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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 영유권에 관한 고대 한자, 한글비 발견(2025.1.15.)
25/08/01 13:50:35 金 鍾國 조회 156
대마도 영유권에 관한 고대 한자, 한글비 발견(2025.1.15.)
일본을 발칵 뒤집어 놓은 충격적인 사건을 알아보자.    (유투브에 실린 내용을 옮긴 것입니다)
 
2025년 1월 15일 새벽, 대마도 앞바다에서 평범한 고기잡이를 하던 어부가 그물을 바닷속으로 던진 하시모토는 뭔가 무거운 것이 걸린 느낌을 받았다. 하시모토 다이스케 어부는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합니다. 처음엔 큰 바위나 폐타이어 같은 해양 쓰레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물을 끌어 올렸을 때 그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상상도 못 했던 물건이었다. 검은 돌로 만들어진 거대한 비석이었다. 두께가 30cm, 높이가 50cm에 달하는 비석이었다. 표면은 바닷속이 끼와 조개껍데기로 덮여 있었지만, 하시모토가 손으로 조심스럽게 닦아내자 놀라운 글자들이 드러났다.
 
한자와 함께 새겨진 다른 문자들이 바로 고대 한글이었기 때문이다. 소식은 삽시간에 일본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대마도는 고려왕의 땅이라는 내용이 명확하게 새겨져 있었다. 다나카 교수는 주변 연구원들에게 절대 입을 열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현장에 있던 지역 기자가 이 모든 과정을 사진으로 찍어 인터넷에 올렸기 때문이다. 오후 3시 일본 외무성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외무성 대변인은 석비의 진위를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그의 얼굴에는 당황스러움이 역력했다.
 
한편 한국에서도 이 소식이 빠르게 전해졌다. 서울대학교 고고학과 김민재 교수는 뉴스를 보자마자 즉시 대마도행 항공편을 예약했다. 김 교수는 오랫동안 대마도와 조선의 관계를 연구해온 전문가였다. 저녁 7시. 도쿄 시부야의 한 아파트에서 이 뉴스를 본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일본의 자민당 소속 국회의원인 가토 하루키였다. 미국인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저는 국제법을 전공하며 정치에 입문했다. 텔레비전 화면 속 비석을 바라보던 하루키는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그때 문득 어릴 적 할머니가 들려주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할머니는 대마도 출신이었는데, 가끔 이상한 말들을 중얼거리곤 했다. 당시에는 그저 노인의 헛소리라고 생각했지만 인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것이 한국어가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밤 11시 제 휴대전화가 울렸다. 사이토 레이코 외무대신이었다. 내일 오전 9시 긴급회의 소집이라는 짧은 통보였다. 전화를 끊고 창밖을 바라보니 도쿄의 밤하늘이 먹구름으로 뒤덮여 있었다. 이 어둠 속에서 진실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진실을 마주했을 때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다음날 새벽 인터넷은 대마도 비석 소식으로 뜨거웠다. 일본 네티즌들은 가짜 뉴스라며 분노했고, 한국 네티즌들은 역사적 증거라고 환호했다. 양국 온라인 공간은 순식간에 전쟁터가 되었다.
 
외무성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나는 휴대폰 뉴스를 확인했다. 대마도 비석 발견이라는 제목 아래 수백 개의 댓글이 달려있었다. 찬성과 반대, 분노와 환호가 뒤섰긴 댓글들을 보며 나는 이 사건이 단순한 고고학적 발견을 넘어서는 거대한 파문을 일으킬 것을 직감했다. 외무성 건물에 도착하자마자 수석 보좌관 이나가키 미카가 나를 맞이했다. 긴급 보고서를 건네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대마도 경제 상황이 참담했어요, 상점 38%가 폐업했고, 청년 인구는 작년 대비 23%나 감소했다. 1년 전 독도 문제로 한일관계가 악화 되면서 한국 정부가 대마도 여행자제를 권고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한국인 관광객이 97%가 줄어 들렀기 때문이다. 대마도 경제의 70%를 차지하던 관광사업이 완전히 무너졌기 때문이다. 회의실로 들어서자 이미 모든 고위 관료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참석자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굳어 있었다. 사이토 레이코 외무대신이 당당한 걸음으로 입장했다 완벽한 검은 색 정장 차림으로 한 올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사이토 대신은 엄격한 태도와 전통적 가치관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회의가 시작되자 사이토 대신이 단호하게 말했다. 대마도에서 발견된 비석에 관한 공식 입장은 명확하다고 했다. 해당 비석은 14세기 고려 시대 유물로 추정되지만, 단순히 고려와 대마도 간의 교역 관계를 보여주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영토 주권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학술적 검토는 진행하되 정치적 문제로 비화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회의실 안에서는 대부분 참석자들이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 하지만 나는 의문이 들었다. 독도 문제에 관해서는 수백 년 전 문서를 근거로 일본의 영토권을 주장하면서 대마도에 관한 고려 문서는 단순한 교역 관계로 치부하는 것이 모순이 아니냐고 질문 했다. 회의실이 순간 얼어붙었다. 사이토 대신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두 사안은 완전히 다르다며 독도는 역사적 법적으로 명백한 일본 영토지만 대마도는 논쟁의 여지조차 없다고 반박했다. 회의가 끝난 후 사무실로 돌아와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때 휴대폰에 메시지가 왔다.
 
