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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토 고문진보 후집
21/07/19 16:09:20 김정현 조회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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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토 고문진보 후집입니다.  
현토 古文眞寶後集


離騷經
 
屈平(原)
 
帝高陽之苗裔兮여 朕皇考曰伯庸이라
攝提貞于孟陬兮여 惟庚寅吾以降이라
皇覽揆余于初度兮여 肇錫予以嘉名이라
名余曰正則兮여 字余曰靈均이라
紛吾旣有此內美兮여 又重之以脩能이라
扈江離與辟芷兮여 紉秋蘭以爲佩라
汨余若將不及兮여 恐年歲之不吾與라
朝搴阰之木蘭兮여 夕攬洲之宿莽이라
日月忽其不淹兮여 春與秋其代序라
惟草木之零落兮여 恐美人之遲暮라
不撫壯而棄穢兮여 何不改乎此度오
乘騏驥以馳騁兮여 來吾道夫先路호리라
昔三后之純粹兮여 固衆芳之所在로다
雜申椒與菌桂兮여 豈維紉夫蕙․리오
彼堯舜之耿介兮여 旣遵道而得路라
何桀紂之昌披兮여 夫唯捷徑以窘步로다
惟黨人之偸樂兮여 路幽昧以險隘라
豈余身之憚殃兮여 恐皇輿之敗績이라
忽奔走以先後兮여 及前王之踵武라
荃不揆余之中情兮여 反信讒而齌怒라
余固知謇謇之爲患兮나 忍而不能舍也로다
指九天以爲正兮여 夫唯靈脩之故也라
曰黃昏以爲期兮여 羌中道而改路라
初旣與余成言兮여 後悔遁而有他라
余旣不難夫離別兮여 傷靈脩之數化라
余旣滋蘭之九畹兮여 又樹蕙之百畝라
畦留夷與揭車兮여 雜杜衡與芳芷라
冀枝葉之峻茂兮여 願竢時乎吾將刈라
雖萎絶其亦何傷兮여 哀衆芳之蕪穢라
衆皆競進以貪婪兮여 憑不厭乎求索이라
羌內恕己以量人兮여 各興心而嫉妬라
忽馳騖以追逐兮여 非余心之所急이라
老冉冉其將至兮여 恐修名之不立이라
朝飮木蘭之墜露兮여 夕餐秋菊之落英이라
苟余情其信姱以練要兮여 長顑頷亦何傷가
擥木根以結茞兮여 貫薜荔之落蘂라
矯菌桂以紉蕙兮여 索胡繩之纚纚라
謇吾法夫前修兮여 非世俗之所服이라
雖不周於今之人兮나 願依彭咸之遺則하리라
長太息以掩涕兮여 哀民生之多艱이라
余雖好修姱以鞿覊兮여 謇朝誶而夕替라
旣替余以蕙纕兮여 又申之以攬茞라
亦余心之所善兮여 雖九死其猶未悔라
怨靈脩之浩蕩兮여 終不察夫民心이라
衆女嫉余之蛾眉兮여 謠諑謂余以善淫이라
固時俗之工巧兮여 偭規矩而改錯라
背繩墨以追曲兮여 競周容以爲度라
忳鬱邑余侘傺兮여 吾獨窮困乎此時也라
寧溘死以流亡兮여 余不忍爲此態也라
鷙鳥之不群兮여 自前世而固然이라
何方圜之能周兮여 夫孰異道而相安가

漁父辭
屈平
 
屈原이 旣放에 游於江潭하여 行吟澤畔할새 顔色憔悴하고 形容枯槁러니 漁父見而問之曰 子非三閭大夫與아 何故至於斯오
屈原曰 擧世皆濁이어늘 我獨淸하고 衆人皆醉어늘 我獨醒이라 是以見放이로라
漁父曰 聖人은 不凝滯於物하여 而能與世推移하나니 世人皆濁이어든 何不淈其泥而揚其波하며 衆人皆醉어든 何不餔其糟而歠其醨하고 何故深思高擧하여 自令放爲오
屈原曰 吾聞之하니 新沐者는 必彈冠이요 新浴者는 必振衣라하니 安能以身之察察로 受物之汶汶者乎아 寧赴湘流하여 葬於江魚之腹中이언정 安能以皓皓之白으로 而蒙世俗之塵埃乎아 漁父莞爾而笑하고 鼓枻而去하여
乃歌曰 滄浪之水淸兮어든 可以濯吾纓이요 滄浪之水濁兮어든 可以濯吾足이로다 遂去하여 不復與言하니라
 
上秦皇逐客書
李斯
 
臣聞吏議逐客이라하니 竊以爲過矣라하노이다 昔者에 繆公은 求士하여 西取由余於戎하고 東得百里奚於宛하고 迎蹇叔於宋하고 來邳豹公孫支於晉하니 此五子者는 不産於秦이로되 而繆公用之하여 幷國二十하여 遂霸西戎하니이다
孝公은 用商鞅之法하여 移風易俗하여 民以殷盛하고 國以富强하며 百姓樂用하고 諸侯親服하며 獲楚魏之師하고 擧地千里하여 至今治强하니이다 惠王은 用張儀之計하여 拔三川之地하고 西幷巴蜀하고 北收上郡하고 南取漢中하며 包九夷하고 制鄢郢하며 東據成皐之險하고 割膏腴之壤하여 遂散六國之從하여 使之西面事秦하여 功施到今하니이다 昭王은 得范睢하여 廢穰侯 逐華陽하여 彊公室 杜私門하며 蠶食諸侯하여 使秦成帝業하시니 此四君者는 皆以客之功하니 由此觀之컨대 客何負於秦哉잇가 向使四君이 郤客而不內하고 踈士而不用이런들 是는 使國無富利之實이요 而秦無彊大之名也리이다
今陛下致昆山之玉하고 有隨和之寶하고 垂明月之珠하고 服太阿之劍하고 乘纖離之馬하고 建翠鳳之旗하고 樹靈鼉之鼓하시니 此數寶者는 秦不生一焉이어늘 而陛下說之는 何也잇고 必秦國之所生然後可인댄 則是는 夜光之璧이 不飾朝廷이요 犀象之器 不爲玩好요 鄭衛之女 不充後宮이요 而駿良駃騠가 不實外廐요 江南金錫이 不爲用이요 西蜀丹靑이 不爲采며 所以飾後宮 充下陳하고 娛心意 說耳目者가 必出於秦然後可인댄 則是는 宛珠之簪과 傅璣之珥와 阿縞之衣와 錦繡之飾이 不進於前이요 而隨俗雅化하여 佳冶窈窕趙女가 不立於側也리이다
夫擊甕叩缶하고 彈箏搏髀而歌呼嗚嗚하여 快耳目者는 眞秦之聲也요 鄭衛桑間 昭虞象武者는 異國之樂也니이다 今棄擊甕叩缶而就鄭衛하며 退彈箏而取昭虞하니 若是者는 何也오 快意當前하여 適觀而已矣니이다 今取人則不然하여 不問可否하며 不論曲直하고 非秦者去하며 爲客者逐하니 然則是所重者는 在乎色樂珠玉이요 而所輕者는 在乎人民也니 此非所以跨海內 制諸侯之術也니이다
臣聞 地廣者粟多하고 國大者人衆하고 兵强則士勇이라하니 是以로 泰山은 不辭土壤이라 故로 能成其大하고 河海는 不擇細流라 故로 能就其深하고 王者는 不卻衆庶라 故로 能明其德이니이다 是以로 地無四方하고 民無異國하여 四時充美하고 鬼神降福하나니 此五帝三王之所以無敵也니이다 今乃棄黔首以資敵國하고 卻賓客以業諸侯하여 使天下之士로 退而不敢西向하여 裹足不入秦하니 此所謂藉寇兵而齎盜糧者也니이다 夫物不産於秦이로되 可寶者多하고 士不産於秦이로되 願忠者衆이어늘 今逐客以資敵國하고 損民以益讐하여 內自虛而外樹怨於諸侯하니 求國無危라도 不可得也리이다

秋風辭
 
漢武帝(劉徹)
 
上이 行幸河東하여 祠后土러니 顧視帝京하고 欣然하여 中流에 與群臣飮燕할새 上歡甚하여 乃自作秋風辭하니 曰
 
秋風起兮白雲飛하니
草木黃落兮雁南歸로다
蘭有秀兮菊有芳하니
懷佳人兮不能忘이로다
泛樓船兮濟汾河하니
橫中流兮揚素波로다
簫鼓鳴兮發棹歌하니
歡樂極兮哀情多로다
少壯幾時兮奈老何오
 
過秦論
 
賈誼
 
秦孝公이 據殽函之固하고 擁雍州之地하여 君臣固守而窺周室하여 有席卷天下 包擧宇內 囊括四海 幷呑八荒之心이라 當是時也하여 商君佐之하여 內立法度하여 務耕織하고 修守戰之備하며 外連衡(橫)而鬪諸侯라 於是에 秦人拱手而取西河之外러니 孝公旣沒에 惠文武昭襄이 蒙故業 因遺策하여 南取漢中하고 西擧巴蜀하고 東割膏腴之地하고 北收要害之郡하니 諸侯恐懼하여 會盟而謀弱秦하여 不愛珍器重寶肥饒之地하고 以致天下之士하여 合從締交하여 相與爲一이라
當此之時하여 齊有孟嘗하고 趙有平原하고 楚有春申하고 魏有信陵하니 此四君者는 皆明智而忠信하고 寬厚而愛人하며 尊賢重士하여 約從離衡하여 兼韓魏燕趙宋衛中山之衆이라 於是에 六國之士에 有寗越 徐尙 蘇秦 杜赫之屬이 爲之謀하고 齊明 周最 陳軫 召滑 樓緩 翟景 蘇厲 樂毅之徒가 通其意하고 吳起 孫臏 帶佗 兒良 王廖 田忌 廉頗 趙奢之朋이 制其兵이라 嘗以什倍之地와 百萬之軍으로 仰關而攻秦호되 秦人이 開關延敵이어든 九國之師가 遁逃而不敢進하니 秦無亡矢遺鏃之費요 而天下諸侯已困矣라 於是에 從散約敗하여 爭割地而賂秦하니 秦有餘力而制其弊하여 追亡逐北하여 伏尸百萬하고 流血漂鹵하여 因利乘便하여 宰制天下하여 分裂河山하니 彊國은 請伏하고 弱國은 入朝라
施及孝文王莊襄王하여는 享國日淺하고 國家亡事러니 及至始皇하여 奮六世之餘烈하여 振長策而馭宇內하여 呑二周而亡諸侯하고 履至尊而制六合하여 執敲扑以鞭笞天下하니 威振四海라 南取百粵之地하여 以爲桂林象郡하니 百粵之君이 俛首係頸하여 委命下吏라 迺使蒙恬으로 北築長城而守藩籬하여 却匈奴七百餘里하니 胡人이 不敢南下而牧馬하며 士不敢彎弓而報怨이라 於是에 廢先王之道하고 焚百家之言하여 以愚黔首하며 墮名城 殺豪俊하고 收天下之兵하여 聚之咸陽하여 銷鋒鍉하여 鑄以爲金人十二하여 以弱天下之民하고 然後에 踐華爲城하고 因河爲池하여 據億丈之城하고 臨不測之淵하여 以爲固하며 良將勁弩 守要害之處하고 信臣精卒이 陳利兵而誰何하니 天下已定이라 始皇之心이 自以爲關中之固는 金城千里니 子孫帝王萬世之業也러니라
始皇旣沒에 餘威震于殊俗이라 然而陳涉은 甕牖繩樞之子요 甿隷之人而遷徙之徒也라 材能不及中庸이요 非有仲尼墨翟之賢과 陶朱猗頓之富로되 躡足行伍之間하고 俛起阡陌之中하여 率疲散之卒하고 將數百之衆하여 轉而攻秦할새 斬木爲兵하고 揭竿爲旗하니 天下雲會而響應하고 贏粮而景從하여 山東豪傑이 遂並起而亡秦族矣라
且天下非小弱也요 雍州之地와 崤函之固 自若也며 陳涉之位不尊於齊楚燕趙韓魏宋衛中山之君이요 鉏耰棘矜이 不敵於鉤戟長鎩이요 適戍之衆이 不亢於九國之師요 深謀遠慮 行軍用兵之道 非及曩時之士也언마는 然而成敗異變하고 功業相反은 何也오 試使山東之國이 與陳涉으로 度長絜大하고 比權量力이면 則不可同年而語矣라 然이나 秦以區區之地로 致萬乘之權하여 招八州而朝同列이 百有餘年矣라 然後에 以六合爲家하고 崤函爲宮이러니 一夫作難에 而七廟墮하고 身死人手하여 爲天下笑者는 何也오 仁誼不施하고 而攻守之勢異也일새니라


弔屈原賦
 
 
賈誼
 
恭承嘉惠兮여 竢罪長沙러니 仄聞屈原兮여 自湛汨羅로다 造托湘流兮여 敬弔先生이라 遭世罔極兮여 迺殞厥身하니 烏虖哀哉兮여 逢時不祥이로다 鸞鳳伏竄兮여 鴟鴞翶翔이요 闒茸尊顯兮여 讒諛得志하며 賢聖逆曳兮여 方正倒植로다 謂隨夷溷兮여 謂跖蹻廉이요 莫邪爲鈍兮여 鉛刀爲銛이로다 于嗟黙黙生之亡故兮여 斡棄周鼎하고 寶康瓠兮여 騰駕罷牛하고 驂蹇驢兮여 驥垂兩耳하고 服鹽車兮로다 章甫薦屨하니 漸不可久兮로다 嗟苦先生이여 獨離此咎兮로다
誶曰 已矣라 國其莫吾知兮여 子獨壹鬱其誰語오 鳳縹縹其高逝兮여 夫固自引而遠去며 襲九淵之神龍兮여 沕淵潛以自珍이라 偭蟂獺以隱處兮여 夫豈從蝦與蛭螾이리오 所貴聖之神德兮여 遠濁世而自臧이라 使麒麟可係而覊兮인댄 豈云異夫犬羊가 般紛紛其離此郵兮여 亦夫子之故也로다 歷九州而相其君兮여 何必懷此都也오 鳳凰翔于千仞兮여 覽德輝而下之로다 見細德之險微兮여 遙增擊而去之로다 彼尋常之汙瀆兮여 豈容呑舟之魚리오 橫江湖之鱣鯨兮여 固將制於螻螘로다
聖主得賢臣頌
 
 
王褒(子淵)
 
夫荷旃被毳者는 難與道純綿之麗密이요 羹藜含糗者는 不足與論太牢之滋味라 今臣이 僻在西蜀하여 生於窮巷之中하고 長於蓬茨之下하여 無有游觀廣覽之知하고 顧有至愚極陋之累하오니 不足以塞厚望應明旨로이다 雖然이나 敢不略陳其愚心하여 而抒情素리잇가
記曰 恭惟春秋法에 五始之要는 在乎審己正統而已라 夫賢者는 國家之器用也니 所任賢則趨舍省而功施普하고 器用利則用力少而就效衆이라 故로 工人之用鈍器也엔 勞筋苦骨하여 終日矻矻이라가 及至巧冶鑄干將之樸하여 淸水淬其鋒하고 越砥斂其鍔하여는 水斷蛟龍하고 陸剸犀革하여 忽若篲泛塵塗하나니 如此則使離婁督繩하고 公輸削墨이면 雖崇臺五層이 延袤百丈이라도 而不溷者는 工用相得也일새라
庸人之御駑馬엔 亦傷吻敝策而不進於行하여 胸喘膚汗하여 人極馬倦이라가 及至駕齧膝 參乘旦하여 王良執靶하고 韓哀附輿하여는 縱騁馳騖를 忽如景靡하고 過都越國을 蹶如歷塊하여 追奔電하고 逐遺風하여 周流八極하여 萬里一息하나니 何其遼哉오 人馬相得也일새라 故로 服絺綌之涼者는 不苦盛暑之鬱燠하고 襲狐貉之暖者는 不憂至寒之淒愴하나니 何則고 有其具者는 易其備일새라
賢人君子는 亦聖王之所以易海內라 是以로 嘔喩受之하여 開寬裕之路하여 以延天下之英俊하나니 夫竭智附賢者는 必建仁策하고 索遠求士者는 必樹伯迹이라 昔周公이 躬吐握之勞라 故로 有圄空之隆하고 齊桓이 設庭燎之禮라 故로 有匡合之功하니 由此觀之면 君人者는 勤於求賢이요 而逸於得人이라
人臣亦然하니 昔賢者之未遭遇也엔 圖事揆策則君不用其謀하고 陳見悃誠則上不然其信하여 進仕不得施效하고 斥逐又非其愆이라 是故로 伊尹이 勤於鼎俎하고 太公이 困於鼓刀하고 百里自鬻하고 寗子飯牛는 離此患也러니 及至遇明君遭聖主也하여는 運籌合上意하고 諫諍則見聽하여 進退에 得關其忠하고 任職에 得行其術하여 去卑辱奧渫而升本朝하고 離蔬釋蹻而享膏粱하며 剖符錫壤而光祖考하고 傳之子孫하여 以資說士라 故로 世必有聖知之君而後에 有賢明之臣이라 故로 虎嘯而風冽하고 龍興而致雲하며 蟋蟀俟秋吟하고 蜉蝣出以陰이니이다
易曰 飛龍在天에 利見大人이라하고 詩曰 思皇多士 生此王國이라하니 故로 世平主聖이면 俊乂將自至라 若堯舜禹湯文武之君이 獲稷 契 皐陶 伊尹 呂望之臣하여 明明在朝하고 穆穆布列하여 聚精會神하여 相得益章하니 雖伯牙操遞鍾하고 逄門子彎烏號라도 猶未足以喩其意也라
故로 聖主는 必待賢臣而弘功業하고 俊士는 亦俟明主以顯其德이라 上下俱欲하여 歡然交欣하여 千載一會하여 論說無疑하면 翼乎如鴻毛遇順風하고 沛乎若巨魚縱大壑하리니 其得意如此면 則胡禁不止며 曷令不行이리오 化溢四表하고 橫被無窮하여 遐夷貢獻하고 萬祥必臻이니라
是以로 聖主는 不徧窺望而視已明하고 不殫傾耳而聽已聰하여 恩從祥風翶하고 德與和氣游하여 太平之責이 塞하고 優游之望이 得이니 遵遊自然之勢하고 恬淡無爲之場하여 休徵自至하고 壽考無疆하여 雍容垂拱하여 永永萬年이니 何必偃仰屈伸을 若彭祖하고 喣噓呼吸을 如喬松하여 眇然絶俗離世哉리잇가 詩曰 濟濟多士여 文王以寧이라하니 蓋信乎以寧也니이다
樂志論
 
 
仲長統(公理)
 
