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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句麗를 고구리로 읽어야 하는 까닭(3)
24/02/14 10:21:35 金 鍾國 조회 162

2. 세계 속의 고리(高句麗): 막북(몽골) 초원에서 로마까지
 (한문이 아닌 사료가 말하는 전혀 새로운 진실)
宋나라를 이은 南齊의 황제 역시 고구려왕(장수왕 394~491)에게 ‘영주, 평주 도둑’으로 임명한다. 당시 고구려는 北燕을 흡수하면서(AD 436) 이 지역에 대한 영향을 확대하고 있다.
옆 지도의 평주, 영주, 거란, 지역은 5세기(장수왕 당시) 고구려 땅이었고, 唐나라 시기(660년 이전) 고구려와 경계했다.
 
 장례식의 위용을 나타내기 위해 조문을 온 11개 나라를 이어서 기록하고 있다 가장 먼저 고리(高麗)를 나타내는 뵈클리가 나온다.

<晉太康三年> 華沅(1770~1797), 淸代 저명 학자가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통전(당나라 801년 편성)>: 秦이 쌓은 長城은 갈석에서 시작되는데, 현재의 고려(발해, 옛 고구려)와의 경계이다. 갈석산이 아니다.쌍기둥무덤(雙楹塚쌍영총)에 닭(날개) 깃털을 꽂은 모자를 쓴 그림이 그려져 있다.
 
남북조시대(420~589년)북조 북위, 수나라 등의 역사서로 唐의 이연수가 659년에 지은 <北史>의 권 94 열전 제 82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周建德 6년, 湯(평원왕559~590) 使者가 周나라에 이르렀는데, 武帝가 탕을 上開府儀同大將軍으로 삼았다. 遼東郡公 遼東王. 隨文帝受禪(581), 湯遣使詣闕, 進授大將軍 改封高麗王, 其國, 동으로 新羅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遙까지 2천리이고 남쪽으로는 백제에 이른다. 북으로는 말갈에 이르며 1천리가 된다.‘
<新唐書>> 권2020 列傳 제145: 高麗 本扶餘別種이다. 땅 동쪽 바다 건너 신라와 떨어져 있다. 남쪽 역시 바다 건너 백제와 떨어져 있다. 서북쪽은 요수와 함께 營州와 접하고 북쪽에 말갈이 있다.
 
3. 하늘 닭과 태양 새(三足烏)
동진(東晋, 317~419) 곽박(郭璞, 276~324)의 玄中記에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봉래(蓬萊) 동쪽에 대여(岱輿)라는 산이 있고, 그 위에 부상(扶桑)이란 나무가 있는데, 나무 높이가 천길(丈)이나 된다. 나무 꼭대기에는 늘 하늘닭(天鷄)이 있고, 나무 위에 집이 있다.
*날마다 子時가 되면 하늘닭(天鷄)이 운다.
*하늘 닭이 울면 태양 속에 있는 태양새(陽鷄)가 그 소리에 맞추어 울고
*태양새가 울면 천하의 닭이 모두 운다.
⁂ 하늘닭(天鷄) → 태양새(陽鳥: 三足烏 ) → 천하닭(天下鷄)

4.일본 法隆寺 불상 대좌에 그려진 닭 깃털 관<1992년 발견>
대좌 속에 그려진 그림의 정체에서 찾은 닭털 깃이 꽂힌 使者의 모자가 보인다. 좌우 사진에서 분명 고리의 使者임을 알 수 있다.   

5. 도관칠개국은합(都管七個國六辦銀盒)에 그려진 닭깃털관(鷄羽冠)
 여기서도 고리의 使臣이 발견되고 있다. 

 
6. 당나라 사리함에 새겨진 고리(高麗)의 닭깃털관
*법지사(法池寺) 사리함에 그려진 닭털관 1990년 산시섬(陜西省) 란티엔현(藍田縣)짜이꽈이촌(蔡拐村), 흙을 파내던 중 발견된 사리를 단음 돌함 발견, 사리함 외벽에 그려진 고리 사신의 모습과 손님을 맞이하는 고리 사신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그 외에도 사리를 나누는 모습과 다비하는 그림에서도 고리의 사신모습이 들어 있다.
 
