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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군의 위치는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23/11/27 13:41:21 金 鍾國 조회 477
한사군의 위치는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이 지도는 서한(西漢=前漢, BC202년~208년) 당시의 西漢郡국도이비니다. 만리장성 안쪽에 낙랑, 현토, 요동, 요서, 영평 등이 표기되어 있다. 요수도 보인다.

또 西晉郡國圖는 기원 후 265년~316년 당시, 西晉의 영토를 표시한 서진군국도이다. 萬里長城밖에 붙어서 요수가 보이고, 안쪽에는 樂浪, 대방, 현토, 요동, 요서가 표기되어 있다. 漢나라의 漢四郡이 만리장서 안쪽에 있다.
 
살펴본 漢나라 당시의 지도인 서한군국도와 西晉의 서진국국도에서는 漢四郡의 위치가 萬里長城안쪽에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현 우리나라 국사 교과서에서는 지도에서 보듯이 우리나라 평양을 중심한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것처럼 지도에 표시되어 있으니 이는 웬 말인가?
한사군은 기원전 108년 漢 武帝가 衛滿朝鮮을 멸망시키고 설치한 것인데, 위의 자료들에서 보듯 반리장성 동쪽 요수(遼水) 아래쪽에 낙랑과 현도(玄免)가 있는데, 우리나라 국사교과서에는 평양을 중심으로 한 지역으로 기술되어있다. 한번 생각을 해보자. 지금 우리나라 서울에서 북경을 가려면 비행기를 타고 1시간은 걸려야 하는데 기원전 108년에 조랑말 타고 한사군을 설치하기 위해 평양까지 왔겠는가? 이런 엉터리 국사를 누가 만들었는가? 1930년대 중반 일본이 우리를 지배할 때 우리나라보다 역사기 짧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하기 위해서 고조선의 역사는 神話처럼 돌리고 夫餘의 역사를 건너뛰고 三國時代를 강조하면서 이렇게 역사를 날조한 것이다.
한사군(漢四郡, 기원전 108년 ~ 314년)은 기원전 106년 前漢은 기원전 108년에 고조선을 멸망시킨 후 위치는 낙랑군, 진번군, 임둔군의 3군을 위만조선 영내에 설치하였으며, 기원전 107년에 다시 예맥(濊貊) 지방에 현도군을 설치하였으나, 그  한반 내에 있었다는 주장보다 유물과 사료로 볼 때, 요서와 요동일부 지역이라는 학설이 유력하다. 낙랑국과 낙랑군의 혼용도 혼란을 부채질한 것이 사실이다. 기원전 82년에 이르러 진번·임둔 양군을 폐지하여 진번군을 낙랑군에 임둔군을 현도군에 각각 병합시켰으며, 기원전 75년(전한 소제 원봉 6년)에는 토착민의 반발로 현도군이 요동 방면(지금의 혼하(渾河) 상류의 흥경(興京) 노성(老城) 지방)으로 옮겨졌다. 이때 현도군에 통합되었던 임둔군의 현들은 낙랑군에 편입되어 최종적으로 구 위만조선의 영역에는 낙랑군이 남게 되었다.

낙랑군은 진번·임둔의 영역에 각각 남부도위(南部都尉)와 동부도위(東部都尉)를 설치하여 관리하였다.. 한사군의 위치, 의미와 역할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화인민공화국, 일본의 학계가 서로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일본은 자신들이 한국에서 1930년대 중반 우리역사를 날조하면서 꾸려 놓았으니, 당연이 위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라나라 강단사학에서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재야 역사학회에서는 중국의 여러 사료들을 연구하여 위의 자료를 제시하며 현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의 잘 못을 시정할 것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자료: 지식백과와 유튜브 자료에서 인용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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