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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高句麗를 고구리로 읽어야 하는 까닭(1)
24/02/04 10:41:42 金 鍾國 조회 261
앞으로 몇 회에 나누어  '서길수 교수의 고구리, 고리의 역사'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1. 高句麗를 고구리로 읽어야 하는 까닭
1) 들어가며
다음 내용들은 ‘(사) 우리 역사 바로 알기 단체의 서길수 교수의 연구 내용을 중심으로 고구려가 ’고구리‘ 또는 ’고리‘로 읽어야 함을 알아보자. 이 글은 ’세계 속의 고리(高句麗)‘라는 책을 접하면서 서경대 서길수 교수의 글을 읽으면서 고구려의 이름이 ’고구리‘ 혹은 줄여서 ’고리‘로 읽어야 된다는 사실을 고증을 통하고 세계 속의 고리를 찾아 중국 대륙 및 유럽대륙을 섭렵하면서 노고를 아끼지 않은 서 길수 교수님의 증거들을 접하면서 이 글을 소개하려 한다.
우선 사전에서 ‘麗’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찾아보겠다.

위쪽의 사진은 우리나라 첫 옥편인 ‘전운옥편(1796, 1846)‘에 나와 있는 우리말 큰 사전에서 ’麗‘를 읽기를 소개하고 있고, 조선광문회 신사전(1915)에 나와 있는 것으로 ’麗‘字 가 東國名 고구려를 ’고리나라‘로 읽음을 나타내고 있으며 세 번째(1964년 정삼식의 大漢韓辭典)에도 나라 이름 ’리‘로 고구리, 고리로 읽음을 나타내고 있다.
그 아래쪽 한글학회 큰 사전에도 이름씨로 高句麗가 이름씨로 ‘고구리’로 읽음을 나타내고 있다. 1959년 일본 大漢和辭典에도 ‘고구리’로 읽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자료에도 불구하고 문교부에서 國史 교과서를 편찬하면서 예부터 써온 고구리를 버리고 ‘고구려’로 표기하여 그 원형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2) 고구리(高句麗)인가 고리(高麗)인가?
먼저 나라 이름을 고구리로 한 것은 漢 원제 건소 2년(37), 부여의 추모(주몽)가 西漢의 玄菟郡 고구리현(高句麗縣)에서 세웠기 때문에 고구리(高句麗)라고 했다. 기원전 5세기 후 고구리는 ‘고리’라고 널리 줄여 썼고, 그 군주도 中國皇帝로부터 ‘고리왕(高麗王)’으로 책봉했다. 다만 주의해야 할 것은 고구리가 망하고 200년 뒤 朝鮮半島에서 나타난 王氏는 그 계승국이 아니다.
추모(芻牟, 朱蒙)가 세운 고구리(高句麗)를 말한다. 고구리는 기원413년 長壽王이 즉위한 뒤 나라 이름을 고리(高麗)라고 바꾸었다<고구리 고리연구총서 2권>. 그런데 이 책에서 다루는 모든 사료는 고구리(高句麗)가 아니라 ‘고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서길수 교수의 사료에 따르면 장수왕 이후의 것이므로 5세기 초반 이후에 낸 ( <삼국사기>를 뺀) 대부분 사료는 長壽王 이후의 것들임으로 고구리(高句麗)가 아니라 ‘고리(高麗)’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리(高麗)라는 이름이 가장 많이 나오는 ⸢舊唐書⸥에는 ‘고구리’와 ‘고리’가 각각 1회씩 나오고, ⸢新唐書⸥에는 208회가 모두 ‘고리’로 기록되어 있고, ⸢新唐書⸥는 ‘고구리’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지금까지 고구리史 연구자들은 原史料에 있는 그대로 고리(고려)를 억지로 고구려로 바꾸어 인용하고 있다. 高句麗를 고구리로 읽는 것은 麗자가 우리는 ‘아름다울 려’자 이므로 ‘려’라고 하지만 ‘麗’자가 巨聲으로 쓰일 때는 ‘려’이지만, ‘려’자가 平聲으로 될 때는 ‘리’로 읽어야 하므로 朝鮮朝에서 잘 못 읽어 고구려가 된 것이라고 서길수 교수는 말 하고 있다.
