弘益人間이라는 이념도 단지 한민족의 것이 아니라 당시 동북아 전체로 퍼졌을 가능성이 있다. 그것은 ’天孫 思想’이라는 형태로도 나타난다. 몽골제국의 칭기즈칸도 하늘에서 부여된 권력을 말했고, 티베트 불교도 하늘의 정통성을 강조했다. 이러한 하늘과 인간의 연결 사상은 고조선 신화의 환웅 강림도 닮았다. 신단수라는 상징은 단지 나무가 아니라 하늘과 인간을 잇는 우주의 중축이었다. 고조선의 지배자는 자신을 ’천제의 아들‘이라 칭했다. 이는 고대 이집트 파라오 개념과도 유사하지만,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철학에서는 큰 차이가 있다. 무력으로 정복하는 신의 대리인이 아닌, 하늘의 뜻을 따라 다스리는 인간이었다. 이런 철학은 고조선에서 시작되어 보여, 고구려, 백제, 신라까지 이어진다. 특히 고구려는 확장보다 문화적 통합을 중요시했다. 고조선의 이념과 제도가 고구려로 계승되었다는 증거가 많다.
삼족오, 태극 문양, 천제 숭배, 무속신앙 등은 문화의 연속성을 말해준다. 나아가 이 사상은 한반도를 넘어 일본, 류큐(오키나와) 문화에도 영향을 주었다. 일본 신사 건축의 원형이 고구려 무덤 구조와 유사하다는 주장도 있다. 이처럼 고조선은 단순한 신화 속의 국가가 아닌, 광대한 문화권의 중심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잊혔지만, 과거에는 분명 중심이었던 나라 그 흔적은 대륙 곳곳에 남아있고, 지금도 새롭게 발견되고 있다. 우리가 다시 주목해야 할 것은 사라진 제국이 아니 지워진 중심이다. 고조선은 세계의 주변이 아니라 분명 중심이었다. 이제 그 잃어버린 중심을 다시 복원할 시간이다.
아틀란티스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언급한 신비한 문명이다. 그는 기원전 360년경, ’크리티아스‘와 ’티마이오스’라는 저서에서 아틀란티스를 묘사했다. 거대한 섬 대륙이었고, 고도로 발달한 기술과 문명을 갖춘 곳이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대지진과 홍수로 인해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수천 년간 신화와 전설로 남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아틀란티스가 단순한 전설리 아닐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신비한 문명과 한민족 사이의 연관성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일부 연구자는 고조선이 아틀란티스 문명의 계승자라고 말한다. 그 주장의 핵심은 두 문명 모두 ’하늘에서 내려온 자‘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고조선은 환인이 하늘의 뜻을 따라 환웅을 인간 세상에 보냈다고 전한다. 아틀란티스 역시 자신의 자손이 인간을 이끌었다고 한다. 두 문명 모두 ’천손 사상’을 중심에 두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고조선의 천부경과 아틀란티스의 신성한 숫자 체계가 유사하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천부경에는 1부터 10까지의 수가 우주원리를 상징하며 배열되었다. 플라톤이 말한 아틀란티스의 구조 또한 10개의 왕국과 숫자 중심의 질서 체계를 갖췄다. 그뿐만 아니라 고조선은 태극 문양, 삼족오 등의 상징을 사용하였다. 이런 상징들은 태양, 달, 시간, 균형을 의미하는 우주적 상징들이다. 흥미롭게도 잉카, 마야, 고대 수메르 문명에서도 유사한 상징들이 발견된다. 이는 단절된 문화가 아닌, 공통의 기원을 가졌을 가능성을 열어준다. 한반도의 고대문화는 ’우주와의 조화’를 강조했다. 이것은 아틀란티스의 철학과도 닮았다. 아틀란티스는 과학과 예술, 철학이 조화를 이루는 고차원의 문명사회였다. 고조선 또한 정신문화와의 과학기술을 동시에 발전시킨 고대 국가였다는 주장도 있다. 특히 천문학에서 고조선은 놀라운 수준의 지식을 가졌다고 한다.