대마도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재일교포 최도현 씨였다. 3대째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데, 상황이 너무 심각하다고 했다. 딸은 일자리를 찾아 후쿠오카로 떠났고 식당은 손님이 없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고 하였습니다. 메시지에 텅 빈 식당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한때 관광객들로 북적였을 테이블에 의자들이 쓸쓸히 놓여있다. 책상 서랍을 열어 할머니의 오래된 사진을 다시 꺼내 보았다. 사진 속 할머니는 대마도 해안 가에 서서 웃고 있었다. 그 웃음 뒤에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지 이제야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휴대폰이 다시 울렸습니다. 나카무라 도시로 원내대표였습니다. 다음 오늘 회의에서 한 발언을 잊어버리라고 했습니다.
 
당의 공식 입장을 벗어난 발언은 제 정치 경력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화를 끊고 창가에 서서 빗방울이 유리창을 타고 흐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전화를 끊고 창가에 서서 빗방울이 유리창을 타고 흐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빗방울처럼 흘러내리는 것은 대마도 주민들의 삶이었고, 그들이 고통을 외면하는 정부의 침묵이 나에게는 무거운 짐으로 다가왔다. 그날 밤 할머니가 남긴 나무상자를 찾아 열어 보았다. 상자 안에는 오래된 일기장과 사진들, 그리고 베에 싸인 작은 물건들이 있었다. 일기장을 펼치자 낯선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한글이었다. 할머니, 당신은 한국인이었나요? 아버지는 할머니에 대해서 거의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대마도 출신이며 젊은 시절 할아버지와 결혼해 도쿄로 왔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일기장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04e40005.bmp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1003pixel, 세로 472pixel 일어로 번역된 몇 페이지를 읽어 내려가자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다. 할머니의 본명은 김지연이었고, 그녀는 일제 강점기에 대마도로 건너온 한국인 가족의 후손이었다. 할머니는 한국인 정체성을 숨기고 일본 이름 가토 미유키로 살아왔다. 상자 바닥에서 발견한 낡은 봉투에는 대마도의 한 마을의 사진이 담겨 있었다. 사진 뒷면에는 한글로 1948년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곳은 대마도 북부의 작은 어촌이었

고, 한국계 주민들이 모여 살았던 장소였다. 다음 날 아침 국회 도서관으로 향했습니다. 대마도의 역사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았지만, 공식 역사 서적은 한국과 관계를 단순한 교역으로만 서술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래된 박사 논문 하나가 제 눈에 들어왔다. ‘대마도와 고려 조선의 관계, 경계 선상의 문화 교류’라는 제목이었다. 논문에 따르면 대마도는 수 세기 동안 한국과 일본 사이의 교량 역할을 했으며, 때로는 조선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고 한다. 특히 조선 전기에는 대마도 島主들이 조선왕에게 정기적으로 조공을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논문의 마지막 장에는 메이지 시대 일본 정부 문서의 사본이 있었는데, 그곳에 충격적인 구절이 있었습니다. 대마도는 본래 조선의 영토로 여겨졌으나 국가 안보와 영토 확장을 위해 완전한 일본 영토로 편입한 것을 결정한다는 내용이었다.
 