使居有良田廣宅이 背山臨流하여 溝池環匝하고 竹木周布하며 場圃築前하고 果園樹後라 舟車足以代步涉之難하고 使令足以息四體之役하며 養親에 有兼珍之膳하고 妻孥無苦身之勞하며 良朋萃止면 則陳酒肴以娛之하고 嘉時吉日이면 則烹羔豚以奉之라 躕躇畦苑하고 遊戲平林하며 濯淸水 追涼風하고 釣游鯉 弋高鴻하며 風於舞雩之下하고 詠歸高堂之上이라
安神閨房하여 思老氏之玄虛하고 呼吸精和하여 求至人之彷彿이라 與達者數子로 論道講書하여 俯仰二儀하고 錯綜人物하며 彈南風之雅操하고 發淸商之妙曲이라 逍遙一世之上하고 睥睨天地之間하여 不受當時之責하고 永保性命之期하니 如是면 則可以凌霄漢하여 出宇宙之外矣니 豈羨夫入帝王之門哉아
出師表
 
 
諸葛亮(孔明)
 
先帝創業未半而中道崩殂하시고 今天下三分에 益州疲弊하니 此誠危急存亡之秋也니이다 然이나 侍衛之臣이 不懈於內하고 忠志之士 忘身於外者는 蓋追先帝之殊遇하여 欲報之於陛下也니이다 誠宜開張聖聽하사 以光先帝遺德하여 恢弘志士之氣요 不宜妄自菲薄하여 引喩失義하여 以塞忠諫之路也니이다 宮中府中이 俱爲一體니 陟罰臧否를 不宜異同이라 若有作奸犯科와 及爲忠善者어든 宜付有司하여 論其刑賞하여 以昭陛下平明之理요 不宜偏私하여 使內外異法也니이다
侍中侍郞 郭攸之 費褘 董允等은 此皆良實하여 志慮忠純이라 是以로 先帝簡拔하사 以遺陛下하시니 愚以爲宮中之事는 事無大小히 悉以咨之然後施行하시면 必能裨補闕漏하여 有所廣益하리이다 將軍向寵은 性行淑均하고 曉暢軍事하여 試用於昔日에 先帝稱之曰能이라하사 是以로 衆議擧寵爲督하니 愚以爲營中之事는 事無大小히 悉以咨之하시면 必能使行陣和睦하고 優劣得所也리이다
親賢臣 遠小人은 此先漢所以興隆也요 親小人 遠賢臣은 此後漢所以傾頹也라 先帝在時에 每與臣論此事에 未嘗不歎息痛恨於桓靈也니이다 侍中尙書 長史 參軍은 此悉貞亮死節之臣이니 願陛下親之信之하시면 則漢室之隆을 可計日而待也리이다
臣本布衣로 躬耕南陽하여 苟全性命於亂世하고 不求聞達於諸侯러니 先帝不以臣卑鄙하시고 猥自枉屈하사 三顧臣於草廬之中하시고 咨臣以當世之事하시니 由是感激하여 遂許先帝以驅馳러니 後値傾覆하여 受任於敗軍之際하고 奉命於危難之間이 爾來二十有一年矣니이다
先帝知臣謹愼이라 故로 臨崩에 寄臣以大事也하시니 受命以來로 夙夜憂嘆하여 恐託付不効하여 以傷先帝之明이라 故로 五月渡瀘하여 深入不毛러니 今南方已定하고 兵甲已足하니 當獎率三軍하고 北定中原하여 庶竭駑鈍하여 攘除姦兇하고 興復漢室하여 還于舊都가 此臣所以報先帝而忠陛下之職分也니이다
至於斟酌損益하여 進盡忠言은 則攸之 褘 允之任也니 願陛下 託臣以討賊興復之効하사 不効則治臣之罪하여 以告先帝之靈하시고 責攸之 褘 允等之咎하사 以彰其慢하시며 陛下亦宜自謀하사 以諮諏善道하고 察納雅言하여 深追先帝遺詔하소서 臣不勝受恩感激하오니 今當遠離에 臨表涕泣하여 不知所云이로소이다
後出師表
 
 
諸葛亮
 
先帝慮漢賊不兩立하고 王業不偏安이라 故로 託臣以討賊也하시니 以先帝之明으로 量臣之才에 固知臣伐賊이 才弱敵强也나 然不伐賊이면 王業亦亡하리니 惟坐而待亡으론 孰與伐之리오 是故로 託臣而弗疑也시니이다 臣受命之日에 寢不安席하고 食不甘味하여 思惟北征이면 宜先入南이라 故로 五月渡瀘하여 深入不毛하여 幷日而食하니 臣非不自惜也로되 顧王業不可得偏安於蜀都라 故로 冒危難하여 以奉先帝之遺意어늘 而議者謂爲非計라하니이다 今賊이 適疲於西하고 又務於東하니 兵法에 乘勞라하니 此進趨之時也라 謹陳其事如左하노이다
高帝明竝日月하시고 謀臣淵深이나 然涉險被創하여 危然後安이러니 今陛下未及高帝하시고 謀臣不如良平이어늘 而欲以長策取勝하여 坐定天下하시니 此는 臣之未解一也니이다 劉繇 王朗은 各據州郡하여 論安言計에 動引聖人이로되 群疑滿腹하고 衆難塞胸하여 今歲不戰하고 明年不征이라가 使孫策坐大하여 遂幷江東하니 此는 臣之未解二也니이다
曹操智計殊絶於人하여 其用兵也 髣髴孫吳나 然困於南陽하고 險於烏巢하고 危於祁連하고 偪於黎陽하고 幾敗北山하고 殆死潼關하여 然後僞定一時爾어늘 況臣才弱而欲以不危而定之하니 此는 臣之未解三也니이다 曹操五攻昌霸不下하고 四越巢湖不成하고 任用李服而李服圖之하고 委任夏侯而夏侯敗亡하니 先帝每稱操爲能이나 猶有此失이어든 況臣駑下가 何能必勝이리오 此는 臣之未解四也니이다
自臣到漢中으로 中間朞年耳나 然喪趙雲 陽群 馬玉 閻芝 丁立 白壽 劉郃 鄧銅等과 及曲長屯將七十餘人과 突將 無前 賨叟 靑羌 散騎 武騎一千餘人하니 此皆數十年之內의 所糾合四方之精銳요 非一州之所有니 若復數年이면 則損三分之二也리니 當何以圖敵이리오 此는 臣之未解五也니이다 今民窮兵疲라도 而事不可息이니 事不可息이면 則住與行이 勞費正等이어늘 而不及蚤圖之하고 欲以一州之地로 與賊持久하니 此는 臣之未解六也니이다
夫難平者는 事也라 昔에 先帝敗軍於楚하시니 當此時하여 曹操拊手하여 謂天下已定이러니 然이나 後에 先帝東連吳越하고 西取巴蜀하며 擧兵北征에 夏侯授首하니 此操之失計요 而漢事將成也라 然이나 後에 吳更違盟하여 關羽毁敗하고 秭歸蹉跌하며 曹丕稱帝하니 凡事如是하여 難可逆見이니이다 臣鞠躬盡瘁하여 死而後已니 至於成敗利鈍하여는 非臣之明所能逆覩也로소이다
酒德頌
 
 
劉伶(伯倫)
 
有大人先生하니 以天地爲一朝하고 萬期爲須臾하며 日月爲扃牖하고 八荒爲庭衢하여 行無轍跡하고 居無室廬하여 幕天席地하여 縱意所如하며 止則操巵執觚하고 動則挈榼提壺하여 唯酒是務하니 焉知其餘리오 有貴介公子와 搢紳處士 聞吾風聲하고 議其所以하여 乃奮袂攘衿하고 怒目切齒하여 陳說禮法하여 是非鋒起어늘 先生於是에 方捧甖承糟하여 銜盃漱醪하며 奮髥箕踞하고 枕麴藉糟하여 無思無慮하여 其樂陶陶라 兀然而醉하고 恍爾而醒하여 靜聽에 不聞雷霆之聲하고 熟視에 不見泰山之形이라 不覺寒暑之切肌와 嗜慾之感情하여 俯觀萬物擾擾焉을 如江漢之浮萍이요 二豪侍側焉을 如蜾蠃之與螟蛉이러라
 
蘭亭記
 
 
王羲之(逸少)
 
永和九年歲在癸丑暮春之初에 會于會稽山陰之蘭亭하니 修禊事也라 群賢畢至하고 少長咸集이라 此地에 有崇山峻嶺과 茂林脩竹하고 又有淸流激湍이 映帶左右어늘 引以爲流觴曲水하고 列坐其次하니 雖無絲竹管絃之盛이나 一觴一詠이 亦足以暢敍幽情이라
是日也에 天朗氣淸하고 惠風和暢이라 仰觀宇宙之大하고 俯察品類之盛하니 所以遊目騁懷하여 足以極視聽之娛하니 信可樂也로다
夫人之相與俯仰一世에 或取諸懷抱하여 悟言一室之內하고 或因寄所託하여 放浪形骸之外하나니 雖趣舍萬殊하고 靜躁不同이나 當其欣於所遇하여 暫得於己하여는 快然自得하여 曾不知老之將至라가 及其所之旣倦하여 情隨事遷이면 感慨係之矣라 向之所欣이 俛仰之間에 以[已]爲陳迹하니 尤不能不以之興懷로다 況脩短隨化하여 終期於盡하나니 古人云 死生亦大矣라하니 豈不痛哉아
每攬昔人興感之由하면 若合一契하니 未嘗不臨文嗟悼하여 不能喩之於懷라 固知一死生爲虛誕이요 齊彭殤爲妄作이라 後之視今이 亦猶今之視昔이리니 悲夫라
故로 列敍時人하고 錄其所述하니 雖世殊事異나 所以興懷는 其致一也라 後之覽者 亦將有感於斯文이리라
陳情表
 
李密(令伯)
 
臣以險釁으로 夙遭愍凶하여 生孩六月에 慈父見背하고 行年四歲에 舅奪母志어늘 祖母劉閔臣孤弱하여 躬親撫養하니 臣少多疾病하여 九歲不行하고 零丁孤苦하여 至于成立이라 旣無叔伯하고 終鮮兄弟하며 門衰祚薄하여 晩有兒息하니 外無朞功强近之親이요 內無應門五尺之童이라 煢煢孑立하여 形影相弔어늘 而劉夙嬰疾病하여 常在牀褥하니 臣侍湯藥하여 未嘗廢離로소이다
逮奉聖朝에 沐浴淸化하여 前太守臣逵 察臣孝廉하고 後刺史臣榮이 擧臣秀才어늘 臣以供養無主로 辭不赴{命}이러니 會詔書特下하사 拜臣郞中하시고 尋蒙國恩하여 除臣洗馬하시니 猥以微賤으로 當侍東宮이라 非臣隕首所能上報니이다 臣具以表聞하여 辭不就職이러니 詔書切峻하사 責臣逋慢하시고 郡縣逼迫하여 催臣上道하니 州司臨門이 急於星火라 臣欲奉詔奔馳인댄 則以劉病日篤이요 欲苟順私情인댄 則告訴不許하니 臣之進退 實爲狼狽로소이다
伏惟聖朝以孝治天下하사 凡在故老에도 猶蒙矜育이어든 況臣孤苦特爲尤甚하니이다 且臣少事僞朝하여 歷職郞署하니 本圖宦達이요 不矜名節이라 今臣은 亡國賤俘라 至微至陋어늘 過蒙拔擢하니 豈敢盤桓하여 有所希冀릿가 但以劉日薄西山하여 氣息奄奄하니 人命危淺하여 朝不慮夕이라 臣無祖母면 無以至今日이요 祖母無臣이면 無以終餘年이니 母孫二人이 更相爲命일새 是以區區不能廢遠이로소이다
臣密은 今年四十有四요 祖母劉는 今年九十有六이니 是臣盡節於陛下之日은 長하고 報劉之日은 短也라 烏鳥私情이 願乞終養하오니 臣之辛苦는 非獨蜀之人士와 及二州牧伯所見明知라 皇天后土實所共鑑이오니 願陛下는 矜憫愚誠하시고 聽臣微志하사 庶劉僥倖하여 卒保餘年이시면 臣은 生當隕首요 死當結草리이다 臣不勝怖懼之情하여 謹拜表以聞하노이다



歸去來辭
 
 
陶淵明(元亮)
 
[原序] 余家貧하여 耕植이 不足以自給이요 幼稚盈室호되 甁無儲粟하여 生生所資 未見其術이라 親故多勸余爲長吏일새 脫然有懷하되 求之靡途러니 會有四方之事하여 諸侯以惠愛爲德하니 家叔이 以余貧苦라하여 遂見用於小邑이라 於時에 風波未靜하니 心憚遠役일새 彭澤은 去家百里요 公田之利 足以爲潤이라 故로 便求之라 少日에 眷然有歸與之情하니 何則고 質性自然이요 非矯勵所得이며 飢凍雖切이나 違己交病하니 嘗從人事가 皆口腹自役이라 於是에 悵然慷慨하여 深愧平生之志로되 猶望一稔하여 當斂裳宵逝러니 尋程氏妹喪於武昌이라 情在駿奔하여 自免去職하니 仲秋至冬에 在官八十餘日이라 因事順心하여 命篇曰歸去來兮라하니 乙巳歲十一月也라
歸去來兮여 田園將蕪하니 胡不歸오 旣自以心爲形役하니 奚惆悵而獨悲오 悟已往之不諫하고 知來者之可追라 實迷塗其未遠하니 覺今是而昨非로다 舟搖搖以輕颺이요 風飄飄而吹衣로다 問征夫以前路하니 恨晨光之熹微로다 乃瞻衡宇하고 載欣載奔하니 僮僕歡迎하고 稚子候門이라 三徑은 就荒이나 松菊은 猶存이라 携幼入室하니 有酒盈樽일새 引壺觴以自酌하고 眄庭柯以怡顔이라 倚南窓以寄傲하니 審容膝之易安이라 園日涉以成趣하고 門雖設而常關이라 策扶老以流憩라가 時矯首而遐觀하니 雲無心以出岫하고 鳥倦飛而知還이라 景翳翳以將入하니 撫孤松而盤桓이로다
歸去來兮여 請息交以絶遊라 世與我而相違하니 復駕言兮焉求리오 悅親戚之情話하고 樂琴書以消憂로다 農人이 告余以春及하니 將有事于西疇로다 或命巾車하고 或棹孤舟하여 旣窈窕以尋壑하고 亦崎嶇而經丘하니 木欣欣以向榮하고 泉涓涓而始流라 羨萬物之得時하고 感吾生之行休로다 已矣乎라 寓形宇內復幾時오 曷不委心任去留하고 胡爲乎遑遑欲何之오 富貴는 非吾願이요 帝鄕은 不可期라 懷良辰以孤往하고 或植杖而耘耔라 登東皐以舒嘯하고 臨淸流而賦詩라 聊乘化以歸盡하니 樂夫天命復奚疑아

五柳先生傳
 
 
陶淵明(元亮)
 
先生은 不知何許人이요 亦不詳其姓字며 宅邊에 有五柳樹하여 因以爲號焉이라 閑靖少言하고 不慕榮利하며 好讀書하되 不求甚解하고 每有意會면 便欣然忘食이라 性嗜酒하되 家貧하여 不能常得하니 親舊知其如此하고 或置酒而招之면 造飮輒盡하여 期在必醉하고 旣醉而退하여 曾不吝情去留라 環堵蕭然하여 不蔽風日하고 短褐穿結하며 簞瓢屢空하되 晏如也러라 常(嘗)著文章自娛하여 頗示己志하고 忘懷得失하여 以此自終하니라 贊曰
黔婁有言하되 不戚戚於貧賤하며 不汲汲於富貴라하니 極其言인댄 玆若人之儔乎인저 酣觴賦詩하여 以樂其志하니 無懷氏之民歟아 葛天氏之民歟아
北山移文
 
 
孔稚圭(德璋)
 
鍾山之英과 草堂之靈이 馳煙驛路하여 勒移山庭이라 夫以耿介拔俗之標와 蕭洒出塵之想으로 度(탁)白雪以方潔하고 干靑雲而直上을 吾方知之矣라 若其亭亭物表하고 皎皎霞外하여 芥千金而不眄[盼]하고 屣萬乘其如脫하여 聞鳳吹於洛浦하고 値薪歌於延瀨가 固亦有焉이러니 豈期始終參
差(치)하고 蒼黃反(翻)覆하여 淚翟子之悲하고 慟朱公之哭이리오 乍廻迹以心染하고 或先貞而後黷하니 何其謬哉오 嗚呼라 尙生不存하고 仲氏旣往하니 山阿寂寥하여 千載誰賞고
世有周子하니 雋俗之士라 旣文旣博이요 亦玄亦史라 然而學遁東魯하고 習隱南郭하여 竊吹草堂하고 濫巾北岳하여 誘我松桂하며 欺我雲壑하여 雖假容於江皐나 乃纓情於好爵이라 其始至也에 將欲排巢父, 拉許由하고 傲百世, 蔑王侯하여 風情張日하고 霜氣橫秋하여 或歎幽人長往하고 或怨王孫不游하여 談空空於釋部하고 覈玄玄於道流하니 務光何足比며 涓子不能儔러니
及其鳴騶入谷하고 鶴書赴隴에 形馳魄散하고 志變神動이라 爾乃眉軒席次하고 袂聳筵上하여 焚芰製而裂荷衣하고 抗塵容而走俗狀하니 風雲悽其帶憤하고 石泉咽(열)而下愴하며 望林巒而有失하고 顧草木而如喪이라 至其紐金章, 綰黑綬하여 跨屬城之雄하고 冠百里之首하여 張英風於海甸하고 馳妙譽於浙右하니 道帙長擯하고 法筵久埋라 敲扑諠囂가 犯其慮하고 牒訴倥傯이 裝其懷하니 琴歌旣斷하고 酒賦無續하여 常綢繆於結課하고 每紛綸於折獄이라
籠張趙於往圖하고 架卓魯於前籙하여 希蹤三輔豪하고 馳聲九州牧하여 使其高霞孤映하고 明月獨擧하며 靑松落陰하니 白雲誰侶오 磵戶摧絶無與歸요 石逕荒涼徒延竚로다 至於還飇入幕하고 寫(瀉)霧出楹하니 蕙帳空兮夜鶴怨이요 山人去兮曉猿驚이라 昔聞投簪逸海岸이러니 今見解蘭縛塵纓이로다
於是에 南嶽獻嘲하고 北隴騰笑하며 列壑爭譏하고 攢峯竦誚하여 慨遊子之我欺하고 悲無人以赴弔라 故로 其林慙無盡하고 澗愧不歇하여 秋桂遣風하고 春蘿擺月하여 騁西山之逸議하고 馳東皐之素謁이러니
今乃促裝下邑하고 浪枻上京하니 雖情投於魏闕이나 或假步於山扃이라 豈可使芳杜厚顔하고 薜荔無恥하며 碧嶺再辱하고 丹崖重滓하여 塵遊躅於蕙路하고 汚淥池以洗耳리오 宜扃岫幌, 掩雲關하며 斂輕霧, 藏鳴湍하여 截來轅於谷口하고 杜妄轡於郊端이라 於是에 叢條瞋膽하고 疊穎怒魄하여 或飛柯以折輪하며 乍低枝而掃迹하니 請廻俗士駕어다 爲君謝逋客하노라


