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양과 염소 사이에서 배우는 삶 ​
26/05/06 07:28:37 金 鍾國 조회 1141
양과 염소 사이에서 배우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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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갔을 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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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십이 훌쩍 넘은 안내자 분이 이집트에서 이스라엘로 향하던 버스 여정 중, 갑자기 차를 세우고 창밖을 보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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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만한 언덕 위에서 양들이 풀을 뜯고 있는 풍경은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처럼 고요하고 목가적이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양들 사이에 염소 한 마리가 섞여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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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마다 양들은 염소를 피해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기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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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이렇게 설명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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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 본성이 느긋하고 움직이기를 싫어합니다.
배가 고파도 쉽게 자리를 옮기지 않지요.
반대로 염소는 가만히 있지를 못합니다.
쉴 새 없이 돌아다니며 뿔로 받는 성질이 있어요.
그래서 목자는 일부러 양들 속에 염소를 섞어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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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가 쫓아다니면 양들은 어쩔 수 없이 움직이게 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풀을 만나 먹이를 얻고 자연스럽게 운동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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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덕분에 더 건강하게 자란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우리에게 이렇게 물으셨다.
​
“그렇다면 염소는 양들에게
귀찮고 원수 같은 존재일까요,
아니면 고마운 존재일까요?”
​
그 질문은 버스 안을 조용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살아가며 나를 힘들게 하고
상처 주는 사람을 쉽게 미워한다.
​
‘저 사람만 없으면’, ‘그 사람 때문에’ 라는 말이 입에 붙어 있다.
​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어떤 공동체에서든 늘 염소같은 사람이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
나 역시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어 왔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가만히 돌아보면, 그들로 인해 우리는 인내를 배우고 겸손을 배운다.
​
이해하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마음의 폭도 조금씩 넓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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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주고 힘들게 했던 그 사람들은 정말 미워하고 밀어내야 할 염소과(科)에 속한 존재들일까?
혹시 그들이 내 안에 덕을 쌓게 만든 계기는 아니었을까?
​
나를 단련시키고 성장하게 만든,
뜻밖의 은인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그래서 함부로
사람을 양과 염소로 나눌 수는 없다.
지금 좋은 것이 
끝까지 좋은 것만은 아니고,
지금 나쁜 것이 
영원히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
어떤 이에게는 양 같은 사람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염소 같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
​
더구나 나는 누군가의 눈에
염소로 보이고 있지는 않은지,
그 가능성 역시 외면할 수 없다.
​
우리는 이성을 가진 존재이고,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
그래서 타인의 부족함을 보며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라고
배우는 지혜가 필요하다.
​
공자가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고 한 말도,
결국 이런 뜻이 아닐까?
​
다양한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 가야만 삶은 깊어지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조금씩 단단해진다.
​
그러니, 염소가 없는 세상을 꿈꾸기보다,
염소가 있었기에 내가 무엇을 배웠는지를 돌아보는 편이 더 현명할지 모른다.
​
염소가 없었다면  
나는 안주했을 것이고,
성장의 자양분을 발견하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지 않겠는가.
​
지혜를 갖추고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쉽게 염소로 규정하기보다, 그 관계가 나에게 무엇을 가르치는지 묻는 삶을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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