논문 저자의 연락처를 확인해 보니 김민재라는 한국의 역사학자였다. 현재 대마도 역사를 연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고 되어 있었다. 도서관에서 나오는 길에 이나가 키 보좌관의 전화가 왔다. 큰일 났다고 했다. 도서관에서 무슨 자료를 찾고 있는지, 누가 감시하고 있다고 했다. 나카무라 대표의 측근이 제 행적을 조사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를 미행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제 할머니의 일을 파헤치는 일은 단순한 가족사 탐구를 넘어 정치적으로 위험한 행위가 되어가고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김민재 교수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대마도와 조선의 관계에 관한 교수님의 논문에 큰 관심이 있다고 했다.
 
특히 메이지 시대 문서에 관해 더 알고 싶으니 은밀히 만나 이야기할 수 있을지 문의했다. 이메일을 보내고 창밖을 바라보니 거리 건너편에 검은 차가 서 있었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대마도 주민들이 고통받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외무성 문서고 출입허가를 신청했다. 예정대로 거절당했지만, 국가 안보위원회 조사 목적이라는 명목으로 재신청했고, 마침내 허가를 받았다. 이나가 키 보좌관은 걱정스러워했다. 나카무라 대표의 사람들이 나를 감시하고 있다고 했다. 도서관에서 무슨 자료를 찾고 있는지 누군가가 감시하고 있다고 보좌관이 말했다.
 
나카무라 대표의 측근이 제 내 행적을 조사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누군가가 나를 미행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제 할머니의 비밀을 파헤치는 일은 단순한 가족사를 넘어 정치적으로 위험한 행위가 되어가고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김민재 교수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대마도와 조선의 관계에 관한 교수님의 논문에 큰 관심이 있다고 했다. 특히 메이지 시대 문서에 관해 더 알고 싶으니 은밀히 만나 이야기할 수 있을지 문의했다. 이메일을 보내고 창밖을 바라보니 거리 건너편에 검을 차가 서 있었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대마도 주민들이 이렇게 고통받고 있는 상황에서. 다음 날 아침 외무성 문서고 출입허가를 신청했다. 예상대로 처음에는 거절당했지만 국가 안보위원회 조사 목적이라는 명목으로 재신청했고, 마침내 허가를 받았다. 이나가 키 보좌관은 걱정스러워서 했다. 나카무라 대표의 사람들이 나를 감시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때로는 위험을 감수해야 할 때가 있다고 생각했다. 안내를 받아 메이지 시대 외교 문서 섹션에 도착했지만, 담당 직원이 항상 주변을 맴돌았다. 나는 다른 자료를 살펴보는 척하면서 기회를 엿보았다. 점심시간이 되자 잠시 자리를 비우는 사이 나는 재빨리 대마도 관련 외교 문서 파일을 찾았다.
 
문서함 깊숙한 곳에서 노란 봉투를 발견했다.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열자 그 역사적 문서가 나왔다. 1873년 축형 대마도 통치에 관한 건이라는 제목이었다. 문서에는 대마도는 오래전부터 조선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으며, 때로는 조선의 영향력 아래 있었으나 이제 일본 제국의 확장적 국가 안보를 위해 완전히 일본 영토로 편입하고 이전의 모든 조선과의 관계 기록은 공식 역사에서 제외할 것을 명한다는 내용이었다. 이것은 일본 정부가 의도적으로 대마도의 역사를 조작했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휴대폰 카메라로 재빨리 문서를 촬영하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문서고 담당 직권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메이지 시대 외교정책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며 국가 안보위원회 보고서용이라 둘러댔다.
 
그 문서는 열람 제한 자료라며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있다고 했다. 직원은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빛이었지만 나의 국회위원 신분증을 다시 확인한 후에 물러섰다. 새벽 비행기로 후쿠오카에 도착한 후 하카타항에서 대마도행 페리를 탔다. 이나가키 마카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어제저녁 나카무라 대표로부터 경고 전화가 왔다고. 내일 당 윤리위원회가 소집된다고 했다.
외무성 기밀문서를 무단으로 촬영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고 했다. 설명할 기회를 주겠지만 상황은 심각하다고 했다. ‘해물 천국’이라는 최도현 씨의 작은 식당은 문은 열었지만, 손님은 없었다. 최도현 씨는 우리에게 따뜻한 차와 함께 신선한 해물 요리를 대접했다.
 