滕王閣序
王勃(子安)
 
南昌은 故郡이요 洪都는 新府라 星分翼軫하고 地接衡廬하며 襟三江而帶五湖하고 控蠻荊而引甌越이라 物華는 天寶라 龍光이 射斗牛之墟하고 人傑은 地靈이라 徐孺下陳蕃之榻이라 雄州霧列하고 俊彩星馳라 臺隍은 枕夷夏之交하고 賓主는 盡東南之美라 都督閻公之雅望은 棨戟遙臨하고 宇文新州之懿範은 襜帷暫駐로다 十旬休暇하니 勝友如雲이요 千里逢迎하니 高朋滿座라 騰蛟起鳳은 孟學士之詞宗이요 紫電淸霜은 王將軍之武庫라 家君作宰하니 路出名區라 童子何知오 躬逢勝餞이라
時維九月이요 序屬三秋라 潦水盡而寒潭淸하고 煙光凝而暮山紫라 儼驂騑於上路하여 訪風景於崇阿하니 臨帝子之長洲하여 得仙人之舊館이라 層巒이 聳翠하니 上出重霄하고 飛閣이 流丹하니 下臨無地로다 鶴汀鳧渚는 窮島嶼之縈廻하고 桂殿蘭宮은 列崗巒之體勢라 披綉闥하고 俯雕甍하니 山原曠其盈視하고 川澤盱其駭矚이라 閭閻撲地하니 鍾鳴鼎食之家요 舸艦迷津하니 靑雀黃龍之舳이로다 虹銷雨霽하니 彩徹雲衢라 落霞는 與孤鶩齊飛하고 秋水는 共長天一色이라 漁舟唱晩하니 響窮彭蠡之濱하고 雁陣驚寒하니 聲斷衡陽之浦로다
遙吟俯暢하니 逸興遄飛라 爽籟發而淸風生하고 纖歌凝而白雲遏이라 睢園綠竹은 氣凌彭澤之樽이요 鄴水朱華는 光照臨川之筆이로다 四美具하고 二難幷하니 窮睇眄於中天하고 極娛遊於暇日이라 天高地逈하니 覺宇宙之無窮이요 興盡悲來하니 識盈虛之有數라 望長安於日下하고 指吳會於雲間이라 地勢極而南溟深하고 天柱高而北辰遠이라 關山難越하니 誰悲失路之人고 萍水相逢하니 盡是他鄕之客이로다 懷帝閽而不見하니 奉宣室以何年가
嗚呼라 時運不齊하고 命途多舛하여 馮唐이 易老하고 李廣이 難封이라 屈賈誼於長沙는 非無聖主요 竄梁鴻於海曲은 豈乏明時리오 所賴君子安貧하고 達人知命이라 老當益壯하니 寧知白首之心이며 窮且益堅하니 不墜靑雲之志라 酌貪泉而覺爽하고 處涸轍以猶懽이라 北海雖賖나 扶搖可接이요 東隅已逝나 桑楡非晩이라 孟嘗高潔하니 空懷報國之心이요 阮籍猖狂하니 豈効窮途之哭가
勃은 三尺微命이요 一介書生이라 無路請纓하나 等終軍之弱冠이요 有懷投筆하니 慕宗慤之長風이라 舍簪笏於百齡하고 奉晨昏於萬里하니 非謝家之寶樹나 接孟氏之芳隣이라 他日趨庭에 叨陪鯉對하고 今晨捧袂에 喜託龍門이라 楊意를 不逢하니 撫凌雲而自惜이요 鍾期를 旣遇하니 奏流水以何慙고 嗚呼라 勝地는 不常이요 盛筵은 難再니 蘭亭已矣요 梓澤丘墟라 臨別贈言하니 幸承恩於偉餞이요 登高作賦하니 是所望於群公이라 敢竭鄙誠하여 恭疏短引이라 一言均賦하니 四韻俱成이라
滕王高閣臨江渚하니 佩玉鳴鑾罷歌舞라 畫棟朝飛南浦雲이요 朱簾暮捲西山雨라 閑雲潭影日悠悠하니 物換星移度幾秋아 閣中帝子今何在오 檻外長江空自流라



春夜宴桃李園序
 
 
李白(太白)
 
夫天地者는 萬物之逆旅요 光陰者는 百代之過客이라 而浮生若夢하니 爲歡幾何오 古人秉燭夜遊는 良有以也로다 況陽春召我以煙景하고 大塊假我以文章이라 會桃李之芳園하여 序天倫之樂事하니 群季俊秀하여 皆爲惠連이어늘 吾人詠歌獨慚康樂이로다 幽賞未已에 高談轉淸이라 開瓊筵以坐花하고 飛羽觴而醉月하니 不有佳作이면 何伸雅懷리오 如詩不成인댄 罰依金谷酒數하리라
與韓荊州書
 
李白
白聞호니 天下談士 相聚而言曰 生不用封萬戶侯요 但願一識韓荊州라하니 何令人之景慕 一至於此오 豈不以周公之風으로 躬吐握之事하여 使海內豪俊으로 奔走而歸之하여 一登龍門이면 則聲價十倍아 所以龍蟠鳳逸之士 皆欲收名定價於君侯라 君侯不以富貴而驕之하고 寒賤而忽之면 則三千之中에 有毛遂하리니 使白得穎脫而出이 卽其人焉이리라
白은 隴西布衣로 流落楚漢이라 十五에 好劍術하여 徧干諸侯하고 三十에 成文章하여 歷抵卿相하니 雖長不滿七尺이나 而心雄萬夫라 皆王公大人이 許與氣義하니 此疇曩心跡이라 安敢不盡於君侯哉아
君侯制作이 侔神明하고 德行이 動天地하며 筆參造化하고 學究天人하니 幸願開張心顔하여 不以長揖見拒하고 必若接之以高宴하며 縱之以淸談이면 請日試萬言을 倚馬可待리라 今天下以君侯로 爲文章之司命과 人物之權衡하여 一經品題면 便作佳士하니 而今君侯何惜階前盈尺之地하여 不使白揚眉吐氣하여 激昻靑雲耶아
昔에 王子師爲豫州하여 未下車에 卽辟荀慈明하고 旣下車에 又辟孔文擧하며 山濤作冀州하여 甄拔三十餘人하여 或爲侍中尙書하니 先代所美요 而君侯亦一薦嚴協律하여 入爲秘書郞하고 中間崔宗之, 房習祖, 黎昕, 許瑩之徒 或以才名見知하고 或以淸白見賞하니 白每觀其銜恩撫躬하여 忠義奮發이라 白以此感激하여 知君侯推赤心於諸賢腹中하니 所以不歸他人하고 而願委身國士하노니 儻急難有用이면 敢効微軀하리라
且人非堯舜이면 誰能盡善이리오 白이 謨猷籌畫이 安能自矜이리오마는 至於制作하여는 積成卷軸하니 則欲塵穢視聽이나 恐雕蟲少伎(技) 不合大人이라 若賜觀芻蕘인댄 請給紙筆하고 兼之書人이면 然後退掃閑軒하여 繕寫呈上하리니 庶靑萍結綠이 長價於薛卞之門이라 幸推下流하여 大開獎飾을 惟君侯圖之하라



大寶箴
張蘊古
 
今來古往에 俯察仰觀하니 惟辟作福하나니 爲君實難이로다 主普天之下하고 處王公之上하여 任土貢其所求하고 具寮陳其所唱이라 是故로 恐懼之心이 日弛하고 邪僻之情이 轉放하니 豈知事起乎所忽하고 禍生乎無妄이리오
固以聖人受命하여 拯溺亨屯일새 歸罪於己하고 因心於民이라 大明은 無私照요 至公은 無私親이라 故로 以一人治天下요 不以天下奉一人이라 禮以禁其奢하고 樂以防其佚하며 左言而右事하고 出警而入蹕하여 四時調其慘舒하고 三光同其得失이라 故로 身爲之度요 而聲爲之律이라
勿謂無知하라 居高聽卑요 勿謂何害하라 積小就大니라 樂不可極이니 樂極生哀요 欲不可縱이니 縱欲成災라 壯九重於內라도 所居는 不過容膝이어늘 彼昏不知하여 瑤其臺而瓊其室하며 羅八珍於前이라도 所食은 不過適口어늘 唯狂罔念하여 丘其糟而池其酒로다
勿內荒於色하고 勿外荒於禽하며 勿貴難得貨하고 勿聽亡國音하라 內荒은 伐人性이요 外荒은 蕩人心이요 難得之貨는 侈요 亡國之音은 淫이니라 勿謂我尊而傲賢慢士하며 勿謂我智而拒諫矜己하라 聞之夏后據饋頻起하고 亦有魏帝牽裾不止라 安彼反側을 如春陽秋露하여 巍巍蕩蕩하여 恢漢高大度하며 撫玆庶事를 如履薄臨深하여 戰戰慄慄하여 用周文小心하라
詩之不識不知요 書之無偏無黨이니 一彼此於胸臆하고 損好惡於心想하여 衆棄而後加刑하고 衆悅而後行賞하며 弱其强而治其亂하고 伸其屈而直其枉이라 故로 曰 如衡如石하여 不定物以限하여 物之懸者 輕重自見(현)이요 如水如鏡하여 不示物以情하여 物之鑑者 姸媸自生이라 勿渾渾而濁하고 勿皎皎而淸하며 勿汶汶而闇하고 勿察察而明하라 雖冕旒蔽目이나 而視於未形이요 雖黈纊塞耳나 而聽於無聲이라 縱心乎湛然之域하고 遊神於至道之精하여 知[扣]之者應洪纖而効響하고 酌之者隨淺深而皆盈이라 故로 曰天之經과 地之寧과 王之貞이라 四時不言而代序하고 萬物無言而化成이니 豈知帝力而天下和平이리오
吾王撥亂하여 戡以智力이면 民懼其威나 未懷其德이요 我皇撫運하여 扇以淳風이면 民懷其始나 未保其終이라 爰述金鏡하여 窮神盡聖하노니 使人以心하며 應言以行하여 包括治體하고 抑揚詞令하라 天下爲公에 一人有慶이라 開羅起祝하고 援琴命詩하여 一日二日에 念玆在玆하라 惟人所召니 自天祐之리라 諍臣司直일새 敢告前疑하노라
 


大唐中興頌
 
元結(次山)
 
天寶十四年에 安祿山이 陷洛陽하고 明年에 陷長安하니 天子幸蜀하시고 太子卽位於靈武라 明年에 皇帝移軍鳳翔하사 其年에 復兩京하고 上皇이 還京師하시다
於戲라 前代帝王이 有盛德大業者는 必見(현)於歌頌하나니 若今歌頌大業하여 刻之金石인댄 非老於文學이면 其誰宜爲리오 頌曰
 
噫嘻前朝에 孼臣姦驕하여 爲昏爲妖로다
邊將騁兵하여 毒亂國經하니 群生失寧이로다
大駕南巡하시니 百僚竄身하여 奉賊稱臣이로다
天將昌唐하사 繄睨我皇하시니 匹馬北方이로다
獨立一呼하시니 千麾萬旟로 戎卒前驅로다
復復(부복)指期하여 曾不踰時하니 有國無之로다
事有至難하니 宗廟再安하고 二聖重歡이라
地闢天開하여 蠲除妖災하니 瑞慶大來로다
兇徒逆儔 涵濡天休하니 死生堪羞로다
功勞位尊하고 忠烈名存하니 澤流子孫이로다
盛德之興이 山高日昇하니 萬福是膺이라
能令大君으로 聲容沄沄은 不在斯文가
湘江東西에 中直(値)浯溪하니 石崖天齊라
可磨可鐫일새 刊此頌焉하니 何千萬年가



原人
 
韓愈(退之)
 
形於上者를 謂之天이요 形於下者를 謂之地요 命於其兩間者를 謂之人이니 形於上은 日月星辰이 皆天也요 形於下는 草木山川이 皆地也요 命於其兩間은 夷狄禽獸皆人也니라 曰 然則吾謂禽獸曰人이 可乎아 曰 非也라 指山而問焉曰山乎인댄 曰山可也니 山有草木禽獸皆擧之矣어니와 指山之一草而問焉曰山乎인댄 曰山則不可라
故로 天道亂而日月星辰이 不得其行하고 地道亂而草木山川이 不得其平하고 人道亂而夷狄禽獸 不得其情하나니 天者는 日月星辰之主也요 地者는 草木山川之主也요 人者는 夷狄禽獸之主也니 主而暴之면 不得其爲主之道矣라 是故로 聖人은 一視而同仁하고 篤近而擧遠하나니라



原道
 
 
韓愈
 
博愛之謂仁이요 行而宜之之謂義요 由是而之焉之謂道요 足乎己無待於外之謂德이니 仁與義는 爲定名이요 道與德은 爲虛位라 故로 道는 有君子有小人하고 而德은 有凶有吉이니라
老子之小仁義는 非毁之也요 其見者小也니 坐井而觀天曰天小者는 非天小也라 彼以煦煦爲仁하며 孑孑爲義하니 其小之也則宜로다 其所謂道는 道其所道요 非吾所謂道也며 其所謂德은 德其所德이요 非吾所謂德也라 凡吾所謂道德云者는 合仁與義言之也니 天下之公言也요 老子之所謂道德云者는 去仁與義言之也니 一人之私言也니라
周道衰하고 孔子沒하시니 火于秦하고 黃老于漢하며 佛于晉宋齊梁魏隋之間하여 其言道德仁義者가 不入于楊이면 則入于墨하고 不入于老면 則入于佛하여 入于彼則出于此라 入者를 主之하고 出者를 奴之하며 入者를 附之하고 出者를 汚之하니
噫라 後之人이 其欲聞仁義道德之說인들 孰從而聽之리오 老者曰 孔子는 吾師之弟子也라하고 佛者曰 孔子는 吾師之弟子也라하니 爲孔子者 習聞其說하고 樂其誕而自小也하여 亦曰吾師亦嘗{師之}云爾라하여 不惟擧之於其口라 而又筆之於其書하니 噫라 後之人이 雖欲聞仁義道德之說인들 其孰從而求之리오 甚矣라 人之好怪也여 不求其端하며 不訊其末이요 惟怪之欲聞이온여
古之爲民者는 四러니 今之爲民者는 六이요 古之敎者는 處其一이러니 今之敎者는 處其三이로다 農之家一而食粟之家六이요 工之家一而用器之家六이요 賈之家一而資焉之家六이니 奈之何民不窮且盜也리오
古之時에 人之害多矣러니 有聖人者立然後에 敎之以相生養之道하여 爲之君, 爲之師하며 驅其蟲蛇禽獸하고 而處其中土하며 寒然後爲之衣하고 飢然後爲之食하며 木處而顚하고 土處而病也일새 然後爲之宮室하며 爲之工하여 以贍其器用하고 爲之賈하여 以通其有無하며 爲之醫藥하여 以濟其夭死하고 爲之葬埋祭祀하여 以長其恩愛하며 爲之禮하여 以次其先後하고 爲之樂하여 以宣其湮鬱하며 爲之政하여 以率其怠倦하고 爲之刑하여 以鋤其强梗하며 相欺也일새 爲之符璽斗斛權衡以信之하고 相奪也일새 爲之城郭甲兵以守之하여 害至而爲之備하고 患生而爲之防이어늘 今其言曰 聖人不死면 大盜不止니 剖斗折衡이라야 而民不爭이라하니 嗚呼라 其亦不思而已矣로다 如古之無聖人이런들 人之類滅이 久矣리라 何也오 無羽毛鱗介以居寒熱也요 無爪牙以爭食也일새라
是故로 君者는 出令者也요 臣者는 行君之令하여 而致之民者也요 民者는 出粟米麻絲하고 作器皿, 通貨財하여 以事其上者也라 君不出令이면 則失其所以爲君이요 臣不行君之令而致之民이면 則失其所以爲臣이요 民不出粟米麻絲, 作器皿, 通貨財하여 以事其上이면 則誅하나니 今其法曰 必棄而君臣하고 去而父子하며 禁而相生相養之道하여 以求其所謂淸淨寂滅者라하니 嗚呼라 其亦幸而出於三代之後하여 而不見黜於禹湯文武周公孔子也요 其亦不幸而不出於三代之前하여 不見正於禹湯文武周公孔子也로다
帝之與王이 其號名[各]殊나 其所以爲聖은 一也요 夏葛而冬裘하며 渴飮而飢食이 其事雖殊나 其所以爲智는 一也어늘 今其言曰 曷不爲太古之無事오하니 是亦責冬之裘者曰 曷不爲葛之之易也며 責飢之食者曰 曷不爲飮之之易也로다
傳曰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는 先治其國하고 欲治其國者는 先齊其家하고 欲齊其家者는 先修其身하고 欲修其身者는 先正其心하고 欲正其心者는 先誠其意라하니 然則古之所謂正心而誠意者는 將以有爲也러니 今也엔 欲治其心而外天下國家하고 滅其天常하여 子焉而不父其父하며 臣焉而不君其君하며 民焉而不事其事로다
孔子之作春秋也에 諸侯用夷禮則夷之하고 {夷而}進於中國則中國之하시며 經曰 夷狄之有君이 不如諸夏之亡(무)라하고 詩曰 戎狄是膺하니 荊舒是懲이라하니 今也에 擧夷狄之法하여 而加之先王之敎之上하니 幾何其不胥而爲夷也리오
夫所謂先王之敎者는 何也오 博愛之謂仁이요 行而宜之之謂義요 由是而之焉之謂道요 足乎己無待於外之謂德이라 其文은 詩書易春秋요 其法은 禮樂刑政이요 其民은 士農工賈요 其位는 君臣父子師友賓主昆弟夫婦요 其服은 麻絲요 其居는 宮室이요 其食은 粟米蔬果魚肉이라
其爲道易明이요 而其爲敎易行也라 是故로 以之爲己則順而從[祥]하고 以之爲人則愛而公하고 以之爲心則和而平하고 以之爲天下國家에 無所處而不當이라 是故로 生則得其情하고 死則盡其常하며 郊焉而天神假(格)하고 廟焉而人鬼饗이니라
曰 斯道也는 何道也오 曰 斯吾所謂道也요 非向所謂老與佛之道也라 堯以是傳之舜하시고 舜以是傳之禹하시고 禹以是傳之湯하시고 湯以是傳之文武周公하시고 文武周公傳之孔子하시고 孔子傳之孟軻러시니 軻之死에 不得其傳焉이라 荀與揚也는 擇焉而不精하고 語焉而不詳이니라 由周公而上은 上而爲君이라 故로 其事行하고 由周公而下는 下而爲臣이라 故로 其說長이니라
然則如之何而可也오 曰不塞이면 不流요 不止면 不行이니 人其人하고 火其書하고 廬其居하고 明先王之道以道之면 鰥寡孤獨廢疾者有養也리니 其亦庶乎其可也니라



