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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2 (1). 평양성(平壤城)을 수복(收復)함
23/08/03 09:09:47 金 鍾國 조회 1652
제 2 권
1. 평양성(平壤城)을 수복(收復)함.
十二月 天朝大發兵 以兵部右侍郎宋應昌爲經略 兵部員外郞劉黃裳⋅主事袁黃爲贊畫軍務 駐遼東. 提督李如松爲大將 率三營將李如柏⋅張世爵⋅楊元 及南將駱尙志⋅吳惟忠⋅王必迪等 渡江 兵數四萬餘.
先是沈惟敬旣去 倭果斂兵不動 旣而過五十日 惟敬不至 倭疑之. 聲言歲時 將飲馬鴨綠江 自賊中逃回者 皆言賊大修攻城之具 人以益惧.
十二月初 劉敬又至 再入城中 留數日 更相約誓而去 所言不聞. 至是兵至安州 下營於城南 旌旗器械 整肅如神.
余請見提督白事 提督在東軒許入 乃頎然丈夫也. 設椅相對 余袖出平壤地圖 指示形勢兵所從入之路 提督傾聽 輒以朱筆點其處 且曰「倭但恃鳥銃耳 我用大炮 皆過五六里 賊何可當也?」
余旣退 提督於扇面 題詩寄余云「提兵星夜渡江干 爲説三韓國未安. 明主日懸旌節報 微臣夜釋酒杯歎. 着來殺氣心猶壯 此去妖氛骨已寒. 談笑敢言非勝算 夢中常憶跨征鞍.」
時城中漢兵皆滿. 余在百祥樓 夜半 忽有唐人 持軍中密約三條來示 問其姓名 不告而去.
提督使副總兵査大受 先往順安 紿*13)倭奴曰「天朝已許和 沈遊擊且至.」
倭喜 玄蘇獻詩曰「扶桑息戰服中華 四海九州同一家. 喜氣忽消寰外雪 乾坤春早太平花.」
時癸巳年春正月初吉也. 使其小將平好官 領二十餘倭 出迎沈遊擊于順安. 査總兵 誘與飲酒 伏起縱擊之 擒平好官 斬戮從倭幾盡 三人逸馳去 賊中始知兵至 大擾.
時大軍已到肅川 日暮方下營做飯 報至. 提督彎弓鳴弦 卽以數騎 馳赴順安 諸營陸續進發
翌日朝 進圍平壤 攻普通門⋅七星門. 賊登城上 列竪紅白旗拒戰 天兵以大炮⋅火箭攻之 炮聲震地 數十里間山岳皆動 火箭布空如織 烟氣蔽天 箭入城中 處處火起 林木皆焚.
駱尙志⋅吳惟忠等 率親兵蟻附登城 前者墜後者升 莫有退者. 賊刀攀下垂城堞如蜎毛 天兵戰益力 賊不能支 退入內城 斬戮焚燒 死者甚衆.
天兵入城攻內城 賊於城上爲土壁 多穿孔穴 望之如蜂窼. 從穴中銃丸亂發. 天兵多傷 提督慮窮寇致死 收軍城外 以開走路 其夜賊乘氷過江遁去.
先是余在安州 聞大兵將出 密報黃海道防禦使李時言⋅金敬老 使邀其歸路 戒之曰「兩軍沿道設伏 俟賊過躡其後 賊飢困遁走. 無心戀戰 可盡就縛.」時言卽至中和 敬老辭以他事 余又遣軍官姜德寬督之 敬老不得已亦來中和. 賊退前一日 因黃海道巡察使柳永慶關 還走載寧. 時永慶在海州欲自衞 而敬老憚與賊戰避去.
賊將平行長⋅平義智⋅玄蘇⋅平調信等 率餘衆連夜遁還 氣乏足蠒 跛躃而行 或匍匐田間 指口乞食. 我國無一人出擊 天兵又不追之. 獨李時言 尾其後不敢逼 但斬飢病落後者六十餘級.
是時倭將之在都城者平秀嘉 乃關白姪 或言婿也. 年幼不能主事 軍務制在行長. 而淸正在咸鏡道未還 若行長⋅義智⋅玄蘇等就擒 則京城之賊自潰. 京城潰 則淸正歸路斷絶 軍心汹懼 必沿海遁走 不能自拔. 漢江以南賊屯 次第瓦解 天兵鳴鼓徐行 直至釜山 痛飲而已. 俄頃之間 海岱肅淸 安有數年之紛紛哉? 一夫不如意 事關天下 良可痛惜.
余狀啓請斬金敬老 蓋余爲平安道體察使 敬老非管下 故先請之. 朝廷遣宣傳官李純一 持標信至開城府 欲誅之 先吿于提督 提督曰「其罪應死 然賊未滅 一武士可惜 姑令白衣從軍 使之立功贖罪 可也.」爲咨文授純一而送.