얼굴에는 쑤심이 가득했지만, 손님을 맞이하는 미소는 따뜻했다. 작년보다 관광객이 97%나 감소했다고 최도현 씨는 말했다. 한국 손님이 오지 않으니 섬 경제가 무너지고 있다고 했다. 젊은이들은 떠나고 남은 사람들은 미래를 걱정하며 살고 있다고 했다. 한때 생기 넘쳤던 관광지가 이제 유령도시 같았다. 이 섬 북부에는 한국계 주민들이 많이 살았다고 하던데 하고 물었다. 최 씨는 놀라며 우리 섬의 비밀인데요. 그래요, 북부 아니우라 마을은 조선에서 온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자신도 그 후손 중의 한 사람이라 했다. 나는 할머니의 사진을 보여주며 제 할머니도 그곳 출신이라고 했다. 최 씨는 사진을 자세히 보더니 놀란 표정으로 이 분은 김지현 씨가 아니냐며 마을에서 유명한 분이었다고 했다.
 
일본 이름으로 가토 미유키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럼 의원님도 우리와 같은 피를 나눈 것이라며 최 씨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할머니는 전쟁 후 마을이 어려울 때 많은 사람을 도우셨다고 했다. 식사 후 최 씨는 우리를 북부 아니우라 마을로 안내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좁은 산길을 한 시간을 달려 도착한 마을은 작고 조용했다. 낡은 목조 가옥들이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고 마을 입구는 오래된 돌탑이 있었다.
이 탑은 조선 시대에 세워진 것이라 했다. 마을 사람들이 조선과의 연결을 기억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 했다. 마을 중심에는 작은 사당이 있었다. 문을 열자 한국 전통의 제사 방식으로 차려진 제단이 있고 벽에는 한글과 한자로 된 글귀들이 걸려 있었다. 이곳은 조상들을 기리는 사당이라 했다. 마을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조선의 전통 방식대로 제사를 지낸다고 했다.
 
사당 뒤편 작은 창고에는 오래된 문서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최 씨는 조심스럽게 문서 함을 열어 낡은 종이뭉치를 꺼냈다. 이것은 마을의 역사를 기록한 문서라고 했다. 조선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기록이라고 했다. 문서를 펼쳐보니 한자와 한글이 섞인 글씨가 보였다.
김민재 교수에게 사진을 보내 번역을 부탁했더니 답장이 왔다. 이 문서는 15세기 조선 세종 때 작성한 것으로 대마도가 조선의 영향 아래 있었으며, 섬 북부는 조선인의 거주지로 인정받았다는 내용이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조선왕이 이 지역의 특별 자치권을 부여했다는 기록이었다. *실제 대마도 정벌을 세종 원년(1419년) 李從茂에 의해 이루어졌다.*
 
다음으로 일행은 마을 뒷산에 있는 작은 절을 방문했다. 그곳에는 한국식 불상과 일본식 장식이 혼합된 독특한 문화적 융합을 보였다. 이 절은 양국의 문화가 공존하는 증거라고 최 씨는 말했다. 수백 년 동안 우리는 경계에서 살아왔고 양쪽의 문화를 모두 받아들였다고 했다. 저녁이 되자 마을 어른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마도의 숨겨진 역사, 조선과의 관계 그리고 메이지 시대 그 역사가 어떻게 지워졌는지에 대해 증언을 들려주었다. 마을 이장 노인은 떨리는 손으로 오래된 기록을 이는 증조할아버지가 남긴 기록이라고 했다. 1880년대 일본 정부가 대마도를 완전히 장악한 후 우리에게 일본식 이름을 강요하고 조선어 사용을 금지한다고 적혀 있다고 했다. 밤이 깊어 가는 중에 이나가키가 전화를 받고 놀란 표정으로 돌아왔다.
 
도쿄에서 소식이 왔다며 당 윤리위원회가 나에게 대한 징계를 결정했다고 했다. 외무성 기밀문서 유출혐의로 당직에서 제명될 위기라고 했다. 예상했던 일이라고 대담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이제 돌아갈 시간이라고 했다. 내가 찾은 진실을 모두에게 알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날 밤 할머니의 고향 마을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며 창밖으로 바다를 바라보았다. 저 너머로 한국이 보였고 두 나라 사이에 놓인 작은 섬이 운명이 제 손에 달려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마을을 떠나기 전 마을 이장은 저에게 작은 상자를 건네주었다. 이것은 제 할머니가 마을을 떠날 때 남기신 물건이라 했다.
 