重答張籍書
 
 
韓愈
 
吾子不以愈無似하여 意欲推而納諸聖賢之域하여 拂其邪心하여 增其所未高하며 謂愈之質이 有可以至於道者라하여 浚其源하여 導其所歸하고 漑其根하여 將食其實하니 此는 盛德者之所辭讓이어든 況於愈者哉아 抑其中에 有宜復者일새 故不可遂已로라 昔者聖人之作春秋也에 旣深其文辭矣로되 然猶不敢公傳道之요 口授弟子하여 至於後世然後에 其書出焉하니 其所以慮患之道微也라
今夫二氏之所宗而事之者가 下及公卿輔相하니 吾豈敢昌言排之哉아 擇其可語者하여 誨之라도 猶時與吾悖하여 其聲이 譊譊하니 若遂成其書면 則見而怒之者必多矣라 必且以我爲狂爲惑하리니 其身之不能恤이어니 書於吾何有리오
夫子는 聖人也로되 且曰 自吾得子路而惡聲不入於耳라하시고 其餘輔而相者周天下로되 猶且絶糧於陳하고 畏於匡하며 毁於叔孫하고 奔走於齊魯宋衛之郊하시니 其道雖尊이나 其窮也亦甚矣라 賴其徒相與守之하여 卒有立於天下하시니 向使獨言而獨書之런들 其存也를 可冀乎아
今夫二氏之行乎中土也가 蓋六百餘年矣라 其植根固하고 其流波漫하니 非可以朝令而夕禁也라 自文王沒로 武王周公成康이 相與守之하여 禮樂皆在하니 至乎夫子未久也요 自夫子而至乎孟子未久也요 自孟子而至乎揚雄이 亦未久也로되 然猶其勤若此하고 其困若此而後에 能有所立하니 吾其可易而爲之哉아 其爲也易則其傳也不遠이라 故로 余所以不敢也로라
然이나 觀古人컨대 得其時, 行其道면 則無所爲書하니 爲書者는 皆所爲不行乎今而行乎後者也라 今吾之得吾志, 失吾志를 未可知니 俟五六十爲之라도 未失也라 天不欲使玆人有知乎인댄 則吾之命을 不可期어니와 如使玆人有知乎인댄 非我요 其誰哉리오 其行道, 其爲書와 其化今, 其傳後가 必有在矣리니 吾子其何遽戚戚於吾所爲哉오
前書에 謂吾與人商論에 不能下氣하여 若好己勝者然이라하니 雖誠有之나 抑非好己勝也라 好己之道勝也니 己之道는 乃夫子孟軻揚雄所傳之道也라 若不勝이면 則無以爲道니 吾豈敢避是名哉리오 夫子之言曰 吾與回言에 終日不違如愚라하시니 則其與衆人辯也有矣라
駁雜之譏는 前書盡之하니 吾子其復之하라 昔者에 夫子猶有所戲하시니 詩不云乎아 善戲謔兮하니 不爲謔兮라하고 記曰 張而不弛는 文武不能也라하니 豈害於道哉아 吾子其未之思乎인저 孟君이 將有所適일새 思與吾子別하니 庶幾一來어다 愈再拜하노라



上張僕射書
 
 
韓愈
 
九月一日에 愈再拜하노라 受牒之明日에 在使院中이러니 有小吏持院中故事節目十餘事하여 來示愈하니 其中不可者有하니 自九月至明年二月之終토록 皆晨入夜歸하여 非有疾病事故어든 輒不許出이라하니 當時에 以初受命으로 不敢言이로라
古人有言曰 人各有能有不能이라하니 若此者는 非愈之所能也라 抑而行之면 必發狂疾하여 上無以承事于公하여 將忘其所以報德者요 下無以自立하여 喪失其所以爲心이리니 夫如是면 則安得而不言이리오
凡執事之擇於愈者는 非謂其能晨入夜歸也요 必將有以取之니 苟有以取之인댄 雖不晨入夜歸라도 其所取者猶在也리라 下之事上이 不一其事요 上之使下가 不一其事로되 量力而任之하고
度(탁)才而處之하여 其所不能을 不彊使爲라 是故로 爲下者不獲罪於上하고 爲上者不得怨於下矣라
孟子有云 今之諸侯無大相過者는 以其皆好臣其所敎요 而不好臣其所受敎라하시니 今之時與孟子之時로 又加遠矣라 皆好其聞命而奔走者요 不好其直己而行道者하나니 聞命而奔走者는 好利者也요 直己而行道者는 好義者也니 未有好利而愛其君者요 未有好義而忘其君者라 今之王公大人에 惟執事可以聞此言이요 惟愈於執事也에 可以此言進이라
愈蒙幸於執事하여 其所從이 舊矣라 若寬假之하여 使不失其性하고 加待之하여 使足以爲名이면 寅而入하여 盡辰而退하고 申而入하여 終酉而退하여 率以爲常이라도 亦不廢事리라 天下之人이 聞執事之於愈如是也하면 必皆曰 執事之好士也如此하고 執事之待士以禮如此하고 執事之使人不枉其性而能有容如此하고 執事之欲成人之名如此하고 執事之厚於故舊如此라하며 又將曰 韓愈之識其所依歸也如此하고 韓愈之不諂屈於富貴之人如此하고 韓愈之賢이 能使其主待之以禮如此라하리니 則死於執事之門이라도 無悔也라
若使隨行而入하고 逐隊而趨하여 言不敢盡其誠하고 道有所屈於己면 天下之人이 聞執事之於愈如此하고 皆曰 執事之用韓愈는 哀其窮하여 收之而已耳요 韓愈之事執事는 不以道라 利之而已耳라하리니 苟如是면 雖日受千金之賜하고 一歲九遷其官이라도 感恩則有之矣어니와 將以稱於天下曰知己則未也라
伏惟哀其所不足하고 矜其愚하여 不錄其罪하고 察其辭而垂仁採納焉하라 愈는 恐懼再拜하노라




爲人求薦書
 
 
韓愈
 
(某聞) 木在山하고 馬在肆에 過之而不顧者가 雖日累千萬人이라도 未爲不材與下乘也로되 及至匠石過之而不睨하고 伯樂遇之而不顧然後에 知其非棟梁之材와 超逸之足也라
以某在公之宇下 非一日이요 而又辱居姻婭之後하니 是는 生于匠石之園이요 長于伯樂之廐者也라 於是而不得知면 假有見知者千萬人이라도 亦何足云耳리오 今幸賴天子每歲詔公卿大夫貢士하여 若某等比도 咸得以薦聞이라 是以로 冒進其說하여 以累於執事하니 亦不自量已라 然이나 執事其知某何如哉오
昔人이 有鬻馬不售於市者러니 知伯樂之善相也하고 從而求之하여 伯樂一顧에 價增三倍하니 某與其事로 頗相類라 是故로 始終言之耳로라
答陳商書
韓愈
愈白하노라 辱惠書하니 語高而旨深하여 三四讀에 尙不能通曉하니 茫然增愧赧이로라 又不以其淺弊無過人智識하여 且喩以所守하니 幸甚이라 愈敢不吐露情實이리오 然自識其不足補吾子所須也로라
齊王이 好竽러니 有求仕於齊者가 操瑟而往하여 立王之門三年에 不得入이라 叱曰 吾瑟鼓之면 能使鬼神上下하며 吾鼓瑟이 合軒轅氏之律呂라한대 客罵之曰 王好竽어시늘 而子鼓瑟하니 瑟雖工이나 如王之不好何오하니 是所謂工於瑟而不工於求齊也라
今擧進士於此世하여 求祿利行道於此世호되 而爲文에 必使一世人不好면 得無與操瑟立齊門者比歟아 文誠工이나 不利於求요 求不得이면 則怒且怨하리니 不知君子必爾爲不(否)也로라
故로 區區之心이 每有來訪者면 皆有意於不肖者也라 略不辭讓하고 遂盡言하노니 惟吾子諒察하라



與孟簡尙書書
 
韓愈
 
蒙惠書하니 云 有人傳愈近少奉釋氏라하니 (此傳之者)妄也라 潮州時에 有一老僧號太顚하니 頗聰明識道理요 遠地에 無所可與語者라 故로 自山召至州郭하여 留十數日하니 實能外形骸하고 以理自勝하여 不爲事物侵亂이요 與之語에 雖不盡解나 要自胸中에 無滯礙일새 以爲難得이라하여 因與往來하고 及祭神至海上에 遂造其廬하고 及來袁州에 留衣服爲別하니 乃人之情이요 非崇信其法하여 求福田利益也라
孔子云 丘之禱久矣라하시니 凡君子行己立身이 自有法度하고 聖賢事業이 具在方冊하여 可效可師라 仰不愧天하며 俯不愧人하며 內不愧心이요 積善積惡에 殃慶이 自各以其類至하나니 何有去聖人之道하며 捨先王之法하고 而從夷狄之敎하여 以求福利也리오 詩不云乎아 愷悌君子여 求福不回라하고 傳又曰 不爲威惕하며 不爲利疚라하니 假如釋氏能與人爲禍福이라도 非守道君子之所懼也어든 況萬萬無此理아
且彼佛者는 果何人哉오 其行事類君子邪아 小人邪아 若君子也인댄 必不妄加禍於守道之人이요 如小人也인댄 其身已死하고 其鬼不靈이라 天地神祇가 昭布森列하시니 非可誣也라 又肯令其鬼行胸臆하여 作威福於其間哉아 進退無所據어늘 而信奉之면 亦且惑矣로다
且愈不助釋氏而排之者는 其亦有說이라 孟子云 今天下不之楊則之墨이라하시니 楊墨交亂而聖賢之道不明이요 聖賢之道不明이면 則三綱淪而九法斁하고 禮樂崩而夷狄橫하리니 幾何其不爲禽獸也리오 故로 曰能言距楊墨者는 聖人之徒也라하시니라
揚子雲曰 古者에 楊墨塞路어늘 孟子辭而闢之廓如也라하니 夫楊墨行에 正道廢하여 且將數百年에 以至於秦하여 卒滅先王之法하며 燒除經書하고 坑殺學士하여 天下遂大亂이라 及秦滅漢興에도 且百年에 尙未知修明先王之道러니 其後에 始除挾書之律하고 稍求亡書, 招學士하니 經雖少得이나 尙皆殘缺하여 十亡(無)二三이라
故로 學士는 多老死하고 新者는 不見全經하여 不能盡知先王之事하고 各以所見爲守하여 分離乖隔하여 不合不公하니 二帝三王群聖人之道 於是大壞라 後之學者가 無所尋逐하여 以至于今泯泯也하니 其禍出於楊墨肆行而莫之禁故也라
孟子雖聖賢이나 不得位하여 空言無施하니 雖切何補리오 然이나 賴其言하여 而今學者尙知宗孔氏, 崇仁義, 貴王賤霸而已요 其大經大法은 皆亡滅而不救하고 壞爛而不收하니 所謂存十一於千百이니 安在其能廓如也오
然이나 向無孟氏면 則皆服左衽而言侏離矣리라 故로 愈常推尊孟氏하여 以爲功不在禹下者는 爲此也니라 漢氏以來로 群儒區區修補나 百孔千瘡이 隨亂隨失하여 其危如一髮引千鈞하여 綿綿延延하여 寖以微滅이어늘 於是時也에 而唱釋老於其間하여 鼓天下之衆而從之하니 嗚呼라 其亦不仁이 甚矣로다 釋老之害는 過於楊墨하고 韓愈之賢은 不及孟子라
孟子不能救之於未亡之前이어늘 而韓愈乃欲全之於已壞之後하니 嗚呼라 其亦不量其力이라 且見其身之危하여 莫之救以死也로다 雖然이나 使其道由愈而粗傳이면 雖滅死나 萬萬無恨이라 天地鬼神이 臨之在上하고 質之在傍하니 又安得因一摧折하여 自毁其道而從於邪也리오 籍湜輩는 雖屢指敎나 不知果能不叛去否아 辱吾兄眷厚로되 而不獲承命하니 唯增慚懼라 死罪死罪로라



送浮屠文暢師序
 
 
韓愈
 
人固有儒名而墨行者하니 問其名則是요 校其行則非인댄 可以與之遊乎아 如有墨名而儒行者하여 問其名則非요 校其行則是인댄 可以與之遊乎아 揚子雲이 稱在門墻則揮之하고 在夷狄則進之라하니 吾取以爲法焉하노라
{浮屠師}文暢이 喜爲文章하여 其周遊天下에 凡有行이면 必請於搢紳先生하여 以求詠謌(歌)其所志라 貞元十九年春에 將行東南할새 柳君宗元이 爲之請이어늘 解其裝하여 得所得敍詩累百餘篇하니 非至篤好면 其何能致多如是邪아 惜其無以聖人之道告之者요 而徒擧浮屠之說하여 贈焉이로라
夫文暢은 浮屠也니 如欲聞浮屠之說인댄 當自就其師而問之니 何故로 謁吾徒而來請也리오 彼見吾君臣父子之懿와 文物禮樂之盛하고 其心이 必有慕焉이로되 拘其法而未能入이라 故로 樂聞其說而請之니 如吾徒者 宜當告之以二帝三王之道와 日月星辰之所以行과 天地之所以著와 鬼神之所以幽와 人物之所以蕃과 江河之所以流而語之요 不當又爲浮屠之說而瀆告之也라
民之初生에 固若禽獸{夷狄}然이러니 聖人者立然後에 知宮居而粒食하며 親親而尊尊하며 生者養而死者藏이라 是故로 道莫大乎仁義하고 敎莫正乎禮樂刑政하니 施之於天下면 萬物得其宜하고 措之於其躬이면 體安而氣平이라 堯以是傳之舜하시고 舜以是傳之禹하시고 禹以是傳之湯하시고 湯以是傳之文武하시고 文武以是傳之周公孔子하사 書之於冊하여 中國之人이 世守之하나니 今浮屠者는 孰爲而孰傳之邪아
夫鳥俛而啄하고 仰而四顧하며 夫獸深居而簡出은 懼物之爲己害也로되 猶且不脫焉하여 弱之肉을 强之食하나니 今吾與文暢이 安居而暇食하고 優游以生死하여 與禽獸異者를 寧可不知其所自邪아 夫不知者는 非其人之罪也어니와 知而不爲之者는 惑也요 悅乎故하여 不能卽乎新者는 弱也요 知而不以告之者는 不仁也요 告而不以實者는 不信也라 余旣重柳請하고 又嘉浮屠能喜文辭하여 於是乎言하노라



平淮西碑
 
 
韓愈
 
天以唐이 克肖其德하사 聖子神孫이 繼繼承承하여 於千萬年에 敬戒不怠라하여 全付所覆하시니 四海九州가 罔有內外히 悉主悉臣이라 高祖太宗이 旣除旣治하시고 高宗中睿가 休養生息하사 至于玄宗하여 受報收功하시니 極熾而豊이라 物衆地大에 蘖牙其間이어늘 肅宗代宗과 德祖順考가 以勤以容하사 大慝適去나 稂莠不薅하니 相臣將臣이 文恬武嬉하여 習熟見聞하여 以爲當然이라
睿聖文武皇帝 旣受群臣朝하시고 乃考圖數貢하사 曰 嗚呼라 天旣全付予有家하사 今傳次在予하니 予不能事事면 其何以見于郊廟리오 群臣震懾하여 犇走率職이라 明年平夏하고 又明年平蜀하고 又明年平江東하고 又明年平澤潞하고 遂定易定하고 致魏博貝衛澶相하여 無不從志라 皇帝曰 不可究武니 予其少息하리라
九年에 蔡將死하니 蔡人이 立其子元濟以請이어늘 不許한대 遂燒舞陽하고 犯葉襄城하여 以動東都하고 放兵四劫이라 皇帝歷問于朝하시니 一二臣外에 皆曰 蔡帥之不庭授가 于今五十年이라 傳三姓四將하여 其樹本이 堅하고 兵利卒頑하여 不與他等하니 因撫而有라야 順且無事리이다 大官이 臆決唱聲하니 萬口和附하여 幷爲一談하여 牢不可破라
 
皇帝曰 惟天惟祖宗이 所以付任予者는 庶其在此하니 予何敢不力이리오 況一二臣同하니 不爲無助니라 曰 光顔아 汝爲陳許帥니 維是河東魏博郃陽三軍之在行者를 汝皆將之하라 曰 重胤아 汝故有河陽懷라 今益以汝하노니 維是朔方義成陜益鳳翔延慶七軍之在行者를 汝皆將之하라 曰 弘아 汝以卒萬二千으로 屬而子公武하여 往討之하라 曰 文通아 汝守壽하니 維是宣武淮南宣歙浙西四軍之行于壽者를 汝皆將之하라 曰 道古아 汝其觀察鄂岳하라 曰 愬아 汝帥唐鄧隨하여 各以其兵으로 進戰하라 曰 度아 汝長御史니 其往視師하라 曰 度아 惟汝予同하니 汝遂相予하여 以賞罰用命不用命하라 曰 弘아 汝其以節度로 都統諸軍하라 曰 守謙아 汝出入左右하니 汝惟近臣이라 其往撫師하라 曰 度아 汝其往하여 衣服飮食予士하여 無寒無飢하여 以旣厥事하여 遂生蔡人하라 賜汝節斧와 通天御帶와 衛卒三百하노니 凡玆廷臣을 汝擇自從하되 惟其賢能이요 無憚大吏하라 庚申에 予其臨門送汝하리라 曰 御史아 予閔士大夫戰甚苦하노니 自今以往으로 非郊廟祭祀어든 其無用樂하라
顔, 胤, 武는 合攻其北하여 大戰十六하여 得柵城縣二十三하고 降人卒四萬하며 道古는 攻其東南하여 八戰에 降卒萬三千하고 再入申하여 破其外城하며 文通은 戰其東하여 十餘遇에 降萬二千하며 愬는 入其西하여 得賊將하여 輒釋不殺하고 用其策하여 戰比有功하니라 十二年八月에 丞相度至師하니 都統弘이 責戰益急하고 顔胤武合戰益用命하니 元濟盡幷其衆洄曲以備라 十月壬申에 愬用所得賊將하여 自文城으로 因天大雪하여 疾馳百二十里하여 用夜半到蔡하여 破其門하고 取元濟以獻하고 盡得其屬人卒하다 辛巳에 丞相度入蔡하여 以皇帝命으로 赦其人하니 淮西平이라 大饗賚功하고 師還之日에 因以其食으로 賜蔡人하니 凡蔡卒三萬五千에 其不樂爲兵하고 願歸爲農者十九라 悉縱之하고 斬元濟於京師하다
冊功할새 弘은 加侍中하고 愬는 爲左僕射하여 帥山南東道하고 顔, 胤은 皆加司空하고 公武는 以散騎常侍로 帥鄜坊丹延하고 道古는 進大夫하고 文通은 加散騎常侍하다 丞相度朝京師하니 進封晉國公하고 進階金紫光祿大夫하여 以舊官相하고 而以其副摠으로 爲工部尙書하여 領蔡任하다 其還奏에 群臣이 請紀聖功하여 被之金石이라 皇帝以命臣愈하시니 臣愈再拜稽首而獻文하다 曰
 