12월에 명(明)나라가 크게 군사를 일으켜 병부우시랑(兵部右侍郞) 송응창(宋應昌)*1)을 경략(經略)으로 삼고, 병부원외랑(兵部員外郞) 유황상(劉黃裳)*2), 주사(主事) 원황(袁黃)*3)을 찬획군무(贊畫軍務)로 삼아 요동(遼東)에 주둔하게 하고, 제독(提督) 이여송(李如松)을 대장(大將)으로 삼아 삼영장(三營將)인 이여백(李如柏)*4)⋅장세작(張世爵)⋅양원(楊元)과 남방장수[南將] 낙상지(駱尙志)⋅오유충(吳惟忠)⋅왕필적(王必迪) 등을 거느리게 하여 압록강(鴨綠江)을 건너오니, 그 군사의 수효는 4만여 명이었다. 이보다 먼저 심유경(沈惟敬)이 돌아간 뒤에 왜적(倭敵)들은 과연 군사를 거두고 움직이지 않았는데, 이미 약속한 50일이 지나도 심유경이 오지 않으니 倭敵들은 의심하여 <세시(歲時 : 설)에는 말을 몰아 압록강(鴨綠江)에서 물을 먹이겠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倭敵에게 잡혔다가 그 속에서 도망하여 돌아온 사람도 다 "倭敵들이 성을 공격할 때 쓰는 기구를 크게 수리한다."고 하므로, 사람들은 더욱 두려워하였다.

12월 초에 심유경[惟敬]이 또 와서 평양성(平壤城)으로 들어가 며칠을 머무르며 다시 서로 약속을 하고 돌아갔으나, 그러나 말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때에 이르러 明나라 구원병이 안주(安州)에 이르러 병영[營]을 성 남쪽에 설치하니, 그 깃발과 기계가 정돈되고 엄숙함이 귀신 같았다. 내가 제독(提督 : 李如松)을 만나보고 할 말이 있다고 청하였더니, 제독은 동헌(東軒)에 있으면서 들어오라 허락하기에 보니, 곧 키가 크고 품위가 있는 장부다운 사람이었다. 의자를 놓고 마주 앉은 다음 내가 소매 속에서 평양성의 지도[平壤地圖]를 꺼내 놓고 그 형세와 군사들이 어디로부터 들어가야 할 길을 가리켜 보이니, 제독은 주의깊게 들은 다음, 곧 붉은 붓을 가지고 가리키는 곳마다 점을 찍어 표를 하였다. 그리고 말하기를, "倭敵들은 다만 조총(鳥銃)을 믿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대포(大砲)를 사용하는데다 5, 6리를 지나가 맞으니 倭敵들이 어떻게 당해 내겠습니까?" 하였다.

내가 물러나온 다음 제독은 부채[扇面]에 시(詩)를 지어 보내왔는데 이르기를,
提兵星夜渡江干(제병성야도강간) : 군사를 거느리고 압록강(鴨綠江)을 건너옴은
爲説三韓國未安(위설삼한국미안) : 삼한(三韓)의 나라안이 안정되지 못한 때문.
明主日縣旌節報(명주일현정절보) : 명주(明主)께선 날마다 첩보(捷報) 오길 기다리고
徵臣夜釋酒杯歎(징신야석주배탄) : 이 몸도 밤들어 술잔 들고 즐기는 것 그만뒀네.
 