언젠가 후손이 돌아올 것이라고 믿으셨던 같다고 했다. 상자 안에는 낡은 비단 조각과 함께 작은 옥 인장이 있었다. 인장에는 한글로 김씨가 새겨져 있었다. 이제 의원님은 진정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다며 최씨가 말했다. 이 섬처럼 의원님도 두 문화의 다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도쿄로 돌아오자마자 문자 그대로 폭풍우가 아니라 정치적 폭풍이 일어났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기자들이 몰려들어 카메라 플래시가 나의 얼굴을 비췄다. 외무성 기밀문서를 유출했다는 혐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대마도가 과거 한국 영토였다고 주장하는 것이 사실이냐고 했다.
 
당직에서 제명될 것이라는 소문에 대한 의견은 무엇이냐고 했다. 이나가키가 재빨리 기자들 사이에서 빼내어 대기 중이던 차로 안내했다. 상황이 심각했다고 했다. 주요 신문들이 나를 국가 반역자로 묘사했다고 했다. 사이토 대신은 나를 반일 세력과 내통하고 있다고 했다. 사무실에 도착하자 더 충격이 기다리고 있었다. 문은 테이프로 봉인되어 있었고 국가 안보 조사 중이라고 붙어 있었다.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더니, 내가 대마도에 있는 동안 국가안보위원회에서 사무실을 수색했다고 했다. 외무성 기밀문서 유출혐의로. 나카무라 대표는 내일 국회 본회의에서 나에 대한 제명안건을 상정할 예정이라고 했다. 사이토 대신은 제가 한국 스파이라는 암시까지 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분노하며 말했다. 저는 그저 역사적 진실을 찾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더 심각한 상황이 있다며 이나가키가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내 가족 배경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었다. 할머니가 한국계라는 정보가 이미 일부 매체에 유출되었다고 했다. 가슴이 무거워졌다. 네 정치 생활뿐만 아니라 명예까지 위협받고 있게 되었다. 일본 정치에서 외국 혈통, 특히 한국혈통은 여전히 민감한 문제였다.
 
지금 포기한다면 진실은 다시 어둠 속으로 묻힐 것이고 대마도 주민들은 계속해서 고통을 받을 것이고 네 정치 생명은 끝날 것이고 가족까지 상처받을 수 있었다. 내일 본회의에서 마지막 기회가 있을 거라고 결심을 다지며 말했다. 모든 증거를 공개하고 진실을 알려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발언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나카무라 대표가 제 발언권을 막으려 할 것으로 여겨진다. 김민재 교수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내 상황을 뉴스로 보았다며 용기와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대마도서 찾은 문서들을 분석했는데 이것은 역사적으로 큰 가치가 있다고 했다. 특히 조선왕이 대마도 북부의 자치권을 준 문서는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귀중한 자료라고 했다. 최도현 씨로부터 ‘대마도 주민들이 나를 지지한다는 메시지였다.
 
오늘 주민 회의가 있었고 많은 사람이 네게 용기와 감사를 표한다고 했다. 우리는 의원님과 함께한다고 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일찍 국회의사당에 도착했다. 복도에서 야당 지도부를 만나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흥미로운 제안이라며 야당 원내대표가 말하였다. 확실히 정부를 곤경에 빠뜨릴 좋은 기회지만 “이것이 국익에 도움이 될까요”라고 했다. 이것은 단순한 정쟁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역사적 진실과 양국 관계 개선에 관한 문제라고 했다. 대마도 주민들은 지금 고통받고 있다고 했다. 잠시 고민하던 야당 대표는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당에서 15명이 나의 발언권을 지지할 것이라고 했다. 본회의장으로 들어서자 모든 시선이 저를 향했다. 제 지정석은 가장 구석진 곳으로 바뀌어 있었고 주변 의석은 비어있었다. 명백한 고립 전략이었다.
 