唐承天命하여 遂臣萬方하니 孰居近土하여 襲盜以狂고
往在玄宗에 崇極而圮라 河北悍驕하고 河南附起어늘
四聖不宥하사 屢興師征일새 有不能克이면 益戍以兵이라
夫耕不食하며 婦織不裳하고 輸之以車하여 爲卒賜糧이라
外多失朝하고 曠不嶽狩하니 百隸怠官하여 事亡其舊러라
帝時繼位하사 顧瞻咨嗟하시되 惟汝文武여 孰恤予家오
旣斬吳蜀하고 旋取山東하니 魏將首義에 六州降從이라
淮蔡不順하여 自以爲彊이라 提兵叫讙하여 欲事故常이어늘
始命討之하시니 遂連姦鄰하여 陰遣刺客하여 來賊相臣이라
方戰未利에 內驚京師하니 群公上言하되 莫若惠來니이다
帝爲不聞하시고 與神爲謀하사 乃相同德하여 以訖天誅라
乃勅顔胤과 愬武古通하여 咸統於弘하여 各奏汝功하라
三方分攻하니 五萬其師요 大軍北乘하니 厥數倍之라
嘗兵洄[時]曲하니 軍士蠢蠢이라 旣翦陵雲하니 蔡卒大窘이요
勝之邵陵하니 郾城來降이라 自夏及秋에 複屯相望하니
兵頓不勵하여 告功不時어늘 帝哀征夫하사 命相往釐하시니
士飽而歌하고 馬騰於槽라 試之新城하니 賊遇敗逃러라
盡抽其有하여 聚以防我어늘 西師躍入하니 道無留者라
頟頟蔡城이 其疆千里로되 旣入而有하니 莫不順俟라
帝有恩言하사 相度來宣하니 誅止其魁하고 釋其下人이라
蔡之卒夫는 投甲呼舞하고 蔡之婦女는 迎門笑語라
蔡人告飢어늘 船粟往哺하고 蔡人告寒이어늘 賜以繒布라
始時蔡人이 禁不往來러니 今相從戲하여 里門夜開하며
始時蔡人이 進戰退戮이러니 今旰而起하여 左餐右粥이라
爲之擇人하여 以收餘憊라 選吏賜牛하고 敎而不稅라
蔡人有言하되 始迷不知러니 今乃大覺하여 羞前之爲로다
蔡人有言하되 天子明聖하시니 不順族誅요 順保性命이니라
汝不吾信인댄 視此蔡方하라 孰爲不順고 往斧其吭하리라
凡叛有數하니 聲勢相倚라 吾彊不支어든 汝弱奚恃리오
其告而長과 而父而兄하여 奔走偕來하여 同我太平하라
淮蔡爲亂이어늘 天子伐之요 旣伐而飢어늘 天子活之라
始議伐蔡에 卿士莫隨하고 旣伐四年에 小大竝疑하니
不赦不疑는 由天子明이라 凡此蔡功은 惟斷乃成이니라
旣定淮蔡하니 四夷畢來라 遂開明堂하여 坐以治之로다
 
南海神廟碑
 
 
韓愈
 
海於天地間에 爲物最鉅하니 自三代聖王으로 莫不祀事라 考於傳記에 而南海神次最貴하여 在北東西三神河伯之上하니 號爲祝融이라 天寶中에 天子以爲古爵이 莫貴於公侯라 故로 海嶽之祀에 犧幣之數를 放而依之하니 所以致崇極於大神이라 今王亦爵也어늘 而禮海岳에 尙循公侯之事하여 虛王儀而不用하니 非致崇極之意也라하여 由是로 冊尊南海神하여 爲廣利王하니 祝號祭式이 與次俱升이라 因其故廟하여 易而新之하니 在今廣州治之東南海道八十里扶胥之口, 黃木之灣이라
常以立夏氣至에 命廣州刺史하여 行事祠下하고 事訖에 驛聞하니 而刺史常節度五嶺諸軍하고 仍觀察其郡邑하여 於南方事에 無所不統이요 地大以遠이라 故로 常選用重人하니 旣貴而富하고 且不習海事하며 又當祀時하여 海常多大風이라 將往에 皆憂慼하고 旣進에 觀顧怖悸라 故로 常以疾爲辭하고 而委事於其副하여 其來已久라 故로 明宮齋廬가 上雨旁風하여 無所蓋障하며 牲酒瘠酸하고 取具臨時하니 水陸之品이 狼藉籩豆하고 薦祼興俯가 不中儀式이라 吏滋不恭[供]하여 神不顧享하니 盲風怪雨가 發作無節하여 人蒙其害러라
元和十二年에 始詔用前尙書右丞國子祭酒魯國孔公하여 爲廣州刺史兼御史大夫하여 以殿南服이라 公이 正直方嚴하고 中心樂
易(이)하여 祗愼所職하니 治人以明하고 事神以誠하여 內外殫盡하고 不爲表襮이라
至州之明年將夏에 祝冊이 自京師至어늘 吏以時告하니 公乃齋祓視冊하고 誓群有司曰 冊有皇帝名하니 乃上所自署라 其文曰 嗣天子某 謹遣某官某敬祭라하니 其恭且嚴이 如是어늘 敢有不承이리오 明日에 吾將宿廟下하여 以供晨事하리라
明日에 吏以風雨白호되 不聽하니 於是에 州府文武吏士凡百數가 交謁更(경)諫이로되 皆揖而退하고 公遂陞舟하니 風雨少弛하여 棹夫奏功하니 雲除[陰]解駁하여 日光穿漏하고 波伏不興이라 省牲之夕에 載暘載陰이러니 將事之夜에 天地開除하여 月星明穊라 五鼓旣作에 牽牛正中이어늘 公乃盛服執笏하여 以入卽事하니 文武賓屬이 俯首聽位하여 各執其職이라
牲肥酒香하고 樽爵淨潔하며 降登有數하니 神具醉飽라 海之百靈秘怪가 怳惚畢出하여 蜿蜿蜒蜒하여 來享飮食이러라 闔廟旋艫에 祥飇送颿하니 旗纛旄麾가 飛揚晻藹하며 鐃鼓嘲轟하고 高管噭譟하며 武夫奮棹하고 工師唱和하니 穹龜長魚가 踊躍后先하고 乾端坤倪가 軒豁呈露라
祀之之歲에 風災熄滅하여 人厭魚蟹하고 五穀胥熟이러라 明年祀歸에 又廣廟宮而大之하고 治其庭壇하며 改作東西兩序, 齋庖之房하여 百用이 具備[修]하니라 明年其時에 公又固往하여 不懈益虔하니 歲仍大和하여 耋艾歌詠이러라
始公之至에 盡除他名之稅하고 罷衣食於官之可去者하며 四方之使를 不以資交하고 以身爲帥(率)하며 燕享有時하고 賞與以節하니 公藏私蓄이 上下與足이라 於是에 免屬州負逋之緡錢二十有四萬과 米三萬二千斛하고 賦金之州耗金이 一歲八百이라 困不能償이어늘 皆以丏之하고 加西南守長之俸하고 誅其尤無良不聽令者하니 由是로 皆自重愼法하니라
人士之落南不能歸者와 與流徙之冑百二十八族을 用其才良而廩其無告者하고 其女子可嫁者를 與之錢財하여 令無失時하니 刑德竝流하여 方地數千里에 不識盜賊하여 山行海宿하여 不擇處所하니 事神治人이 可謂備至矣로다 咸願刻廟石하여 以著厥美而繫以詩어늘 乃作詩하니 曰
南海陰墟는 祝融之宅이라 卽祀于旁하니 帝命南伯이라
吏惰不躬이러니 正自今公이라 明用享錫하니 祐我家邦이로다
惟明天子 惟愼厥使라 我公在官하니 神人致喜로다
海嶺之陬가 旣足旣濡하니 胡不均弘하여 俾執事樞오
公行勿遲나 公無遽歸어다 匪我私公이라 神人具依니라
 

 
 
爭臣論
 
 
韓愈
 
或問諫議大夫陽城於愈하되 可以爲有道之士乎哉아 學廣而聞多하되 不求聞於人也하고 行古人之道하여 居於晉之鄙하니 晉之鄙人이 薰其德而善良者幾千人이라 大臣聞而薦之天子하여 以爲諫議大夫하니 人皆以爲華로되 陽子不{色}喜하고 居於位五年矣로되 視其德하니 如在草野라 彼豈以富貴移易其心哉리오
愈應之曰 是易所謂恒其德貞하나 而夫子凶者也니 惡(오)得爲有道之士乎哉아 在易蠱之上九云 不事王侯하고 高尙其事라하며 蹇之六二則曰 王臣蹇蹇이 匪躬之故라하니 夫不以所居之時不一而所蹈之德不同也아 若蠱之上九가 居無用之地하여 而致匪躬之節하고 {以}蹇之六二在王臣之位하여 而高不事之心이면 則冒進之患生하고 曠官之刺興하리니 志不可則(칙)이요 而尤不終無也니라
今陽子는 實一匹夫라 在位不爲不久矣요 聞天下之得失이 不爲不熟矣요 天子待之不爲不加矣어늘 而未嘗一言及於政하여 視政之得失을 若越人視秦人之肥瘠하여 忽焉不加喜戚於其心이라 問其官則曰諫議也요 問其祿則曰下大夫之秩也어늘 問其政則曰我不知也라하니 有道之士 固如是乎哉아
且吾聞之하니 有官守者는 不得其職則去하고 有言責者는 不得其言則去라하니 今陽子以爲得其言乎哉아 得其言而不言과 與不得其言而不去가 無一可者也니라 陽子將爲祿仕乎아 古之人有云 仕不爲貧而有時乎爲貧이라하니 謂祿仕者也라 宜乎辭尊而居卑하고 辭富而居貧이니 若抱關擊柝者可也라
蓋孔子嘗爲委吏矣요 嘗爲乘田矣사되 亦不敢曠其職하사 必曰會計當而已矣요 必曰牛羊遂而已矣라하시니 若陽子之秩祿은 不爲卑且貧이 章章明矣而如此하니 其可乎哉아
或曰 否라 非若此也라 夫陽子는 惡訕上者하며 惡爲人臣하여
招(교)其君之過而以爲名者라 故로 雖諫且議나 使人不得而知焉이라 書曰 爾有嘉謨嘉猷어든 則入告爾后于內하고 爾乃順(訓)之于外曰 斯謨斯猷 惟我后之德이라하니 夫陽子之用心이 亦若此者니라
愈應之曰 若陽子之用心이 如此면 滋所謂惑者矣라 入則諫其君하고 出不使人知者는 大臣宰相者之事니 非陽子之所宜行也니라
夫陽子本以布衣로 隱於蓬蒿之下어늘 主上이 嘉其行誼하여 擢在此位하시니 官以諫爲名인댄 誠宜有以奉其職하여 使四方後代로 知朝廷有直言骨鯁之臣하고 天子有不僭賞從諫如流之美하여 庶巖穴之士가 聞而慕之하여 束帶結髮하고 願進於闕下而伸其辭說하여 致吾君於堯舜하고 熙鴻(弘)號於無窮也라 若書所謂는 則大臣宰相之事니 非陽子之所宜行也니라 且陽子之心이 將使君人者로 惡(오)聞其過乎아 是啓之也니라
或曰 陽子之不求聞而人聞之하고 不求用而君用之하여 不得已而起하여 守其道而不變이어늘 何子過之深也오 愈曰 自古聖人賢士가 皆非有心求於聞用也라 閔其時之不平과 人之不乂하여 得其道면 不敢獨善其身이요 而必{以}兼濟天下也하여 孜孜矻矻하여 死而後已라 故로 禹過家門不入하시고 孔席不暇暖하시고 而墨突不得黔하니 彼二聖一賢者가 豈不知自安逸之爲樂哉리오마는 誠畏天命而悲人窮也라
夫天授人以賢聖才能이 豈使自有餘而已리오 誠欲以補其不足者也라 耳目之於身也에 耳司聞而目司見하여 聽其是非하고 視其險易然後에 身得安焉하나니 聖賢者는 時人之耳目也요 時人者는 聖賢之身也니라 且陽子之不賢인댄 則將役於身하여 以奉其上矣요 若果賢인댄 則固畏天命而閔人窮也니 惡得以自暇逸乎哉아
或曰 吾聞君子는 不欲加諸人하며 而惡訐以爲直者라하니 若吾子之論은 直則直矣어니와 無乃傷于德而費於辭乎아 好盡言以
招(교)人過는 國武子之所以見殺於齊也니 吾子其亦聞乎아
愈曰 君子居其位則思死其官하고 未得位則思修其辭以明其道하나니 我將以明道也요 非以爲直而加人也니라 且國武子는 不能得善人하고 而好盡言於亂國일새 是以見殺이니라 傳曰 惟善人이야 能受盡言이라하니 謂其聞而能改之也라 子告我曰 陽子可以爲有道之士也라하니 今雖不能及已나 陽子는 將不得爲善人乎{哉}아
 
 

 
 
送窮文
 
 
韓愈
 
元和六年正月乙丑晦에 主人이 使奴星으로 結柳作車하고 縛草爲船하여 載糗輿粻하여 牛繫軛下하고 引帆上檣하여 三揖窮鬼而告之曰 聞子行有日矣라하니 鄙人은 不敢問所途요 躬具船與車하여 備載糗粻하니 日吉辰良하여 利行四方이라 子飯一盂하고 子啜一觴하여 携朋挈儔하고 去故就新하되 駕塵․風하여 與電爭先이면 子無底滯之尤요 我有資送之恩이니 子等이 有意於行乎아
屛息潛聽하니 如聞音聲이 若嘯若啼하여 砉欻嚘嚶하니 毛髮盡竪하고 竦肩縮頸하여 疑有而無러니 久乃可明이라 若有言者曰 吾與子居 四十年餘라 子在孩提에 吾不子愚하며 子學子耕하고 求官與名에 惟子是從하여 不變于初라 門神戶靈을 我叱我呵하여 包羞詭隨하여 志不在他호라 子遷南荒에 熱爍濕蒸하니 我非其鄕이요 百鬼欺陵하며 太學四年에 朝齏暮鹽이어늘 惟我保汝하고 人皆汝嫌이라 自初及終에 未始倍(背)汝하여 心無異謀하고 口絶行語어늘 於何聽聞이완대 云我當去오 是必夫子信讒하여 有間於予也로다 我鬼非人이니 安用車船이며 鼻嗅臭香하니 糗粻可捐이라 單獨一身이니 誰爲朋儔오 子苟備知인댄 可數以不아 子能盡言이면 可謂聖智라 情狀旣露하니 敢不廻避리오
主人應之曰 子以吾爲眞不知也邪아 子之朋儔는 非六非四요 在十去五며 滿七除二라 各有主張하고 私立名字하여 捩手覆羹하고 轉喉觸諱하여 凡所以使吾面目可憎하고 言語無味者 皆子之志也라
其一은 名曰智窮이니 矯矯亢亢하여 惡圓喜方하고 羞爲姦欺하여 不忍害傷하며 其次는 名曰學窮이니 傲數與名하여 摘抉杳微하고 高挹群言하여 執神之機하며 又其次는 曰文窮이니 不專一能하여 怪怪奇奇하니 不可時施요 祗以自嬉며 又其次는 曰命窮이니 影與形殊하고 面醜心姸하여 利居衆後하고 責在人先하며 又其次는 曰交窮이니 磨肌戞骨하고 吐出心肝하여 企足以待어늘 置我讐寃이라 凡此五鬼가 爲吾五患하여 飢我寒我하고 興訛造訕하여 能使我迷하여 人莫能間이라 朝悔其行이라가 暮已復然하여 蠅營狗苟하여 驅去復還이니라
言未畢에 五鬼相與張眼吐舌하고 跳踉偃仆하며 抵掌頓脚하여 失笑相顧하고 徐謂主人曰 子知我名과 凡我所爲하고 驅我令去하니 小黠大癡로다 人生一世에 其久幾何오 吾立子名하여 百世不磨라 小人君子 其心不同하니 惟乖於時라야 乃與天通하나니 携持琬琰하여 易一羊皮하며 飫於肥甘하여 慕彼糠糜로다 天下知子 誰過於予리오 雖遭斥逐이나 不忍子疎하노니 謂予不信인댄 請質詩書하리라 主人이 於是에 垂頭喪氣하여 上手稱謝하고 燒車與船하여 延之上座하니라
進學解
 