 
실제 고구리가 강성 했던 장수왕 이후 무려 255년 동안 ‘고리(高麗)’라는 나라 이름을 썼다. 그러므로 고구리 후반의 역사를 기록할 때에는 당연히 ‘고리’라고 써야 할 것이다. 이 두 가지 문제는 이미 1998년 ⸢고구려 유적답사⸥에서 문제를 제기했고, 2007년 ⸢고구려연구⸥에 ⸢高句麗와 高麗의 소릿값에 관한 연구⸥를 발표하여 학술적으로 뒷받침을 하였다. 학계에 공식적으로 발표하여 공식적으로 발표하여 8년이 지나도 학술적인 반론 없어 2015년부터는 일반화할 단계라고 생각하여 학술논문에서 고구리(高句麗)⸳고리(高麗)로 쓰고 있으며, 2019년 두 권의 책을 내서 자세하게 밝혔다.( ⸢고구려 본디 이름 고구리(高句麗)⸥와 ⸢장수왕이 바꾼 나라 이름 고리(高麗)⸥ 여유당),
申叔舟 등이 1447년에 탈고하고 1448년에 東國正韻을 간행하였다. 한글을 반포한 뒤 韻書가 필요했기 때문에 明나라의 興武正韻을 대본으로 한글로 中國音을 달았다. 東國正韻이 ‘麗’를 ‘리’ 와 ‘례리’롤 읽음이 잘 나타나있다. 문제는 현재 중국어를 사람들이 보는 중국어 사전에 平聲과 去聲을 모두 ‘리’로 읽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보통화, 곧 北京音(중국은 2000년 10월 31일 북경어를 표준으로 삼았다)을 표준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高’는 까오(gao), ‘꼬우(gou)’ ‘코(ku)/고kau)’로 읽는다. ‘高麗’는 티벧어의 꼬우리는 광동어의 꼬우리와 같다. 中古시대에는 ‘레이’로 읽고 上古시대는 ‘례’ 즉 ‘고리’로 읽었다는 것이다.
옆의 자료에서 보듯 1936년 중화민국에서 발행한 <사해>사전에서 ‘麗’의 읽기를 나라 이름일 때에는 ‘리’로 읽는 다고 되어있다.
‘高’자는 上古音‘ko(고)’, 古代音에서는 k며(가우)‘, 현대 중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보는 중국어 사전에 平聲과 去聲을 모두 ’리‘로 읽는다는 것이다. 지금은 普通話, 곧 북경음을 표준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高’字는 上古音‘ko(고), 고대음’kau(가우), 현대 만다란에서 ‘kao(가오)’로 변천하여 변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에서도 三國時代로부터는 ‘高句驪’를 대개 ‘高句麗’로 쓰고 隨唐代로부터는 ⌜高麗⌟라고 약칭하여 지금까지도 한국인을 일반적으로 ‘kauli’라 부르고 있다.
李丙燾의 ‘한국고대사연구’가 나온 1981년에 한국인들은 고구리(高句麗)를 ‘kauli’라고 부르지 않았고, 이병도 본인도 그렇게 쓰지 않았다. 이 때 이미 모든 교과서에 한글로 ’고구려‘라고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에 ‘kauli’가 일반화 되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1896년 시라또리 쿠라키치는 『고구리 명칭에 대한 고찰』에서 『魏志』권 30에 나라(고구리) 열전에 ‘溝漊者(구루자)’ 句麗名 城也라는 문구가 보이고, 또 고구리(高句麗)의 구리(句麗)는 구루와 소리가 서로 크게 닮았다면 城이란 뜻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림입니다. 그리고 보면 ⌜句麗⌟는 溝漊, 忽,骨 등과 같이, 성읍도시를 의미하는 말로 인정하는데 거의 이의가 없을 듯하다. ‘溝漊者 句麗名 城也’에서, 구루=성이고 구루와 구리는 다르다. 中古시대에는 印度가 천축국이며 또한 中國이라 했고, 변지(邊地)가 漢國(지금의 중국이다)이며 吳 蜀 고리(高麗)국이 있었다.
中國은 나라이름이 아니고 중국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있는 나라들을 중국인들의 패권주의 의식으로 모두 오랑캐라고 불렀다. 자기 나라를 중심으로 동쪽(우리나라)에 있으니 ‘東夷’, 서쪽에 있는 것을 ‘西戎’ 남쪽에 있다고 南蠻, 북쪽에 있다고 北狄이라 이름 붙인 것이다. 여기서 ‘夷’, ‘戎’, ‘蠻’, ‘狄’이 모두 오랑캐로 얕보고 오랑캐라고 이름 붙였을 뿐이지 실제로 오랑캐는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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