나카무라 대표가 입장하여 회의가 시작되었다. 예상대로 첫 번째 안건으로 제명안을 상정했다. 가토 가루키 의원은 국가 기밀을 유출하고 외교적 마찰을 일으키며 당의 방침을 위반했다고 했다. 따라서 제명처분을 제안한다고 했다. 그리고 곧바로 덧붙였다. 안보 위협을 고려하여 해당 의원의 발언권을 제한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 순간 야당 의석에서 한 의원이 일어섰다.
의사진행 발언에 이의를 제기한다고 했다. 어떤 의원이라도 자신을 변호할 권리가 있습니다.
나카무라의 얼굴이 굳어졌다. 의장은 규정을 확인한 후 마지 못해 발언했다. 이의 제기가 있었다고 했다. 이를 지지하는 의원은 손을 들어 달라고 했다. 야당 의석에서 15명의 의원이 손을 들었습니다. 의장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규정에 따라 가토 의원에게 10분간의 발언할 기회를 드린다고 했다. 회의장이 순간 조용해졌다.
 
이것은 예상치 못했던 전개였다. 나카무라와 사이토는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 연단으로 향했다. 손에는 대마도에서 가져온 증거들과 외무성 비밀문서 사본, 그리고 할머니의 일기가 들려있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지만, 마음은 평온했다. 이제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었고, 그 너머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던 진실을 말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연단에서 회의장을 둘러보니 사이토 대신이 냉정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대마도의 텅빈 거리와 최도현씨의 슬픈 얼굴, 할머니의 숨겨진 일기가 마음에 떠올랐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발언을 시작했다. 의원 여러분 오늘 저는 불편한 진실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국회 본 화의 장이 완전히 조용해졌다.
 
모든 시선이 저를 향했고 카메라 렌즈가 제 모습을 담고 있었다. 이 순간을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 의원 여러분 진실은 때로 불편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불편하다고 해서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먼저 외무성에서 발견한 메이지 시대 문서를 화면에 띄웠다. 이것은 1873년 일본 정부의 문서라고 했다. 여기에는 분명히 적혀 있습니다. 대마도는 오래전부터 조선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으며, 때로는 조선의 영향력 아래 있었으나 이제 일본 제국의 확장과 안보를 위해 완전히 일본 영토로 편입하고, 이전의 모든 조선과의 관계 기록은 공식 역사에서 제외할 것을 명한다고 했습니다. 회의장에서 충격의 한숨이 들렸다. 사이토 대신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다음은 대마도 북부 아니 우라마을에서 발견한 조선 시대 문서를 소개했다.
 
15세기 조선 세종 시대의 것으로 대마도 북부 지역의 조선인 마을에 대한 자치권을 부여하는 내용이라고 했다. 나는 계속해서 대마도에서 수집한 역사적 증거들을 하나씩 제시했다. 고려 시대부터 시작된 대마도와 한반도의 관계, 조선 통신사들이 대마도를 통해 일본과 교류했던 기록들, 그리고 북부 마을 주민들의 증언까지, 그리고 이것은 제 개인적인 이야기라며 할머니의 사진과 일기를 꺼내 보였다. 제 할머니는 대마도 북부 아니 우라마을 출신의 한국계 주민이었다고 했다. 본명은 김지현이었으나 일본 이름 가토 미유키로 살아야 했다고 했다. 할머니 자신의 정체를 숨기며 살았고 그 비밀은 가족 내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했다.
 
의원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커졌다. 나는 잠시 멈추고 숨을 들이마셨다. 나카무라 대표는 저를 혼혈이라고 불렀다고 했다. 네 저는 미국인 어머니와 일본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 알게 되었다고 했다. 제 핏속에는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이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미친놈 대신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의장님 이것은 개인사에 불과하다며 국가 안보와 영토문제에 관한 본회의 시간에 부적절하다고 했다. 나는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개인사가 아니라고 했다. 이것은 어떻게 역사를 직시하느냐에 관한 문제라고 했다.
 