 
韓愈
 
國子先生이 晨入太學하여 招諸生하여 立館下하고 誨之曰 業은 精于勤하고 荒于嬉하며 行은 成于思하고 毁于隨하나니 方今에 聖賢相逢하여 治具畢張하여 拔去兇邪하고 登崇俊良하여 占小善者率以錄하고 名一藝者無不庸하여 爬羅剔抉하고 刮垢磨光하니 蓋有幸而獲選이언정 孰云多而不揚고 諸生은 業患不能精이요 無患有司之不明하며 行患不能成이요 無患有司之不公이니라
言未旣에 有笑于列者曰 先生이 欺余哉인저 弟子事先生이 于玆有時[年]矣라 先生이 口不絶吟於六藝之文하고 手不停披於百家之編하여 記事者는 必提其要하고 纂言者는 必鉤其玄하여 貪多務得하고 細大不捐하여 焚膏油以繼晷하여 恒兀兀以窮年하니 先生之業이 可謂勤矣요 觝排異端하여 攘斥佛老하며 補苴罅漏하고 張皇幽眇하여 尋墜緖之茫茫하여 獨旁搜而遠紹하고 障百川而東之하여 迴狂瀾於旣倒하니 先生之於儒에 可謂[有]勞矣라
沈浸醲郁하고 含英咀華하여 作爲文章하여 其書滿家호되 上規姚姒의 渾渾無涯와 周誥殷盤의 佶(詰)屈聱牙와 春秋謹嚴과 左氏浮誇와 易奇而法과 詩正而葩하며 下逮莊騷와 太史所錄과 子雲相如의 同工異曲하니 先生之於文에 可謂閎其中而肆於[其]外矣요 少始知學하여 勇於敢爲하고 長通於方하여 左右具宜하니 先生之於爲人에 可謂成矣라
然而公不見信於人하고 私不見助於友하여 跋前疐後하여 動輒得咎라 暫爲御史라가 遂竄南夷하고 三年博士에 冗不見治하니 命與仇謀하여 取敗幾時오 冬暖而兒號寒하고 年登而妻啼飢하니 頭童齒豁하여 竟死何裨오 不知慮此하고 而反敎人爲아
先生曰 吁라 子來前하라 夫大木爲杗하고 細木爲桷하며 欂櫨侏儒와 椳闑扂楔을 各得其宜하여 以成室屋者는 匠氏之功也요 玉札丹砂와 赤箭靑芝와 牛溲馬勃敗鼓之皮를 俱收幷蓄하여 待用無遺者는 醫師之良也요 登明選公하고 雜進巧拙하여 紆餘爲姸하고 卓犖爲傑이라하여 較短量長하여 惟器是適者는 宰相之方也라
昔者에 孟軻好辯하사 孔道以明이로되 轍環天下라가 卒老于行하시고 荀卿守正하여 大論是弘이로되 逃讒于楚하여 廢死蘭陵하니 是二儒者는 吐辭爲經하고 擧足爲法하여 絶類離倫하여 優入聖域이언마는 其遇於世何如也오 今先生이 學雖勤而不繇(由)其統하고 言雖多而不要其中하며 文雖奇而不濟於用하고 行雖修而不顯於衆이어늘 猶且月費俸錢하고 歲靡廩粟하여 子不知耕하고 婦不知織하며 乘馬從徒하여 安坐而食하여 踵常途之役役하며 窺陳編以盜竊이라 然而聖主不加誅하시고 宰臣不見斥하니 玆非幸歟아 動而得謗이나 名亦隨之하니 投閑置散이 乃分之宜라 若夫商財賄之有亡(無)하고 計班資之崇庳(卑)하여 忘己量之所稱하고 指前人之瑕疵면 是所謂詰匠氏之不以杙爲楹이요 而訾醫師以昌陽引年하고 欲進其豨苓也니라
鰐魚文
 
 
韓愈
 
昔先王이 旣有天下하여 列(烈)山澤하고 罔(網)繩擉刃으로 以除蟲蛇惡物의 爲民害者하여 驅而出之四海之外러시니 及後王德薄하여 不能遠有하여는 則江漢之間도 尙皆棄之하여 以與蠻夷楚越이어든 況潮는 嶺海之間으로 去京師萬里哉아
鰐魚之涵淹卵育於此亦固其所라 今天子嗣唐位하사 神聖慈武하사 四海之外와 六合之內를 皆撫而有之하시니 況禹跡所揜揚州之近地의 刺史縣令之所治요 出貢賦以供天地宗廟百神之祀之壤者哉아 鰐魚其不可與刺史로 雜處此土也니라
刺史受天子命하여 守此土, 治此民이어늘 而鰐魚睅然不安溪潭하고 據食民畜熊豕鹿麞하여 以肥其身하며 以種其子孫하여 與刺史亢(抗)拒하여 爭爲長雄하니 刺史雖駑弱이나 亦安肯爲鰐魚低首下心하여 伈伈睍睍하여 爲民吏羞하여 以偸活於此邪아 且承天子命하여 以來爲吏하니 固其勢不得不與鰐魚辨이라
鰐魚有知어든 其聽刺史言하라. 潮之州는 大海在其南하여 鯨鵬之大와 蝦蟹之細가 無不容歸하여 以生以養하나니 鰐魚朝發而夕至也라 今與鰐魚約하노니 盡三日하여 其率醜類하고 南徙于海하여 以避天子之命吏하되 三日不能이어든 至五日이요 五日不能이어든 至七日이니 七日不能이면 是終不肯徙也라 是는 不有刺史하여 聽從其言也요 不然이면 則是鰐魚冥頑不靈하여 刺史雖有言이나 不聞不知也라 夫傲天子之命吏하여 不聽其言하여 不徙以避之와 與冥頑不靈하여 而爲民物害者는 皆可殺이니 刺史則選材技吏民하여 操强弓毒矢하여 以與鰐魚從事하여 必盡殺乃止하리니 其無悔하라
柳州羅池廟碑
 
 
韓愈
 
羅池廟者는 故刺史柳侯廟也라 柳侯爲州에 不鄙夷其民하고 動以禮法하니 三年에 民各自矜奮曰 玆土雖遠京師나 吾等亦天氓이라 今天이 幸惠仁侯하시니 若不化服이면 我則非人이라하여 於是에 老少相敎語하여 莫違侯令하고 凡有所爲於其鄕閭及於其家에 皆曰 吾侯聞之면 得無不可於意否아하여 莫不忖
度(탁)而後從事하며 凡令之期를 民勸趨之하여 無有後先하여 必以其時라
於是에 民業有經하고 公無負租하여 流逋四歸하여 樂生興事하여 宅有新屋하고 步有新船하며 池園潔修하고 猪牛鴨鷄 肥大蕃息하며 子嚴父詔하고 婦順夫指하며 嫁娶葬祭 各有條法하고 出相弟長하며 入相慈孝러라 先時民貧하여 以男女相質하여 久不得贖하여 盡沒爲隸러니 我侯之至에 按國之故하여 以傭除本하여 悉奪歸之하며 大修孔子廟하고 城郭巷道를 皆治使端正하고 樹以名木하니 柳民이 旣皆悅喜하니라
嘗與其部將魏忠謝寧歐陽翼으로 飮酒驛亭할새 謂曰 吾棄於時而寄於此하여 與若等好也하니 明年에 吾將死라 死而爲神하리니 後三年에 爲廟祀我하라하더니 及期而死하고 三年孟秋辛卯에 侯降于州之後堂하니 歐陽翼等이 見而拜之러니 其夕에 夢翼而告之曰 館我於羅池하라 其月景(丙)辰에 廟成이라 大祭할새 過客李儀醉酒하여 侮慢堂上이라가 得疾하여 扶出廟門卽死하니라
明年春에 魏忠, 歐陽翼이 使謝寧來京師하여 請書其事于石이라 余謂柳侯 生能澤其民하고 死能驚動禍福之하여 以食其土하니 可謂靈也已로다 作迎享送神詩하여 遺柳民하여 俾歌以祀焉하고 而幷刻之하노라 柳侯는 河東人이니 諱宗元이요 字子厚라 賢而有文章하고 嘗位於朝하여 光顯矣러니 已而오 擯不用하니라 其辭曰
荔子丹兮蕉黃하니 雜肴蔬兮進侯堂이로다 侯之船兮兩旗하니 度(渡)中流兮風泊之로다 待侯不來兮여 不知我悲로다 侯乘駒兮入廟하니 慰我民兮不嚬以笑로다 鵝之山兮柳之水에 桂樹團團兮白石齒齒로다 侯朝出遊兮暮來歸하니 春與猿吟兮秋鶴與飛로다 北方之人兮爲侯是非하니 千秋萬歲兮侯無我違하여 福我兮壽我하여 驅厲鬼兮山之左하며 下無苦濕兮高無乾하여 秔稌充羨兮蛇蛟結蟠이어다 我民報事兮無怠하니 其始自今兮여 欽于世世로다
送孟東野序
 
 
韓愈
 
大凡物不得其平則鳴하나니 草木之無聲을 風撓之鳴하고 水之無聲을 風蕩之鳴하니 其躍也는 或激之요 其趨也는 或梗之요 其沸也는 或炙之며 金石之無聲을 或擊之鳴이라 人之於言也에 亦然하여 有不得已者而後言이라 其歌也有思하고 其哭也有懷하니 凡出乎口而爲聲者 其皆有弗平者乎인저
樂也者는 鬱於中而泄於外者也라 擇其善鳴者而假之鳴하니 金石絲竹匏土革木八者는 物之善鳴者也라 維天之於時也에 亦然하여 擇其善鳴者而假之鳴이라 是故로 以鳥鳴春하고 以雷鳴夏하며 以蟲鳴秋하고 以風鳴冬하나니 四時之相推奪에 其必有不得其平者乎인저
其於人也에 亦然하니 人聲之精者爲言이요 文辭之於言에 又其精者也일새 尤擇其善鳴者而假之鳴하니 其在於唐虞엔 咎(皐)陶, 禹 其善鳴者也라 而假之以鳴하고 夔는 弗能以文辭鳴일새 又自假於韶以鳴하며 夏之時엔 五子以其歌鳴하고 伊尹은 鳴殷하고 周公은 鳴周하시니 凡載於詩書六藝가 皆鳴之善者也라
周之衰에 孔子之徒鳴之하니 其聲이 大而遠이라 傳曰 天將以夫子爲木鐸이라하니 其弗信矣乎아 其末也에 莊周以其荒唐之辭로 鳴於楚하니 楚는 大國也라 其亡也에 以屈原鳴하고 臧孫辰孟軻荀卿은 以道鳴者也요 楊朱 墨翟 管夷吾 晏嬰 老聃 申不害 韓非 愼到 田騈 鄒衍 尸佼 孫武 張儀 蘇秦之屬이 皆以其術鳴하며 秦之興에 李斯鳴之하고 漢之時에 司馬遷, 相如, 揚雄이 最其善鳴者也라
其下魏晉氏는 鳴者不及於古나 然亦未嘗絶也라 就其善鳴者라도 其聲이 淸以浮하고 其節이
數(삭)以急하며 其辭淫以哀하고 其志弛以肆하며 其爲言也 亂雜而無章하니 將天醜其德하여 莫之顧邪아 何爲乎不鳴其善鳴者也오
唐之有天下에 陳子昻, 蘇源明, 元結, 李白, 杜甫, 李觀이 皆以其所能鳴이라 其存而在下者는 孟郊東野가 始以其詩鳴하니 其高出晉魏하여 不懈而及於古하고 其他는 浸淫乎漢氏矣요 從吾遊者는 李翶, 張籍이 其尤也니 三子者之鳴이 信善鳴矣라 抑不知天將和其聲하여 而使鳴國家之盛邪아 抑將窮餓其身하며 思愁其心腸하여 而使自鳴其不幸邪아 三子者之命則懸乎天矣니 其在上也에 奚以喜며 其在下也에 奚以悲리오 東野之役於江南也에 有若不懌然者라 故로 吾道其命於天者하여 以解之하노라
 
送楊巨源少尹序
 
韓愈
 
昔에 疏廣受二子 以年老로 一朝辭位而去하니 于時에 公卿이 設供帳祖道都門外할새 車數百兩(輛)이요 道路觀者 多歎息泣下하여 共言其賢하니 漢史旣傳其事하고 而後世工畵者 又圖其迹하여 至今照人耳目하여 赫赫若前日事하니라
國子司業楊君巨源이 方以能詩로 訓後進이러니 一旦에 以年滿七十으로 亦白丞相하고 去歸其鄕하니 世常說古今人不相及하니 今楊與二疏는 其意豈異也리오 予忝在公卿後하여 遇病不能出하니 不知楊侯去時에 城門外送者幾人이며 車幾兩이며 馬幾駟며 道傍觀者亦有歎息知其爲賢與否며 而太史氏又能張大其事爲傳하여 繼二疏蹤跡否아 不落莫(寞)否아
見今世에 無工畵者하니 而畵與不畵는 固不論也니라 然이나 吾聞楊侯之去에 丞相이 有愛而惜之者하여 白以爲其都少尹하여 不絶其祿하고 又爲歌詩以勸之하니 京師之長於詩者 亦屬而和之라하니 又不知當時二疏之去에 有是事否아 古今人同不同을 未可知也로다
中世에 士大夫 以官爲家하여 罷則無所於歸하나니 楊侯始冠에 擧於其鄕하여 歌鹿鳴而來也하고 今之歸에 指其樹曰 某樹는 吾先人之所種也요 某水, 某丘는 吾童子時所釣遊也라하니 鄕人이 莫不加敬하여 誡子孫하여 以楊侯不去其鄕爲法하니 古之所謂鄕先生沒而可祭於社者 其在斯人歟인저 其在斯人歟인저
送石洪處士序
 
 
韓愈
 
河陽軍節度使烏公이 爲節度之三月에 求士於從事之賢者한대 有薦石先生者어늘 公曰 先生何如오 曰 先生이 居嵩邙瀍穀之間하여 冬一裘, 夏一葛하며 {食}朝夕에 飯一盂, 蔬一盤이라 人與之錢則辭하고 請與出遊면 未嘗以事免하며 勸之仕則不應이라 坐一室하여 左右圖書하고 與之語道理하고 辨古今事當否하며 論人高下, 事後當成敗하면 若河決下流而東注也며 若駟馬駕輕車就熟路而王良造父(보)爲之先後也며 若燭照數計而龜卜也니이다
大夫曰 先生이 有以自老하여 無求於人하니 其肯爲某來邪아 從事曰 大夫文武忠孝하니 求士는 爲國이요 不私於家라 方今에 寇聚於恒하여 師環其疆하여 農不耕收하고 財粟殫亡하니 吾所處地는 歸輸之塗(途)라 治法征謀가 宜有所出이니 先生이 仁且勇하니 若以義請而强委重焉이면 其何說之辭리잇고
於是에 譔書詞하고 具馬幣하여 卜日以授使者하여 求先生之廬而請焉하니 先生이 不告於妻子하고 不謀於朋友하고 冠帶出見客하여 拜受書하여 禮於門內하고 宵則沐浴하여 戒行李하고 載書冊하여 問道所由하고 告行於常所來往하니 晨則畢至라 張筵於上東門外하니 酒三行하여 且起에 有執爵而言者曰 大夫眞能以義取人하고 先生眞能以道自任하여 決去就하니 爲先生別하노라 又酌而祝曰 凡去就出處何常이리오 惟義之歸니 遂以爲先生壽하노라 又酌而祝曰 使大夫恒하여 無變其初하여 無務富其家而飢其師하며 無甘受佞人而外敬正士하며 無味於諂言하고 惟先生是聽하여 以能有成功하여 保天子之寵命이어다 又祝曰 使先生無圖利於大夫而私便其身이어다
先生이 起拜祝辭曰 敢不敬蚤(早)夜하여 以求從祝規리오하니 於是에 東都之人{士}가 咸知大夫與先生이 果能相與以有成也라 遂各爲歌詩六韻하고 遣愈爲之序云이라
送溫造處士序
 
 
韓愈
 
伯樂이 一過冀北之野에 而馬群遂空이라 夫冀北은 馬多於天下하니 伯樂이 雖善知馬나 安能空其群邪아 解之者曰 吾所謂空은 非無馬也요 無良馬也라 伯樂知馬하여 遇其良이면 輒取之하여 群無留良焉하니 苟無留其良이면 雖謂無馬라도 不爲虛語矣니라
東都는 固士大夫之冀北也라 恃才能하고 深藏而不市者 洛之北涯曰石生이요 其南涯曰溫生이라 大夫烏公이 以鈇鉞로 鎭河陽之三月에 以石生爲才라하여 以禮爲羅하여 羅而致之幕下하고 未數月也에 以溫生爲才라하여 於是에 以石生爲媒하고 以禮爲羅하여 又羅而致之幕下하니 東都雖信多才士나 朝取一人焉하여 拔其尤하고 暮取一人焉하여 拔其尤하니 自居守河南尹으로 以及百司之執事와 與吾輩二縣之大夫는 政有所不通하고 事有所可疑에 奚所咨而取焉이며 士大夫之去位而巷處者는 誰與嬉遊며 小子後生이 於何考德而問業焉이며 搢紳之東西行過是都者 無所禮於其廬하니 若是而稱曰 大夫烏公이 一鎭河陽에 而東都處士之廬에 無人焉이 豈不可也리오
夫南面而聽天下에 其所託重而恃力者는 惟相與將耳라 相爲天子하여 得人於朝廷하고 將爲天子하여 得文武士於幕下면 求內外無治라도 不可得也라 愈縻於玆하여 不能{自}引去하고 資二生以待老러니 今皆爲有力者奪之하니 其何能無介然於懷邪아 生旣至하여 拜公於軍門이어든 其爲吾하여 以前所稱으로 爲天下賀하고 以後所稱으로 爲吾致私怨於盡取也하라 留守相公이 首爲四韻詩하여 歌其事하니 愈因推其意而序焉하노라
 
 

送李愿歸盤谷序
 
 
韓愈
 
太行之陽에 有盤谷하니 盤谷之間이 泉甘而土肥하여 草木이 叢茂하고 居民이 鮮少라 或曰 謂其環兩山之間이라 故曰盤이요 或曰 是谷也 宅幽而勢阻하여 隱者之所盤旋이라하니라
友人李愿이 居之러니 愿之言曰 人之稱大丈夫者를 我知之矣로라 利澤이 施于人하고 名聲이 昭于時하여 坐于廟朝하여 進退百官而佐天子出令하고 其在外則樹旗旄, 羅弓矢하여 武夫前呵하고 從者塞塗하며 供給之人이 各執其物하여 夾道而疾馳하며 喜有賞하고 怒有刑하며 才畯滿前하여 道古今而譽盛德하여 入耳而不煩하며 曲眉豊頰이 淸聲而便體하고 秀外而惠中하여 飄輕裾하고 翳長袖하며 粉白黛綠者 列屋而閑居하여 妬寵而負恃하고 爭姸而取憐은 大丈夫之遇知於天子하여 用力於當世者之爲也니 吾非惡此而逃之라 是有命焉하여 不可幸而致也니라
窮居而野處하고 升高而望遠하며 坐茂樹以終日하고 濯淸泉以自潔하며 採於山에 美可茹요 釣於水에 鮮可食이라 起居無時하여 惟適之安하니 與其譽於前으론 孰若無毁於其後며 與其樂於身으론 孰若無憂於其心이리오 車服不維하고 刀鋸不加하며 理亂不知하고 黜陟不聞은 大丈夫不遇於時者之所爲也니 我則行之호리라
 
伺候於公卿之門하고 奔走於形勢之途하여 足將進而․趄하고 口將言而囁嚅하여 處穢汚而不羞하고 觸刑辟而誅戮하여 僥倖於萬一하여 老死而後止者는 其於爲人賢不肖에 何如也오 昌黎韓愈 聞其言而壯之하여 與之酒而爲之歌하니 曰
 