단군신화에는 ’삼사’를 두어 천문, 기상, 상태를 관장했다고 기록되어있다. 이는 단순한 신화가 아니라, 실제 행정 시스템의 단서일 수 있다. 천문을 통해 계절을 예측하고 이를 기반으로 농경과 제례를 운영했다면 이는 과학적 통치다. 이처럼 고조선은 이성적 이념과 신성한 질서를 함께 중시한 문명으로 보인다. 아틀란티스 또한 ’신성과 결합’을 이상으로 삼았다고 전해진다. 그렇다면 고조선은 아틀란티스의 후계자였을까? 아니면 아틀란티스와 동일한 기원을 공유한’ 또 다른 문명이었을? 일부 학자는 고조선이 아틀란티스에서 이동한 생존자들에 의해 세워졌다고 주장한다. 아틀란티스가 침몰한 후, 일부 생존자들이 동쪽으로 이주해 왔다는 가설이다. 그리고 그 종착지가 바로 백두산 인근이었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백두산은 신성한 산으로 오랜 세월 숭배되어 왔다. 환웅이 강림한 장소도 백두산 신단수 아래였다. 단군신화와 아틀란티스의 몰락 후 이주설이 절묘하게 연결되는 지점이다. 게다가 백두산 근처에서 출토된 일부 유물은 고대 유럽 문명과 유사한 점이 있다. 이를 두고 일부는 동서문명이 과거 한 지점에서 연결되어 있었다고 본다.
또한 티베트, 인도, 중앙아시아 일대의 고대 전승에도 ‘홍수 이후의 민족’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를 두고 일부는 동서 문명이 과거 한 지점에서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또한, 티베트, 인도, 중앙아시아 일대의 고대 전승에도 ‘홍수 이후의 민족’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들 민족은 하늘에서 온 자들이 문명을 다시 세웠다고 주장한다. 이 모든 신화는 마치 퍼즐처럼 하나의 기원을 가리키는 듯하다. 그 퍼즐 조각들이 한반도에 모여 있다는 주장은 더 이상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지만, 진실은 여러 곳에 흩어져 있다. 우리는 잃어버린 문명의 조각 속에서 우리 민족의 진짜 정체성을 발견해야 한다. ‘한민족은 아틀란티스의 후예’라는 말은 단순한 자부심의 과장이 아닐 수도 있다. 그것은 곧 고조선이 세계 문명의 중심이었음을 암시하는 또 하나의 코드일 수 있다. 9천 년 전, 이미 하늘과 소통했던 민족 우주의 질서를 따르고 인간을 이롭게 했던 민족 그것이 바로 우리였다면 이제 우리는 역사의 관점을 바꿔야 한다. 한민족은 기억을 잃었을 뿐 처음부터 중심에 있었다. 고조선은 단군이 세운 민족 최초의 국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존재는 늘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왜일까? 그 이유는 단순한 ‘사료 부족’이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도 뚜렷했던 역사였기에 의도적으로 지워졌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이 지우기의 시작은 조선 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본격적인 역사 말살은 일제강점기에 집중되었다. 1910년 이후 조선총독부는 한국인의 민족정신을 제거하기 위한 전략을 세웠다. 그 핵심이 바로 역사 왜곡이었다. 일제는 조선을 ‘오래된 국가가 아닌 ’중국과 일본의 틈바구니 약소국’으로 규정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단군을 神話로 격하시켜다. 단군이 신화 속 인물일 뿐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교과서에서 관련 내용을 축소∙삭제했다. 또한 ’조선은 일본이 개화시켜 준 나라’라는 논리를 강화하기 위해 先史∙古代史를 왜곡했다. 고조선의 건국 연도인 기원전 2333년은 말도 안 되는 숫자라며 조롱 되었다. 심지어’ 배달국, 환웅, 천부인 같은 개념은 완전히 제거되었다. 그 결과 한국인은 스스로 뿌리를 잊어버리기 시작했다.