대마도의 복잡한 역사를 인정하는 것이 왜 국가 안보 위협이 되느냐고 했다. 그리고 이어서 대마도의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관광붕괴로 인한 경제적 타격, 빈 상점들과 떠나는 젊은이들, 최도현 씨 같은 주민들의 고통을 말했다. 우리는 독도에 대해서는 역사적 증거를 바탕으로 일본의 고유 영토라고 주장한다고 했다. 그러나 대마도에 관한 역사적 증거는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다고 했다. 이것은 명백한 이중 잣대라고 말했다. 사이코 대신이 다시 끼어들었다. 가토 의원 당신은 한국의 대마도 영토권을 지지하는 것이냐고 했다. 아니라고 답했다. 저는 대마도가 일본 영토라는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역사를 더 정직하게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대마도는 일본과 한국의 문화가 만나는 경계였고, 그 역사를 인정함으로써 두 나라의 관계 개선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대형 스크린에 대마도 관광 통계 자료를 띄었다. 
힌국인 관광객이 끊긴 후 경제지표가 급격히 하락하는 그래프였다. 이것이 정치적 고집이 실제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라고 했다. 대마도 주민들은 양국의 외교 갈등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영토문제에 관한 기존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역사적 진실을 인정하고 문화적 교류를 재개할 수 있지 않을까요 라고 했다. 나카무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장님 가토 의원의 발언은 당과 국가의 공식 입장을 해치는 것이라고 했다. 이 이상의 발언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의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가토 의원 발언 사간이 거의 다 되었다며 마무리해 달라고 했다. 마지막 기회였다. 나는 대마도에서 찍은 사진을 화면에 뛰었다.
 
텅 빈 거리, 문을 닫은 상점들, 그리고 북부 마을의 사당과 조선 시대 유적들도. 의원 여러분,
나는 오늘 제 정치 생명이 끝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 자리에 섰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말해져야 한다고 했다. 대마도의 역사적 진실을 인정하고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것이 대마도 주민들을 위한 길이며, 우리 국가의 진정한 이익에 부합하는 길이라 믿는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할머니의 옥 인장을 들어 보였다. 김 씨라는 글자가 새겨진 이 인장은 저의 할머니가 대마도를 떠날 때 남기신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두 문화의 연결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모두 경계를 넘어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발언을 마치자 회의장은 순간 침묵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야당 의석에서 박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일부 여당 의원들도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사이토 대신의 반응은 격렬했었다. 자리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이것은 명백한 국가 반역 행위라고 했다. 가토의원은 한국의 영토 확장 의욕을 돕고 있다고 말했다. 목소리가 회의장을 울렸다. 그리고 갑자기 예상치 못하는 행동으로 사이토는 자신의 서류를 내던지고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갑작스런 퇴장에 회의장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나카무라가 황급히 의장에게 다가가 무언가 속사였고, 의장은 마이크를 두드리며 말했다. 긴급 상황으로 인해 10분간 정회를 한다고 했다.
 
의원들이 웅성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나는 연단에서 내려와 제자리로 돌아갔다. 이나가키가 서둘러 네게 다가왔다. 믿을 수 없다며 사이토 대신이 그렇게 감정적으로 반응할 줄은 몰랐다고 했다. 그리고 언론들이 나의 발언을 실시간으로 중계하고 있다고 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이미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고 했다. 내 휴대폰이 쉴새 없이 울렸다. 김민재 교수, 최도현씨, 그리고 놀랍게도 한국 언론사들로부터 인터뷰 요청이 쏟아지고 있었다. 10분 후 회의는 재개되었지만 사이토 대신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카무라는 굳은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의장이 발언했다. 당 지도부의 요청으로 가토 히로키 의원에 대한 제명안건은 추가 논의를 위해 보류된다고 했다.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겠다고 했다.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나는 완전한 제명을 각오했지만 무언가 변화한 것 같았다. 국회에서 한 발언 이후 3개월이 지났다. 봄바람이 불어오는 4월 나는 다시 대마도 페리에 올랐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한국과 일본의 역사학자들로 구성된 대마도 역사 공동 연구단이 나와 함께했다. 놀랍게도 한국 관광객들이 다시 페리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지만 확실한 변화 조짐이 보였다. 대마도 항구에 도착하자 화사한 현수막이 우리를 맞이했다. 한일 우정 문화 축제라고 적혀 있었다. 최도현 씨가 환한 웃음으로 나를 맞아주었다.
다시 뵙게 되어 기쁘다며 많은 것이 변했다고 했다. 실제로 이전에 보았던 텅 빈 거리는 이제 활기를 되찾고 있었다. 몇몇 상점들이 다시 문을 열었고, 한국어와 일본어가 뒤섞인 대화 소리가 거리를 울려 퍼졌다.
 
