잘 保存돼 있다.
*八佾舞(팔일무)는 8명이 8줄(64명)로 서서 추는 춤, 諸侯(제후)는 六佾舞(36명) ,卿大夫(경대부)는 四佾舞(16명).
 
2. 釋奠의 說文解字(설문해자)
원래 釋(석)은 ‘놓다(舍-사)’ 또는 ‘두다(置-치)’의 意味를 지닌 글자로서 ‘베풀다’ 또는 ‘차려 놓다’라는 뜻이다. 奠(전)은 一種의 象形(상형)文字로서 ‘酋(추)와 大’의 合成語이다. 여기서 酋(추)는 술병에 술을 담아놓고 덮개를 덮어놓은 형상으로 빚은 지 오래된 술을 意味하며, 大(대)는 물건을 얹어두는 받침대 모습을 象徵(상징)한다. 이는 곧 정성스레 빚어 잘 익은 술을 받들어 올린다는 뜻이다. 따라서 釋奠은 牲幣(생폐)와 合樂(합악)과 獻酬(헌수)가 있는 盛大(성대)한 祭奠이다
* 釋菜(석채) ; 나물 種類만 차려 놓고 音樂이 演奏(연주)되지 않은 조촐한 儀式
 
3. 釋奠의 由來(석전의 유래)
先聖(선성)이란 周代에는 堯(요), 舜(순), 禹(우), 湯(탕), 文王을 말하며, 先師(선사)란 앞서간 前代의 훌륭했던 스승들을 일컫는 말이다. 漢나라 이후 儒敎를 國敎로 받아들이게 되자 孔子를 점차 先聖先師의 자리로 올려 文廟(문묘)의 主享(주향)으로 모시는 동시에 釋奠으로 우러르는 關係가 정착되었다. 後漢 明帝는 周公을 先聖, 孔子를 先師로 삼아 孔子의 古宅(고택)을 찾아가서 釋奠을 올리기도 했다. 唐太宗(당태종) 貞觀(정관) 4년(628)에는 各州의 縣(현)마다 孔子廟(공자묘)를 세웠고, 唐玄宗(당현종) 開元(개원) 27년(738)에 孔子를 文宣王(문선왕)으로 追奉(추봉)하였다. 明에 와서 太學의 文廟를 大成殿(대성전)이라 일컬어 釋奠을 올리는 祠堂(사당)으로 확립되었다.
우리나라에 儒敎(유교))가 전래된 記錄은 확실하지 않으나 最初의 太學을 設立한 것은 高句麗 小獸林王(소수림왕) 2년(372)으로 이때 釋奠도 함께 奉行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百濟는 國立學校 設立의 記錄은 傳하지 않으나 五經博士(오경박사) 등의 명칭이 三國史記에 나오고 日本에 論語(논어)와 千字文을 傳한 博士(박사) 阿直岐(아직기), 王仁의 記錄이 있는 것을 보아 國立學校와 같은 機關(기관)에서 釋奠儀式을 奉行했을 可能性이 있다. 新羅에서는 眞德女王(진덕여왕) 2년(648)에 金春秋(김춘추)가 唐(당)에 건너가 國學을 찾아 釋奠의 儀式을 參觀(참관)하고 돌아온 후 國學設立을 추진했고, 神文王 2년에 그 制度가 確立되었다. 聖德王(성덕왕) 16년(717)에는 太監(태감) 金守忠이 唐으로부터 孔子와 그 弟子 중 學德(학덕)이 뛰어난 10인의 哲人(철인) 및 72弟子의 影幀(영정)을 가져와서 國學에 安置(안치)했다는 記錄이 있어 釋奠儀式이 國學에서 奉行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4. 學校(成均館, 鄕校)에서 釋奠이 奉行된 理由
先聖先賢에 대한 祭祀儀式인 釋奠이 예부터 學校에서 奉行(봉행)되어 내려온 것은 儒學의 獨特(독특)한 聖人觀(성인관)에 基礎(기초)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곧 누구든지 배워서 聖人이 될 수 있다는 意識(의식)이다. 人間은 누구나 聖人이 될 수 있는 資質(자질)을 지니고 태어난다. 이는 人間의 無限한 可能性에 대한 깊은 信賴(신뢰)를 표현하는 것일 뿐 아니라 人間의 主體的이고 道德的 實踐能力(실천능력)에 對한 確固(확고)한 믿음을 드러내 주는 것으로서 儒學의 重要한 傳統(전통)으로 成立되어 長久한 세월에 걸쳐 변함없이 이어져 내려왔다. 그리고 바로 이 같은 儒學의 獨特(독특)한 聖人觀으로 인하여 배움의 장소인 學校에서 釋奠을 奉行하는 儀式이 持續(지속)될 수 있었던 것이다.
性理學(성리학)이 定着(정착)된 朝鮮時代에 들어와서는 國家에서 主管(주관)하는 五禮(五禮 ; 吉길, 凶흉, 賓빈, 軍군, 嘉가-冠婚禮관혼례)중에서 吉禮(길례)편에 속하는 國家的 大事로서 奉行되었는데 當時(당시) 人材養成의 唯一한 機關이었던 成均館(성균관)의 文廟(문묘)에서 奉行되는 釋奠을 國家的 大事로 규정한 것은 釋奠이 지니고 있는 敎育的 意味에 대한 認識(인식)에 바탕한 것이다.
* 五禮 ; 吉禮-국가의 제사와 관련된 의례, 凶禮-喪葬에 관련된 의례, 賓禮-외국 사신을 접대하는 의례, 軍禮-군대에서 행하는 의례(閱兵의식, 講武의식, 出征의식, 獻馘헌괵의식, 露布의식), 嘉禮-관혼례
 
5. 釋奠을 仲春중춘(2월), 仲秋중추(8월) 上丁日에 奉行하는 理由(이유)
1) 봄은 蘇生(소생)하는 節氣(절기)요, 가을은 成熟(성숙)하는 節氣로 上古 때부터 내려왔다. 二月, 八月로 정한 것은 雨露旣濡의 계절과 霜露旣降의 계절을 택하여 仲春과 中秋로 함.
2) 丁日을 擇(택)한 理由는 丁壯成就(정장성취)의 뜻을 取(취)함이다.(배우는 사람으로 하여금 學業을 이루도록 한 것)
① 禮記曲禮上篇(예기곡례상편)에 外事는 以剛日(이강일)하고 內事는 以柔日(이유일)이라 하였는데, 柔日 으뜸일인 乙日이 嫌惡(혐오)스런 날이라고 그 다음 柔日인 丁日을 擇하였다.
② 易(역)의 山風蠱卦(산풍고괘)에 ‘先甲三日 後甲三日 終則有始(종즉유시) 天行也’, 重風巽卦(중풍손괘)에 ‘先庚三日 後庚三日 吉’이라는 卦辭(괘사)가 있다. 따라서 先庚三日과 後甲三日이 丁日에 해당하므로 丁日祭享을 奉行함. 즉 丁日의 意味는 易의 巽卦(손괘)의 先庚三日, 蠱卦(고괘)의 後甲三日과 關聯(관련)하여 丁寧反覆(정영반복)하여 萬民을 柔(유)하게 敎化하고 이로써 文德을 빛내려는 것이라 하였다.
* 天干 - 甲, 乙, 丙, 丁, 戊, 己, 庚, 辛, 壬, 癸 (10)
地支 - 子, 丑, 寅, 卯, 辰, 巳, 午, 未, 申, 酉, 戌, 亥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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