春來殺氣心猶壯(춘래살기심유장) : 봄이 살기를 띠고 왔었지만 마음은 오히려 장렬해지고
此去妖氛骨已寒(차거요분골이한) : 이젠 왜적(倭敵)들도 뼈가 벌써 저리겠네.
談笑敢言非勝算(담소감언비승산) : 담소(談笑)엔들 어찌 감히 승산이 없다고 말하리오?
夢中常憶跨征鞍(夢中常憶跨征鞍) : 꿈속에도 말 달리는 싸움터를 생각하오. 라고 하였다.

이때 안주성(安州城) 안에는 明나라 군사로 가득 찼다. 나는 백상루(百祥樓)에 있었는데, 밤중에 갑자기 明나라 사람이 군사상의 비밀 약속[密約] 세 조목[三條目]을 가지고 와서 내보였다. 그의 성명을 물었으나 그는 알려 주지 않고 가버렸다. 제독(提督 : 李如松)은 부총병(副總兵) 사대수(査大受)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고 먼저 순안(順安)으로 가서 倭敵 놈을 속여 말하기를, "明나라에서는 이미 강화를 허락하여 심유격(沈遊擊 : 沈惟敬)이 또 왔다."라고 하게 하였다. 倭敵들은 기뻐하고 현소(玄蘇)는 시(詩)를 지어 바쳤는데 말하기를, 扶桑*5)息戰服中華(부상식전복중화) : 일본(日本)이 싸움을 그치고 중화(中華)에 복종하니 四海*6)九州*7)同一家(사해구주동일가) : 사해(四海)와 구주(九州)가 한 집안이 되었구나.

喜氣忽消寰*8)外雪(희기홀소환외설) : 기쁜 기운이 갑자기 밖의 눈을 녹여 놓으니 乾坤春旱太平花(건곤춘한태평화) : 세상엔 봄이 이른데 태평화(太平花)가 피었구나. 라고 하였다. 이때는 계사년[癸巳 : 宣祖 26年, 1593] 정월(正月) 초 하루[初吉]였다. 倭敵은 그 소장(小將) 평호관(平好官)으로 하여금 20여 명의 倭敵을 거느리고 나와서 심유격(沈遊擊)을 순안(順安)에서 맞게 하였다. 사총병(査總兵)은 그들을 유인하여 함께 술을 마시다가 복병을 일으켜 그들을 닥치는 대로 몰아쳐서 平好官을 사로잡고 그를 따라 온 倭敵들을 거의 다 베어 죽여 버렸다. 그중에서 세 사람이 도망하여 달려가자, 倭敵들은 비로소 明나라 군사가 온 것을 알고 크게 소란하여졌다.

이때 明나라 대군이 벌써 숙천(肅川)에 도착하여 날이 저물었으므로 병영을 마련하고 밥을 짓고 있었는데 이 보고가 이르자, 제독(提督)이 화살을 쏘아 신호를 하고[명현(鳴弦) : ①우는 활 시위. ②활 시위를 울림은 활 시위 소리와 함께 바로 이것이 진격의 신호 음인 것이다.] 즉시 몇 사람의 기병(騎兵)을 거느리고 말을 달려 순안(順安)으로 달려오니 모든 병영의 군사들이 계속 출발하여 나왔다. 그 다음날 아침에 나아 가 평양성[平壤]을 포위하고 보통문(普通門)⋅칠성문(七星門)을 공격하였다. 倭敵은 성 위로 올라가서 붉은 기, 흰 기[紅白旗]를 벌여 세우고 막아싸웠다. 明나라 군사가 대포(大砲)와 화전(火箭 : 불화살)으로 이를 공격하니, 대포소리가 땅을 진동시키고 몇 십리 안의 산악까지 다 움직였으며,화전(火箭)이 하늘에 베를 짜는 실오리처럼 퍼지고 연기가 하늘을 덮고 불화살이 성 안에 들어가 떨어져 곳곳에서 불이 일어나 나무들까지 다 불붙어 버렸다.