해물 천국이라는 최 씨의 식당은 손님들로 북적였다. 한국 관광객들과 지역 주민들이 함께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제 딸이 돌아왔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한복을 입은 여인과 일본 의상을 입은 남성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의 인형을 내게 주었다. 이것은 우리 마을의 전설이라고 했다. 한국에서 온 공주와 대마도 영주의 사랑 이야기라며 두 문화의 만남을 상징한다고 했다. 우리는 북부 아니우라 마을로 향했다. 이곳에서 한일 역사학자들이 공동으로 발굴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아니우라 역사 마을 한일문화 교류 중심지라고 적혀 있었다. 의원님의 용기 덕분에 우리 마을의 역사가 드디어 빛을 보게 되었다고 했다. 오랫동안 숨겨왔던 우리의 문화유산이 이제 자랑스러운 역사로 인정받고 있다고 했다.
 
역사학자들은 열정적으로 작업을 시작했고, 이미 여러 개의 문서들을 발견되고 있었다.
김민재 교수는 흥분된 표정으로 새로 발견된 조선 시대 도자기 조각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대마도가 한일문화 교류의 교차점이었다는 증거라고 했다. 마을 사당에서는 특별한 의식이 준비되고 있었다. 한국과 일본의 혼합된 제사의식이었다. 이 의식은 수백 년 동안 비밀리에 지켜온 것이라고 했다. 이제 우리는 이 의식을 자랑스럽게 공개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해 질 무렵 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니 한국해안이 저 멀리 보였다. 두 나라가 이렇게 가까이 있으면서도 오랫동안 심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정부가 대마도 역사 재조명 프로젝트를 위해 공식지원을 결정했다고 했다.
 
또한, 한일 외교부가 대마도에서 양국문화 교류 센터 건립을 논의 중이라 했다.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었다. 나는 당내에서 여전히 고립되어 있었고 다음 선거에서 공천을 받을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저녁에 최 씨의 식당에서 열린 축하 모임에서 많은 주민이 나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그 중에도 오래된 어부 하시모토 씨도 있었다. 그가 그 비를 발견하지 않았다면 이 모든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며 운명이었나보다고 말했다. 아니요 단순한 운명이 아니라고 답했다. 진실은 언젠가 드러나게 되어 있다고 했다. 우리가 필요로 했던 것은 그것을 직시할 용기였을 뿐이라고 했다. 할머니가 평생 옥 인장을 숨겨야 했던 정체성이 빛을 보게 되었다. 저는 저 이상 혼혈 정치인이 아니었다. 이제 나는 경계를 넘어 두 문화를 연결하는 다리가 되었다.
 
회의가 끝난 후 한 원로 의원이 제게 다가왔던 그 날이 생각났다. 용기 있는 발언이었다며 사이토 반응은 너무 감정적이었고, 그것이 역효과를 낳았다고 했다. 당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저녁 뉴스에서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사이토 레이코 외무대신이 건강상의 이유로 사의를 표명했다는 것이다. 정치 평론가들은 이것이 대마도 논쟁에서의 감정적 대응과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때 나는 작은 변화의 씨앗을 뿌렸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 최도현 씨에게서 온 그날 밤의 메시지도 기억났습니다. 오늘 대마도 주민들이 모여 제 발언을 함께 지켜보았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며 처음으로 누군가가 우리의 목소리를 대변해 주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때 느꼈던 감사함이 지금도 네 가슴에 따뜻하게 만들었다. 오늘 이 순간 대마도의 밤하늘에 별이 빛나고 있습니다. 불확실한 미래가 있었지만 나는 진실을 말했고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작은 비속하나가 수백 년간 감춰진 역사를 드러내고 한 정치인의 용기가 두 나라 관계의 새 물결을 일으킨 이야기였습니다. 대마도의 숨겨진 역사가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질 수 있게 되었고, 우리의 역사적 자산을 되찾는 첫걸음이 시작되었습니다. 경계{선 위에서 꽃 피우는 진실의 힘을 나는 직접 경험했다. 할머니의 숨겨진 정체성부터 시작된 이 여정은 결국 두 나라 사이의 이해와 화해로 이어졌다. 정치적 위헌을 감수하고 진실을 말하는 것이 얼마나 주요한지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개인의 용기가 얼마나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이제 대마도는 갈등의 상징이 아니라 화해의 상징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 모두에게 소중한 문화유산이 되어가고 있다. 내가 겪은 개인적 성장과 정체성 발견의 여정도 많은 분에게 의미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어떤 형태든 경계에서 살아가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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