조선총독부는 植民史觀을 체계적으로 정립하고 교육 현장에 주입했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개념이 ‘三國史 중심사관’이었다. 고조선 이전의 역사는 신화이거나 미신으로 간주되었다. 그 이면에는 민족의 자긍심을 뿌리째 뽑으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 ‘너희는 원래부터 약한 민족이었다’라는 인식을 각인시키려 했던 것이다. 이후 해방이 되었지만 잃어버린 역사는 쉬게 복원되지 않았다. 미 군정 시기와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에도 일제의 인식이 그대로 남았다. 교육부는 ’과학적 역사관’이라는 명분으로 고조선 이전의 역사 서술을 회피했다. ‘단군신화’는 문학적 상징으로 치부되었고, 배달국은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환국, 홍익인간, 천손 사상 같은 고유 개념이 국민의 뇌리에서 사라졌다. 1960년대 이후 박정희 정부가 민족주의를 강조하면서 단군상이 복원되긴 했다. 그러나 그것은 상징적 조치에 불과했고, 구체적인 역사적 재조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편 중국은 2000년대 들어 ’東北 工程’을 통해 고조선의 역사를 침탈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고조선이 자국의 지방 정권이었다고 주장하며, 한반도 북부 고대사를 자국사로 편입하려 했다. 그 근거로 한사군 설치와 일부 고조선 유적을 들었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古朝鮮은 분명 독립적인 정치체제를 이루었고, 고유문화를 갖추고 있었다. 비파형 동검, 미송리식 토기, 고인돌 등의 유물은 중국과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하지만 중국은 이를 무시하고 자국 역사로 편입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그들은 韓民族의 기원을 부정하고 문화적 우월성을 주장하고자 한다. 이러한 시도는 단지 역사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전략이다. 역사를 지배하면 정체성을 지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만족의 정신이자 근원이다. 그 뿌리를 흔들면 현재의 자신감을 무너뜨릴 수 있다.
그래서 세계의 패권 국가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신화화하고 타민족의 역사를 축소시킨다. 이런 흐름 속에서 고조선은 철저히 외면당하고 지워져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고조선 복원 운동이 다시 힘을 얻고 있다. 재야 사학계, 민간 연구자들, 그리고 일반 시민들이 고조선의 실체를 되찾으려 하고 있다. 《환단고기》, 《태백일사》, 《삼성기》 등 비주류 사서들을 통해 대안을 제시하는 이들도 있다. 물론 그 자료들의 진위여부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질문하는 시도‘자체다. 고조선은 왜 교과서에서 사라졌는가? 누가 무엇을 위해 그 역사를 지웠는가? 우리는 그 질문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역사는 단지 과거를 보는 창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나침반이다. 고조선을 잃는다는 것은 단군을 잃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잊는 것이다. 이제는 조작된 세계사에서 벗어나야 할 시간이다. 古朝鮮은 다시 쓰여야 한다. 그리고 그 복원은 단지 학술적 문제가 아닌 민족의 존엄을 되찾는 일이다.
고조선은 먼 과거의 이야기지만 그 정신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잊힌 뿌리를 다시 찾는 일은 단지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를 되묻는 일이다. 9천 년 전 인간을 이롭게 하겠다는 단 하나의 이념으로 나라를

먼저 고조선은 실재했던 문명이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첫째, 단지 신화 속 나라가 아니라 문화와 철학 기술을 갖춘 고대 국가였다.
둘째, ’홍익인간은 단군의 구호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존재 이유였다. 그 정신이 있었기에 우리는 침략보다 수용, 경쟁보다 배려를 선택할 수 있었다.
셋째, 그 역사적 철학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실천해야 한다. 예를 들어 환경보호, 사회적 약자 배려, 평화 외교, 공정한 제도 등은 모두 ‘홍익인가’의 현대적 표현이다. 넷째, 교육은 그 뿌리를 반드시 가르쳐야 한다. 고조선, 배달국, 환웅, 천부경, 천손 사상 등은 민족의 철학적 유산이다.
이를 神話라고 덮어둘 것이 아니라 인문학적으로 재조명하고 토론의 장으로 가져와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고조선을 되살리는 일에 부끄러움을 느껴서는 안 된다. 이미 수많은 날이 그들의 신화를 문화 자산으로 만들어 세계에 알리고 있다. 그리스는 제우스를, 이집트는 오시리스를, 인도는 시바와 브라만을 자랑한다. 그들에게 신화는 곧 정체성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단군을 창피하고 홍익인간을 ‘옛말’로만 치부하는가?
이제는 古朝鮮을 말할 때가 되었다. 이제는 檀君을 기억할 때가 되었다. 이제는 弘益人間을 실천할 때가 되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였다. 만약 그렇다면 고조선의 정신도 다시 돌아올 수 있다. 그 시작은 우리가 그 정신을 잊지 않고, 일상 속에 되살릴 때 가능하다. 고조선은 AIS 옛날의 나라가 아니다. 고조선은 우리의 마음속에 다시 태어나야 할 미래다. 그리고 그 미래는 우리가 어떤 기억을 선택하느냐에 달려있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古朝鮮을 기억해야 한다! 弘益人間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자신을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