낙상지(駱尙志)⋅오유충(吳惟忠) 등은 친히 군사를 거느리고 개미처럼 붙어 성을 기어 올라 앞사람이 떨어져도 뒷사람이 올라 물러서는 사람이 없었다. 倭敵들이 창칼을 성첩(城堞)에 고슴도치 털처럼 드리워 놓았으나 明나라 군사들이 더욱 세차게 싸우니,倭敵들은 능히 견디어 내지 못하고 물러서 내성(內城)으로 들어갔는데 이 싸움에서 베어 죽이고 불태워 죽인 倭敵의 수는 매우 많았다. 明나라 군사는 성 안으로 들어가서 내성(內城)을 공격하니, 倭敵들은 성 위에 흙벽을 만들고 이곳에 많은 구멍을 뚫어 놓았는데 마치 벌집과 같았다. 倭敵들은 이 구멍으로부터 총알을 어지럽게 쏘아 明나라 군사가 많이 상하였다. 제독(提督)은,궁한 도둑들은 죽기를 다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군사를 성 밖으로 거두어 그들이 도망할 길을 열어 놓으니, 그날 밤에 倭敵들은 대동강(大同江)의 얼음을 타고 강을 건너 도망하여 갔다.

이보다 먼저 내가 안주(安州)에 있을 때 明나라 대군이 나오려 한다는 말을 듣고 비밀히 황해도방어사(黃海道防禦使) 이시언(李時言)⋅김경로(金敬老)에게 倭敵들이 돌아가는 길목에서 맞아 치라고 하며 경계하기를, "양군(兩軍 : 李時言⋅金敬老)이 길가에 복병을 베풀고서 倭敵들이 지나갈 때 그 뒤를 짓밟아라. 倭敵들은 굶주리고 피곤하게 도망하는 터이므로 싸움할 마음도 없을 것이니, 다 사로잡아서 묶을수 있으리라." 하였더니, 이시언[時言]은 즉시 떠나 중화(中和)에 이르렀으나, 김경로[敬老]는 다른 일을 핑계하며 듣지 않았으므로 나는 군관(軍官) 강덕관(姜德寬)을 파견하여 독촉하게 했더니, 김경로는 마지못한 듯 역시 중화(中和)로 나왔으나 倭敵이 물러가기 하루 전에 황해도순찰사(黃海道巡察使) 유영경(柳永慶)*9)의 공문[關]에 따라 되돌아서 재령(載寧)으로 달아났다.

이때 유영경[永慶]은 해주(海州)에 있었는데 김경로를 불러서 자신을 보위하려고 하였고,그리고 김경로는 倭敵과 싸우는 것을 두려워해서 피하여 가버린 것이다. 倭敵의 장수 평행장(平行長)⋅평의지(平義智)⋅현소(玄蘇)⋅평조신(平調信) 등은 남은 군사를 거느리고 밤을 새워 도망하여 돌아가는데, 기운은 빠지고 발은 부르터 절룩거리면서 걸어갔으며, 혹은 밭고랑을 기어가기도 하고, 입을 가리키며 밥을 빌어먹기도 하였으나 우리나라에선 한 사람도 나와서 치는 일이 없었고, 明나라 군사도 또한 이를 추격하지 않았으며, 홀로 이시언(李時言)이 그 뒤를 밟았으나 감히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고, 다만 굶주리고 병들어 뒤떨어진 놈들 60여 명의 목을 베었을 뿐이었다.