린퉁(臨潼) 박물관 양방(梁芳)선생이 축사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오늘 교수님의 연구 성과가 나왔는데, 코로나 사태 이후 가장 기쁜 소식이군요. 그 해 여름 교수님과 사모님이 에스페란토 王선생님과 함께 특별히 시안(西安) 린퉁(臨潼) 박물관을 방문하여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고증하시던 모습은 이곳 박물관 직원들에게 아주 깊은 이상을 남겼습니다. 교수님의 철저한 학문적 자세, 넓은 학식, 지칠 줄 모르고 부지런한 학문 탐구 정신은 정말로 존경스러웠습니다. 교수님의 책 출판을 축하하며, 책속에 우리 박물관 유물의 사진과 자료들에 대한 상세하고 확실한 연구를 해주신 점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는 우리 박물관의 연구에도 많은 보충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교수님의 공헌에 감사드립니다.  

7.고구리시대 벽화
막도굴(莫高窟) 220호 벽화의 닭깃털관(鷄羽冠)- 642년

닭깃털관 벽화 가운데 9개만 당나라 지배하에 그리고 나머지 25개 모두 토번을 비롯한 다른 민족이 그린 것이다.
당시 그림으로 세계 주요 나라를 그릴 때 고리(高麗)가 동쪽 나라를 대표하는 나라가 되었고, 고리(高麗)를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닭깃털관이 梁나라 이후 당나라를 거쳐 西夏시대까지 이어졌다.
 
나가며
우리역사바로알기 모임의 서 길수 교수의 현지 탐방 연구 논문과 저서의 자료에서 고구려가 고리(高麗)라는 이름으로 바뀌는 과정을 기술했다. 우리나라, 중국, 일본 字典에서 麗를 ‘려’로도 읽고, ‘리’로 읽으며 高麗를 ‘고리’로 읽는다고 되어있다. 또 고구려를 ‘고구리’로 읽어야 한다고 나와 있다. 사료에 따르면 廣開土大王代까지는 고구려라 했다가 國名이 바뀐 것은 기원 413년 장수왕 때 ‘고구리’로 바꾸었다. 이러한 대도 우리나라에서는 끄떡하지 않는 것이 무척 아쉽다.
이처럼 실크로드에 고구리 고리의 아바타(化身)들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의정(義淨, 635~714)이 『대당서역구법고승전(大唐西域求法高僧傳)』에서 “그 나라는 닭신을 공경하고 우러러 보기 때문에 (닭의)깃털을 머리에 꽂아 겉을 장식했다고 한다. 서방에서는 고리(高麗)를 꾸꾸떼슈바라(닭신, 계신)이라고 부른다”라는 기록이 정확하게 이어지고 있었고, 고구리(高句麗), 고리(高麗)는 한문기록에 비하여 그 활동범위가 실크로드를 넘어 로마까지 알려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구려를 비롯한 백제와 신라의 使臣들도 1만 리가 넘는 거리임에도 각 나라의 사신으로 사마르칸트까지 교역과 외교를 위해 왕래했었다는 벽화나 사리함, 使臣圖에 나타나 있음을 잘 확인해 보았다. 삼국 가운데 특히 고리의 사신이 돋보이며, 날마다 子時가 되면 하늘 닭(天鷄)이 울면, 태양 속에 있는 태양 새(三足烏)가 그 소리에 맞추어 천하의 닭이 모두 운다는 태양신(三足烏)을 숭배한 고구려인들의 삶을 우리는 인식할 수 있다. 그래서 三足烏가 고리인(高麗人)들의 정신세계 속에 깊이 저져있었음을 넉넉히 알 수 있다.
특히 서길수 교수는 고리의 아바타인 닭깃털관을 쓰고 다녀 자랑과 긍지로 삼은 것을 세계 곳곳을 다니며 찾아 여러 권의 책을 쓰면서 증명해낸 탐구정신을 기리며 고마움을 전한다. 한편 우리나라 명칭을 정리해 보면 고리(高麗)가 돌궐에서는 구리, 고리이고, 로마에서는 크리, 산스크리트는 꾸리로 되어 전체적으로 ‘리’가되고 ‘고(高)’가 코로 되고 끝자리에 a가 붙으면 나라가 되니 “KOREA”가 國名이 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참고도서: 세계 속의 고리(高句麗) 서길수, 高句麗古墳壁畵 고구려연구회편, 서길수 교수의
고구리-고리연구(1~5)강좌 (사) 우리역사바로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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