盤之中이여 維子之宮이요 盤之土여 維子之稼로다
盤之泉이여 可濯可沿이요 盤之阻여 誰爭子所오
窈而深하니 廓其有容이요 繚而曲하니 如往而復이로다
嗟盤之樂兮여 樂且無央이로다 虎豹遠跡兮여 蛟龍遁藏이요 鬼神守護兮여 呵禁不祥이로다
飮且食兮여 壽而康하니 無不足兮여 奚所望고
膏吾車兮여 秣吾馬하여 從子于盤兮여 終吾生以徜徉호리라

送陸歙州詩序
 
 
韓愈
貞元十八年二月十八日에 祠部員外郞陸君이 出刺歙州하니 朝廷夙夜之賢과 都邑游居之良이 齎咨涕洟하여 咸以爲不當去라하니라 歙은 大州也요 刺史는 尊官也라 由郞官而往者 前後相望也요 當今賦出於天下에 江南이 居十九하고 宣使之所察에 歙爲富州라 宰臣之所薦聞이요 天子之所選用이니 其不輕而重也較然矣라 如是而齎咨涕洟하여 以爲不當去者는 陸君之道 行乎朝廷이면 則天下望其賜하고 刺一州면 則專而不能咸하니 先一州而後天下는 豈吾君與吾相之心哉리오 於是에 昌黎韓愈 道願留者之心而泄其思하여 作詩하니 曰
 
我衣之華兮여 我佩之光이로다 陸君之去兮여 誰與翶翔고
斂此大惠兮여 施于一州로다 今其去矣여 胡不爲留오
我作此詩하여 歌于逵道하니 無疾其驅어다 天子有詔시리라
師說
 
韓愈
古之學者는 必有師하니 師者는 所以傳道, 授業, 解惑也라 人非生而知之者면 孰能無惑이리오 惑而不從師면 其爲惑也 終不解矣리라 生乎吾前하여 其聞道也 固先乎吾면 吾從而師之하고 生乎吾後라도 其聞道也 亦先乎吾면 吾從而師之라 吾師道也니 夫庸知其年之先後生於吾乎리오 是故로 無貴無賤하며 無長無少요 道之所存은 師之所存也니라
嗟乎라 師道之不傳也 久矣니 欲人之無惑也나 難矣라 古之聖人은 其出人也 遠矣로되 猶且從師而問焉이어늘 今之衆人은 其下聖人也 亦遠矣로되 而恥學於師라 是故로 聖益聖하고 愚益愚하니 聖人之所以爲聖과 愚人之所以爲愚가 其皆出於此乎인저
愛其子하여는 擇師而敎之로되 於其身也엔 則恥師焉하니 惑矣로다 彼童子之師는 授之書而習其句讀者也니 非吾所謂傳其道解其惑者也라 句讀之不知와 惑之不解에 或師焉하고 或不焉하여 小學而大遺하니 吾未見其明也로라
巫醫樂師百工之人은 不恥相師어늘 士大夫之族은 曰師, 曰弟子云者를 則群聚而笑之하고 問之則曰 彼與彼年相若也요 道相似也라 位卑則足羞요 官盛則近諛라하나니 嗚呼라 師道之不復을 可知矣로다 巫醫{樂師}百工之人은 君子不齒로되 今其智乃反不能及하니 可怪也歟인저
聖人은 無常師라 孔子師郯子, 萇弘, 師襄, 老聃하시니 郯子之徒는 其賢이 不及孔子라 孔子曰 三人行이면 則必有我師라하시니 是故로 弟子不必不如師요 師不必賢於弟子라 聞道有先後하고 術業有專攻이니 如是而已라
李氏子蟠이 年十七에 好古文하여 六藝經傳을 皆通習之러니 不拘於時하고 請學於余어늘 余嘉其能行古道하여 作師說以貽之하노라
 
 
雜說
 
 
韓愈
 
世有伯樂然後에 有千里馬하니 千里馬는 常有로되 而伯樂은 不常有라 故로 雖有名馬나 秪辱於奴隸人之手하여 騈死於槽櫪之間하여 不以千里稱也하나니라 馬之千里者는 一食에 或盡粟一石이어늘 食馬者不知其能千里而食也하니 是馬雖有千里之能이나 食不飽하여 力不足하여 才美不外見하니 且欲與常馬等이나 不可得이니 安求其能千里也리오 策之를 不以其道하며 食之를 不能盡其材하며 鳴之不能通其意하고 執策而臨之曰 天下에 無良馬라하니 嗚呼라 其眞無馬耶아 其眞不識馬耶아
獲麟解
 
 
韓愈
 
麟之爲靈이 昭昭也라 詠於詩하고 書於春秋하며 雜出於傳記百家之書하니 雖婦人小子라도 皆知其爲祥也라 然이나 麟之爲物이 不畜於家하고 不恒有於天下하며 其爲形也不類하여 非若牛馬犬豕豺狼麋鹿然하니 然則雖有麟이나 不可知其爲麟也라
角者는 吾知其爲牛요 鬣者는 吾知其爲馬요 犬豕豺狼麋鹿은 吾知其爲犬豕豺狼麋鹿이로되 惟麟也는 不可知하니 不可知면 則其謂之不祥也亦宜로다
雖然이나 麟之出에 必有聖人在乎位하니 麟은 爲聖人出也라 聖人者는 必知麟이니 麟之果不爲不祥也로다 又曰 麟之所以爲麟者는 以德이요 不以形이니 若麟之出이 不待聖人이면 則謂之不祥也亦宜哉인저
諱辯
 
 
韓愈
 
愈與進士李賀書하여 勸賀擧進士러니 賀擧進士有名이라 與賀爭名者毁之曰 賀父名晉肅이니 賀不擧進士爲是요 勸之擧者爲非라하니 聽者不察하고 和而唱之하여 同然一辭라 皇甫湜曰 子與賀且得罪하리라
愈曰 然하다 律曰 二名은 不偏諱라하여늘 釋之者曰 謂若言徵不稱在하고 言在不稱徵이 是也라하며 律曰 不諱嫌名이라하여늘 釋之者曰 謂若禹與雨, 丘與蓲之類가 是也라하니라 今賀父名晉肅이어늘 賀擧進士하니 爲犯二名律乎아 爲犯嫌名律乎아 父名晉肅이어늘 子不得擧進士인댄 若父名仁이면 子不得爲人乎아
夫諱는 始於何時오 作法制以敎天下者 非周公孔子歟아 周公이 作詩不諱하시고 孔子不偏諱二名하시고 春秋에 不譏不諱嫌名하며 康王釗之孫이 實爲昭王이요 曾參之父名晳이로되 曾子不諱昔하시고 周之時에 有騏期하고 漢之時에 有杜度하니 此其子宜如何諱오 將諱其嫌하여 遂諱其姓乎아 將不諱其嫌者乎아
漢諱武帝名徹하여 爲通이어니와 不聞又諱車轍之轍하여 爲某字也며 諱呂后名雉하여 爲野鷄어니와 不聞又諱治天下之治하여 爲某字也며 今上章及詔에 不聞諱滸勢秉饑也요 惟宦官宮妾이 乃不敢言諭及機하여 以爲觸犯이라하니 士君子立言行事를 宜何所法守也오 今考之於經하고 質之於律하며 稽之以國家之典컨대 賀擧進士爲可耶아 爲不可耶아
凡事父母를 得如曾參이면 可以無譏矣요 作人을 得如周公孔子면 亦可以止矣라 今世之士는 不務行曾參周公孔子之行하고 而諱親之名은 則務勝於曾參周公孔子하니 亦見其惑也로다 夫周公孔子曾參은 卒不可勝이어늘 勝周公孔子曾參하여 乃比於宦官宮妾하니 則是宦官宮妾之孝於其親이 賢於周公孔子曾參者耶아
藍田縣丞廳壁記
 
韓愈
 
丞之職은 所以貳令이니 於一邑에 無所不當問이요 其下는 主簿尉니 主簿尉는 乃有分職이라 丞은 位高而偪하여 例以嫌不可否事하니 文書行에 吏抱成案하고 詣丞하여 卷其前하여 鉗以左手하고 右手로 摘紙尾하고 雁鶩行以進하여 平立睨丞曰 當署라하면 丞이 涉筆占位하여 署惟謹하고 目吏問可不可하면 吏曰得이라하고 則退하여 不敢略省하여 漫不知何事하니 官雖尊이나 力勢反在[出]主簿尉下라 諺數慢에 必曰丞이라하여 至以相訾謷하니 丞之設이 豈端使然哉아
博陵崔斯立이 種學績文하여 以蓄其有하니 泓涵演迤하여 日大以肆라 貞元初에 挾其能하여 戰藝於京師하여 再進再屈於人이러니 元和初에 以前大理評事로 言得失이라가 黜官하여 再轉而爲丞玆邑이라 始至에 喟然曰 官無卑요 顧材不足塞職이라하더니 旣噤不得施用이라 又喟然曰 丞哉丞哉여 余不負丞이로되 而丞負余라하고 則盡․去牙角하고 一躡故跡하여 破崖岸而爲之하니라
丞廳에 故有記러니 壞漏하여 汚不可讀이라 斯立이 易桷與瓦하고 墁治壁하고 悉書前任人名氏하며 庭有老槐四行이요 南墻에 鉅竹千梃이 儼立若相持하며 水㶁㶁循除鳴이라 斯立이 痛掃漑하고 對樹二松하고 日哦其間하며 有問者면 輒對曰 余方有公事하니 子姑去하라하니라 考功郞中知制誥韓愈는 記하노라
上宰相第三書
 
 
韓愈
 
愈聞周公之爲輔相에 其急於見賢也하여 方一食에 三吐其哺하고 方一沐에 三握其髮이라하니 當是時하여 天下之賢才皆已擧用이요 姦邪讒佞欺負之徒가 皆已除去요 四海皆已無虞요 九夷八蠻在荒服之外者가 皆已賓貢이요 天災時變昆蟲草木之妖 皆已銷息이요 天下之所謂禮樂刑政敎化之具가 皆已修理요 風俗이 皆已敦厚요 動植之物風雨霜露之所霑被者가 皆已得宜요 休徵嘉瑞麟鳳龜龍之屬이 皆已備至하며 而周公이 以聖人之才로 憑叔父之親하여 其所輔理承化之功이 又盡章章如是하니 其所求進見之士가 豈復有賢於周公者哉리오 不惟不賢於周公而已라 豈復有賢於時百執事者哉며 豈復有所計議能補於周公之化者哉리오
然而周公이 求之를 如此其急하여 惟恐耳目有所不聞見하며 思慮有所未及하여 以負成王託周公之意하여 不得於天下之心하시니 {如周公之心인댄} 設使其時에 輔理承化之功이 未盡章章如是하며 而非聖人之才요 而無叔父之親이런들 則將不暇食與沐矣리니 豈特吐哺握髮爲勤而止哉시리오 惟其如是라 故로 于今에 頌成王之德而稱周公之功을 不衰하나니라
今閤下爲輔相이 亦近耳라 天下之賢才가 豈盡擧用이며 姦邪讒佞欺負之徒를 豈盡除去며 四海豈盡無虞며 九夷八蠻之在荒服之外者 豈盡賓貢이며 天災時變昆蟲草木之妖 豈盡銷息이며 天下之所謂禮樂刑政敎化之具 豈盡修理며 風俗이 豈盡敦厚며 動植之物風雨霜露之所霑被者 豈盡得宜며 休徵嘉瑞麟鳳龜龍之屬이 豈盡備至며 其所求進見之士가 雖不足以希望盛德이나 至比於百執事하면 豈盡出其下哉며 其所稱說이 豈盡無所補哉리오 今雖不能如周公吐哺握髮이나 亦宜引而進之하여 察其所以而去就之요 不宜黙黙而已也니라
愈之待命이 四十餘日矣라 書再上而志不得通하고 足三及門而閽人辭焉이로되 惟其昏愚하여 不知逃遁일새 故로 復有周公之說焉하노니 (閤下其亦察之하라)) 古之士三月不仕則相弔라 故로 出疆에 必載質라 然所以重於自進者는 以其於周不可면 則去之魯하고 於魯不可면 則去之齊하고 於齊不可면 則去之宋之鄭之秦之楚也일새라 今天下一君이요 四海一國이라 舍乎此則夷狄矣요 去父母之邦矣라 故로 士之行道者 不得於朝면 則山林而已矣니 山林者는 士之所獨善自養而不憂天下者之所能安也니 如有憂天下之心이면 則不能矣라 故로 愈每自進而不知愧焉하여 書亟上하고 足數及門而不知止焉이로라 寧獨如此而已리오 惴惴焉惟不得出大賢之門{下}를 是懼하노니 亦惟少垂察焉하라
殿中少監馬君墓銘
 
 
韓愈
 
君은 諱繼祖니 司徒贈太師北平莊武王之孫이요 少府監贈太子少傅諱暢之子라 生四歲에 以門功으로 拜太子舍人하여 積三十四年에 五轉而至殿中少監하고 年三十七以卒하니 有男八人女二人하니라
始余初冠에 應進士貢하여 在京師할새 窮不能自存이러니 以故人稚弟로 拜北平王於馬前한대 王問而憐之라 因得見於安邑里第하니 王軫其寒飢하여 賜食與衣하고 召二子하여 使爲之主하시니 其季遇我特厚하니 少府監贈太子少傅者也라 姆抱幼子立側하니 眉眼如畵하고 髮漆黑하며 肌肉이 玉雪可念하니 殿中君也라
當是時하여 見王於北亭하니 猶高山深林에 龍虎變化不測하니 傑魁人也요 退見少傅하니 翠竹碧梧에 鸞鵠停峙하니 能守其業者也요 幼子娟好靜秀하여 瑤環瑜珥며 蘭茁其芽하니 稱其家兒也러라
後四五年에 吾成進士하고 去而東游하여 哭北平王於客舍하고 後十五六年에 吾爲尙書都官郞하여 分司東都러니 而少傅卒하여 哭之하고 又十餘年至今에 哭少監焉하니 嗚呼라 吾未老耄요 自始至今이 未四十年이어늘 而哭其祖子孫三世하니 于人世에 何如也오 人欲久不死而觀居此世者는 何也오
毛穎傳
 
 
韓愈
 
毛穎者는 中山人也라 其先은 明眎니 佐禹治東方土하여 養萬物有功이라 因封於卯地러니 死爲十二神하니라 嘗曰 吾子孫은 神明之後니 不可與物同이라 當吐而生이라하더니 已而果然이러라 明眎八世孫은 䨲니 世傳當殷時하여 居中山이러니 得神仙之術하여 能匿光使物하여 竊姮娥, 騎蟾蜍하여 入月하니 其後代에 遂隱不仕云이라 居東郭者曰 㕙이니 狡而善走라 與韓盧爭能할새 盧不及하니 盧怒하여 與宋鵲으로 謀而殺之하고 醢其家하니라
秦始皇時에 蒙將軍恬이 南伐楚할새 次中山하여 將大獵以懼楚러니 召左右庶長與軍尉하여 以連山筮之하여 得天與人文之兆라 筮者賀曰 今日之獲은 不角不牙요 衣褐之徒라 缺口而長鬚하고 八竅而趺居하니 獨取其髦면 簡牘을 是資니 天下其同書라 秦其遂兼諸侯乎인저 遂獵하여 圍毛氏之族하여 拔其豪하여 載穎而歸하여 獻俘于章臺宮하고 聚其族而加束縛焉이러니 秦皇帝使恬으로 賜之湯沐而封諸管城하고 號曰管城子라하고 日見親寵任事하니라
穎爲人이 强記而便敏하여 自結繩之代로 以及秦事히 無不纂錄하고 陰陽卜筮占相醫方族氏山經地志字書圖畵九流百家天人之書와 及至浮圖老子外國之說을 皆所詳悉이요 又通於當代之務하여 官府簿書市井貨錢注記를 惟上所使하니 自秦皇帝及太子扶蘇, 胡亥, 丞相斯, 中車府令高로 下及國人에 無不愛重이라 又善隨人意하여 正直邪曲巧拙을 一隨其人하고 雖見廢棄나 終黙不洩하며 惟不喜武士나 然見請이면 亦時往하니라 累拜中書令하여 與上益狎하니 上이 嘗呼爲中書君이라 上이 親決事하여 以衡石自程하여 雖宮人이나 不得立左右호되 獨穎은 與執燭者常侍하여 上休方罷하니라
穎이 與絳人陳玄과 弘農陶泓과 及會稽楮先生으로 友善하여 相推致하여 其出處必偕라 上召穎이면 三人者不待詔하고 輒俱往이로되 上未嘗怪焉이러라 後因進見하여 上將有任使하여 拂拭之한대 因免冠謝어늘 上見其髮禿하고 又所摹畫이 不能稱上意라 上嘻笑曰 中書君이 老而禿하여 不任吾用이로다 吾嘗謂君中書러니 君今不中書邪아 對曰 臣所謂盡心者로이다 因不復召하고 歸封邑하여 終于管城하니라 其子孫甚多하여 散處中國夷狄하여 皆冒管城호되 惟居中山者 能繼父祖業하니라
太史公曰 毛氏有兩族하니 其一은 姬姓이니 文王之子라 封於毛하니 所謂魯衛毛聃者也요 戰國時에 有毛公毛遂로되 獨中山之族은 不知其本所出이요 子孫이 最爲蕃昌하니 春秋之成에 見絶於孔子나 而非其罪라 及蒙將軍이 拔中山之豪하여 始皇이 封諸管城하여 世遂有名이요 而姬姓之毛는 無聞하니라 穎이 始以俘見하여 卒見任使하여 秦之滅諸侯에 穎與有功이어늘 賞不酬勞하고 以老見疏하니 秦眞小恩哉인저

 
伯夷頌
 
 
韓愈
 
士之特立獨行하여 適於義而已요 不顧人之是非는 皆豪傑之士 信道篤而自知明者也라 一家非之라도 力行而不惑者寡矣요 至於一國一州非之라도 力行而不惑者는 蓋天下一人而已矣요 若至於擧世非之라도 力行而不惑者는 則千百年에 乃一人而已耳라
若伯夷者는 窮天地亘萬世而不顧者也라 昭乎日月이 不足爲明이요 崒乎泰山이 不足爲高요 巍乎天地가 不足爲容也로다 當殷之亡, 周之興하여 微子는 賢也라 抱祭器而去之하고 武王周公은 聖也라 率天下之賢士與天下之諸侯而往攻之로되 未嘗聞有非之者也어늘 彼伯夷叔齊者 乃獨以爲不可하고 殷旣滅矣에 天下宗周어늘 彼二子乃獨恥食其粟하여 餓死而不顧하니 繇是而言이면 夫豈有求而爲哉리오 信道篤而自知明也일새라
今世之所謂士者는 一凡人譽之면 則自以爲有餘하고 一凡人沮之면 則自以爲不足이어늘 彼獨非聖人而自是如此하니 夫聖人은 乃萬世之標準也라 余故曰 若伯夷者는 特立獨行하여 窮天地亘萬世而不顧者也라하노라 雖然이나 微二子면 亂臣賊子 接跡於後世矣리라
昌黎文集序
 