이때 倭敵의 장수로서 서울에 머물러 있던 자는 평수가(平秀嘉)*10)였는데, 그는 곧 관백(關白 : 豊臣秀吉)의 조카라고도 하고, 혹은 그 사위라고도 말하는데, 그는 나이가 어려서 모든 일을 주관할 수 없었으므로 군사적 사무는 소서행장(小西行長)이 다스리고 있었다. 그리고 가등청정(加籐淸正)이 함경도(咸鏡道)에 있으며 돌아오지 않았으므로, 만약 小西行長⋅의지(義智)⋅현소(玄蘇) 등을 사로잡았을 것 같으면 서울 의 倭敵은 저절로 무너졌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가등청정[淸正]은 돌아갈 길이 끊어져 버려서 군사들의 마음이 흉흉하여 두려워하게 되고, 그들이 바닷가를 따라 도망한다 해도 스스로 빠져나갈 수 없었을 것이고, 한강(漢江)으로부터 남쪽에 주둔한 倭敵들은 차례로 부서져서 明나라 군사가 북을 울리며 천천히 따라가기만 하여도 바로 부산(釜山)까지 이르러 싫도록 술을 마셨을 것이고, 잠깐 동안에 온나라 강산 안의 倭敵이 숙청되었으리니, 어찌 몇 해 동안을 두고 어지럽게 싸웠을 리 있으리오? 한 사람[金敬老]의 잘못한 일이 온 천하에 관계되었 으니, 실로 통분하고 애석한 일이다.

나는 장계(狀啓)를 올려 김경로(金敬老)를 목베자고 청하였다. 이는 대개 내가 평안도체찰사(平安道體察使)로 되어 있어서 김경로는 나의 관할 밑이 아니었으므로 먼저 이를 청한 것이다. 조정에서는 선전관(宣傳官) 이순일(李純一)을 파견하여 표신(標信)*11)을 가지고 개성부(開城府)에 이르러 그를 죽이려 하다가 먼저 제독(提督)에게 알렸더니 제독은 말하기를, "그의 죄는 마땅히 죽여야 하겠으나, 그러나 倭敵이 아직 섬멸되지 않았으므로 한 사람의 무사라도 죽이기는 아까우니, 우선 백의종군(白衣從軍)*12)하여 그로 하여금 공을 세워 그 죄를 벗도록 함이 옳을 것입니다."라고 하면서, 공문을 만들어 이순일[純一]에게 주어 돌려보냈다.

*1)송응창(宋應昌) : 명(明)나라 신종(神宗) 때의 병부우시랑(兵部右恃郞).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경략(經略 : 중국 벼슬 이름)으로 요동(遼東)에 주둔하였다.
*2)유황상(劉黃裳) : 명(明)나라 신종(神宗) 때의 병부원외랑(兵部員外郞). 임진왜란 때 明나라 구원병의 군무(軍務)를 찬획(贊畫 : 도와서 꾀함)함.
*3)원황(袁黃) : 명(明)나라 신종(神宗) 때의 병부주사(兵部主事).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明나라 구원병의 군무(軍務)를 찬획(贊畫 : 도와서 꾀함)함.
*4)이여백(李如柏) : 명(明)나라 신종(神宗) 때의 무장.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삼영장(三營將)의 한 사람으로 출전함. 곧 제독(提督) 이여송(李如松)의 아우.

*5)부상(扶桑) : 옛날에는 동쪽 바다의 해가 뜨는 곳을 말했는데,여기서는 日本을 일컬어 부상(扶桑)이라고 한다.
*6)사해(四海) : 中國 밖의 천하.
*7)구주(九州) : 구주(九州)는 中國 본토를 말함.
*8)환(寰) : ①기내(畿內). 나라. 천자(天子)가 직할하던 도읍 주변의 영지(領地). ②천하. 하늘 아래. ③에워싸다.
*9)유영경(柳永慶, 1550∼1608) : 조선조 宣祖 때의 문신. 자는 선여(善餘), 호는 춘호(春湖), 본관은 전주(全州).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초유어사(招諭御使)가 되어 군사를 모집하는 데 공이 컸다.
*10)평수가(平秀嘉) : 倭敵의 장수, 곧 우희다수가(字喜多秀家). 풍신수길(豐臣秀吉)의 양자.

*11)표신(標信) : 조선조 때 궁중에 급변을 전할 때, 궁궐문을 개폐하거나 드나들 때 지니는 증표.
*12)백의종군(白衣從軍) : 군적(軍籍) 없이 종군(從軍)하도록 하는 일. 무관의 죄를 경감하여 장공속죄(將功贖罪) 시키는 은전(恩典). 죄인의 몸으로 종군하는 것.
*13)태(給) : 속일 태. 속이다. 빌리다. 의심하다. 감다. 게을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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