 
李漢(南紀)
 
文者는 貫道之器也니 不深於斯道요 有至者는 不也라 易繇爻象하고 春秋書事하고 詩詠歌하고 書禮剔其僞하니 皆深矣乎인저 秦漢以前엔 其氣渾然이요 迨乎司馬遷相如董生揚雄劉向之徒하여는 尤所謂傑然者也라 至後漢曹魏하여는 氣象萎苶하고 司馬氏以來로 規範蕩悉하여 謂易以下爲古文하여 剽掠潛竊爲工耳라 文與道蓁塞하여 固然莫知也로다
先生이 生大曆戊申하니 幼孤隨兄하여 播遷韶嶺하고 兄卒에 鞠於嫂氏러니 辛勤來歸하여 自知讀書爲文하여 日記數千百言이러니 比壯에 經書를 通念曉析하고 酷排釋氏하며 諸史百子를 搜抉無隱이라 汗瀾卓踔하고 奫泫澄深하여 詭然而蛟龍翔하고 蔚然而虎鳳躍하며 鏘然而韶鈞發하여 日光玉潔하고 周情孔思하여 千態萬狀이라 卒澤於道德仁義하여 炳如也러라 洞視萬古하고 愍惻當世하여 遂大拯頹風하여 敎人自爲하니 時人이 始而驚하고 中而笑且排호되 先生益堅한대 終而翕然隨以定하니라 嗚呼라 先生於文에 摧陷廓淸之功이 比於武事하면 可謂雄偉不常者矣로다
長慶四年冬에 先生歿하니 門人隴西李漢이 辱知最厚且親일새 遂收拾遺文하여 無所失墜하니 合若干卷이라 目爲昌黎先生集이라하니라
梓人傳
 
 
柳宗元(子厚)
 
裵封叔之第 在光德里러니 有梓人이 款其門하여 願傭鄛宇而處焉하니 所職은 尋引矩矩繩墨이요 家不居礱斲之器라 問其能하니 曰 吾善度材하여 視棟宇之制의 高深圓方短長之宜하여 吾指使而群工役焉하나니 捨我면 衆莫能就一宇라 故로 食官府에 吾受祿이 三倍하고 作於私家에 吾收其直 太半焉이로라 他日에 入其室하니 其牀이 闕足이로되 而不能理하고 曰 將求他工이라하여늘 余甚笑之하여 謂其無能而貪祿嗜貨者라호라
其後에 京兆尹이 將飾官署할새 余往過焉하니 委群材하고 會衆工하여 或執斧斤하고 或執刀鋸하여 皆環立嚮之라 梓人이 左執引하고 右執杖하여 而中處焉하여 量棟宇之任하고 視木之能擧하여 揮其杖曰斧하라하면 彼執斧者奔而右하고 顧而指曰鋸하라하면 彼執鋸者趨而左하여 俄而요 斤者斲하고 刀者削하되 皆視其色하고 俟其言하여 莫敢自斷者요 其不勝任者는 怒而退之호되 亦莫敢慍焉이라 畫宮於堵하되 盈尺而曲盡其制하고 計其毫釐而構大厦하여 無進退焉이라 旣成에 書于上棟曰 某年某月某建이라하니 則其姓字也요 凡執用之工은 不在列이러라 余圜視大駭하고 然後에 知其術之工이 大矣로라
繼而歎曰 彼將捨其手藝하고 專其心智하여 而能知體要者歟인저 吾聞勞心者는 役人하고 勞力者는 役於人이라하니 彼其勞心者歟인저 能者用而智者謀라하니 彼其智者歟인저 是足爲佐天子相天下法矣니 物莫近乎此也로다 彼爲天下者는 本於人하니 其執役者는 爲徒隸爲鄕師里胥요 其上은 爲下士요 又其上은 爲中士爲上士요 又其上은 爲大夫爲卿爲公하여 離而爲六職이요 判而爲百役이라 外薄四海하여는 有方伯連帥하고 郡有守하고 邑有宰로되 皆有佐政하고 其下는 有胥史하고 又其下는 有嗇夫版尹하여 以就役焉하니 猶衆工之各有執伎하여 以食力也라
彼佐天子相天下者는 擧而加焉하고 指而使焉하여 條其綱紀而盈縮焉하며 齊其法度而整頓焉하니 猶梓人之有規矩繩墨하여 以定制也요 擇天下之士하여 使稱其職하며 居天下之人하여 使安其業하여 視都知野하고 視野知國하며 視國知天下하여 其遠邇細大를 可手據其圖而究焉하니 猶梓人이 畵宮於堵而績于成也요 能者를 進而由之하되 使無所德하고 不能者를 退而休之호되 亦莫敢慍하며 不衒能하고 不矜名하며 不親小勞하고 不侵衆官하여 日與天下之英才로 討論其大經하니 猶梓人之善運衆工而不伐藝也라 夫然後에 相道得而萬國理矣니라
相道旣得하고 萬國旣理어든 天下擧首而望曰 吾相之功也라하고 後之人이 循跡而慕曰 彼相之才也라하니 士或談殷周之理者曰 伊傅周召요 其百執事之勤勞는 而不得紀焉하니 猶梓人이 自名其功而執用者不列也라
大哉라 相乎여 通是道者는 所謂相而已矣니라 其不知體要者는 反此하여 以恪勤爲公하고 簿書爲尊하며 衒能矜名하고 親小勞侵衆官하여 竊取六職百役之事하여 听听於府庭而遺其大者遠者焉하니 所謂不通是道也라 猶梓人而不知繩墨之曲直과 規矩之方圓과 尋引之短長하고 姑奪衆工之斧斤刀鋸하여 以佐其藝하며 又不能備其工하여 以至敗績用而無所成也하니 不亦謬歟아
或曰 彼主爲室者 儻或發其私智하여 牽制梓人之慮하며 奪其世守하고 而道謀를 是用이면 雖不能成功이나 豈其罪耶아 亦在任之而已니라 余曰 不然하다 夫繩墨을 誠陳하고 規矩를 誠設이면 高者를 不可抑而下也요 狹者를 不可張而廣也니 由我則固하고 不由我則圮어늘 彼將樂去固而就圮也인댄 則卷其術하고 黙其智하여 悠爾而去하여 不屈吾道가 是誠良梓人耳라 其或嗜其貨利하여 忍而不能捨也하며 喪其制量하여 屈而不能守也하고 棟撓屋壞어든 則曰非我罪也라하면 可乎哉아 余謂梓人之道 類於相이라 故로 書而藏之하니 梓人은 蓋古之審曲面勢者니 今謂之都料匠云이라 余所遇者는 楊氏요 潛其名이라
與韓愈論史書
 
柳宗元
 
前獲書하니 言史事云 具與劉秀才書라하더니 及今見書稾하니 私心甚不喜로라 與退之往年言史事로 甚大謬하니 若書中言인댄 退之不宜一日在館下니 安有探宰相意하여 以爲苟以史筆로 榮一韓退之邪아 若果爾면 退之豈宜虛受宰相榮己하여 而冒居館下近密地하여 食奉養하고 役使掌故하며 利紙筆爲私書하여 取以供子弟費리오 古之志於道者는 不宜若是니라
且退之以爲紀錄者는 有刑禍라하여 避不肯就하니 尤非也라 史以名爲褒貶이라도 猶且恐懼不敢爲인댄 設使退之爲御史中丞大夫면 其褒貶成敗人이 愈益顯이라 其宜恐懼尤大也리니 則又將揚揚入臺府하여 美食安坐하고 行呼唱於朝廷而已邪아 在御史猶爾어든 設使退之爲宰相이면 生殺出入升黜天下士하여 其敵益衆하리니 則又將揚揚入政事堂하여 美食安坐하고 行呼唱於內庭外衢而已邪아 何以異不爲史而榮其號利其祿者也리오
又言不有人禍면 必有天刑이라하여 若以罪夫前古之爲史者然하니 亦甚惑이로다 凡居其位하여는 思直其道니 道苟直이면 雖死라도 不可回也요 如回之인댄 莫若亟去其位니라 孔子之困于魯衛陳宋蔡齊楚者는 是也이니 其時暗諸侯不能以也이오 其不遇而死는 不以作春秋故也라 當是時하여 雖不作春秋라도 孔子猶不遇而死也시리라 若周公史佚은 雖紀言書事나 猶遇且顯也하니 又不得以春秋로 爲孔子累니라 范曄은 悖亂하니 雖不爲史라도 其宗族亦誅[赤]이요 司馬遷은 觸天子喜怒하고 班固不檢下하고 崔浩는 沽其直하여 以鬪暴虜하니 皆非中道며 左丘明은 以疾盲하니 出於不幸이라 子夏는 不爲史라도 亦盲하니 不可以是爲戒니 其餘皆不出此라 是退之宜守中道하여 不忘其直이요 無以他事自恐이니 退之之恐은 惟在不直不得中道요 刑禍는 非所恐也니라
凡言二百年文武士多는 有誠如此者어니와 今退之曰 我一人也何能明이리오하면 則同職者又所云이 若是하고 後來繼今者又所云이 若是하여 人人皆曰 我一人이라하면 則卒誰能紀傳之邪아 如退之는 但以所聞知로 孜孜不敢怠하고 同職者와 後來繼今者亦各以所聞知로 孜孜不敢怠하면 則庶幾不墜하여 使卒有明也어니와 不然하여 徒信人口語하여 每每異辭하여 日以滋久면 則所云磊磊軒天地者 決必不沈沒이요 且亂雜無可考하리니 非有志者所忍恣也라 果有志면 豈當待人督責迫蹙然後에 爲官守邪아
又凡鬼神事는 眇茫荒惑하여 無可準하니 明者所不道라 退之之智로도 而猶懼於此하니 今學如退之하고 辭如退之하며 好言論이 如退之하고 慷慨自謂正直行行焉이 如退之로되 猶所云이 若是면 則唐之史述이 其卒無可託乎아 明天子賢宰相이 得史才如此로되 而又不果하면 甚可痛哉인저 退之는 宜更思하여 可爲어든 速爲요 果卒以爲恐懼不敢이어든 則一日可引去니 又何以云行且謀也리오 今當爲而不爲하고 又誘[諉]館中他人及後生者하니 此大惑已라 不勉己而欲勉人이면 難矣哉라
答韋中立書
 
 
柳宗元
 
二十一日에 宗元은 白하노라 辱書云 欲相師라하니 僕은 道不篤하고 業甚淺近하여 環顧其中에 未見可師者라 雖嘗好言論 爲文章이나 甚不自是也러니 不意吾子自京都[師]로 來蠻夷間하여 乃幸見取하니 僕은 自卜에 固無取요 假令有取라도 亦不敢爲人師니 爲衆人師도 且不敢이온 況敢爲吾子師乎아
孟子稱人之患이 在好爲人師라하시고 由魏晉氏以下로 人益不事師하여 今之世에 不聞有師하고 有면 輒譁笑之하여 以爲狂人이라하나니 獨韓愈奮不顧流俗하고 犯笑侮하여 收召後學하여 作師說하고 因抗顔而爲師하니 世果群怪聚罵하여 指目牽引하여 而增與爲言詞라 愈以是得狂名하여 居長安에 炊不暇熟하고 又挈挈而東하여 如是者數矣라
屈子賦曰 邑犬群吠는 吠所怪也라하니라 僕往聞庸蜀之南은 恒雨少日하여 日出則犬吠라하니 予以爲過言이러니 前六七年에 僕來南二年冬에 幸大雪이 踰嶺하여 被南越中數州하니 數州之犬이 皆蒼黃吠噬狂走者累日하여 至無雪乃已하니 然後에 始信前所聞者로라
今韓愈旣自以爲蜀之日이어늘 而吾子又欲使吾爲越之雪하니 不以病乎아 非獨見病이요 亦以病吾子리라 然雪與日이 豈有過哉아 顧吠者犬耳라 度今天下에 不吠者幾人고 而誰敢衒怪於群目하여 以召鬧取怒乎아
僕이 自謫過以來로 益少志慮하고 居南中九年에 增脚氣病하여 漸不喜鬧하니 豈可使呶呶者로 早暮咈吾耳騷吾心이리오 則固僵仆煩憒하여 愈不可過矣리라 平居에 望外遭齒舌不少로되 獨欠爲人師耳로라 抑又聞之하니 古者重冠禮는 將以責成人之道니 是聖人所尤用心也어늘 數百年來에 人不復行이라 近者에 孫昌胤者獨發憤行之하고 旣成禮에 明日造朝하여 至外廷하여 薦笏하고 言於卿士曰 某子冠畢이라하니 應之者咸憮然하고 京兆尹鄭叔則은 怫然曳笏却立曰 何預我邪아하니 廷中이 皆大笑라 天下不以非鄭尹而怪孫子는 何哉오 獨爲所不爲也일새니 今之命師者大類此하니라
吾子行厚而辭深하여 凡所作이 皆恢然有古人形貌하니 雖僕敢爲師나 亦何所增加也리오 假而以僕이 年先吾子하여 聞道著書之日이 不後라하여 誠欲往來言所聞인댄 則僕固願悉陳中所得者하리니 吾子苟自擇之하여 取某事去某事면 則可矣어니와 若定是非하여 以敎吾子인댄 僕이 才不足而又畏前所陳者하니 其爲不敢也決矣니라
吾子前所欲見吾文을 旣悉以陳之하니 非以耀明于子요 聊欲以觀子氣色 誠好惡何如也러니 今書來에 言者皆太過하니 吾子誠非佞譽誣諛之徒라 直見愛甚故로 然耳로다 始吾幼且少하여 爲文章에 以辭爲工이러니 及長에 乃知文者는 以明道라 固不苟爲炳炳烺烺하여 務采色夸聲音하여 而以爲能也로라 凡吾所陳은 皆自謂近道어니와 而不知道之果近乎아 遠乎아 吾子好道而可吾文하니 或者其於道에 不遠矣리라
故로 吾每爲文章에 未嘗敢以輕心掉之하니 懼其剽而不留也요 未嘗敢以怠心易之하니 懼其弛而不嚴也요 未嘗敢以昏氣出之하니 懼其昧沒而雜也요 未嘗敢以矜氣作之하니 懼其偃蹇而驕也며 抑之는 欲其奧요 揚之는 欲其明이요 疎之는 欲其通이요 廉之는 欲其節이요 激而發之는 欲其淸이요 固而存之는 欲其重이니 此吾所以羽翼夫道也라
本之書하여 以求其質하고 本之詩하여 以求其恒하고 本之禮하여 以求其宜하고 本之春秋하여 以求其斷하고 本之易하여 以求其動하니 此吾所以取道之原也요 參之穀梁氏하여 以厲其氣하고 參之孟荀하여 以暢其支하고 參之莊老하여 以肆其端하고 參之國語하여 以博其趣하고 參之離騷하여 以致其幽하고 參之太史公하여 以著其潔하니 此吾所以旁推交通而以爲文也로라
凡若此者는 果是邪아 非邪아 有取乎아 抑其無取乎아 吾子幸觀焉擇焉하여 有餘어든 以告焉하고 苟亟來以廣是道인댄 子不有得焉이면 則我得矣리니 又何以師云爾哉리오 取其實而去其名하여 無招越蜀吠怪而爲外庭所笑면 則幸矣니라
捕蛇者說
 
 
柳宗元
 
永州之野에 産異蛇하니 黑質白章이요 觸草木이면 盡死하고 以齧人이면 無禦之者라 然이나 得而腊之하여 以爲餌면 可以已大風攣踠瘻癘하고 去死肌殺三蟲이라 其始에 太醫以王命聚之하여 歲賦其二호되 募有能捕之者면 當其租入하니 永之人이 爭犇走焉이라
有蔣氏者專其利三世矣라 問之則曰 吾祖死於是하고 吾父死於是하고 今吾嗣爲之하여 十二年에 幾死者數矣라하고 言之에 貌若甚慼者어늘 余悲之하고 且曰 若毒之乎아 余將告于莅事者하여 更若役하고 復若賦면 則何如오
蔣氏大慼하여 汪然出涕曰 君將哀而生之乎인댄 則吾斯役之不幸이 未若復吾賦不幸之甚也라 嚮吾不爲斯役이런들 則久已病矣리라 自吾氏三世居是鄕하여 積於今六十歲矣라 而鄕隣之生이 日蹙하여 殫其地之出하고 竭其廬之入하여 號呼而轉徙하고 飢渴而頓踣하며 觸風雨하고 犯寒暑하며 呼噓毒癘하여 往往而死者相藉也라 曩與吾祖居者 今其室이 十無一焉이요 與吾父居者 今其室이 十無二三焉이요 與吾居十二年者 今其室이 十無四五焉하니 非死則徙耳어늘 而吾以捕蛇獨存이라
悍吏之來吾隣에 叫囂乎東西하고 隳突乎南北하여 譁然而駭者면 雖鷄狗라도 不得寧焉이어늘 吾恂恂而起하여 視其缶而吾蛇尙存이어든 則弛然而臥하고 謹食之하여 時而獻焉하고 退而甘食其土之有하여 以盡吾齒하니 蓋一歲之犯死者二焉이요 其餘則熙熙而樂하니 豈若吾鄕隣之旦旦有是哉리오 今雖死乎此라도 比吾鄕隣之死면 則已後矣니 又安敢毒耶아
余聞而愈悲하노라 孔子曰 苛政이 猛於虎也라하시니 吾嘗疑乎是러니 今以蔣氏觀之하니 尤信이로다 嗚呼라 孰知賦斂之毒이 有甚是蛇者乎아 故로 爲之說하여 以俟夫觀人風者得焉하노라
種樹郭槖駝傳
 
 
柳宗元
 
郭槖駝는 不知始何名이요 病僂하여 隆然伏行하여 有類槖駝者라 故로 鄕人號之曰駝라하니 駝聞之曰 甚善하다 名我固當이로다하고 因捨其名하고 亦自謂槖駝云이러라 其鄕曰豊樂鄕이니 在長安西라
駝業種樹하니 凡長安豪家富人이 爲觀遊及賣果者 皆爭迎取養이라 視駝所種樹와 或移徙하면 無不活이요 且碩茂蚤實以蕃이라 他植者雖窺伺傚慕나 莫能如也러라
有問之하니 對曰 槖駝非能使木壽且孶也요 以能順木之天하여 以致其性焉爾라 凡植木之性이 其本은 欲舒하고 其培는 欲平하고 其土는 欲故하고 其築은 欲密이니 旣然已어든 勿動勿慮하고 去不復顧하여 其蒔也若子하고 其置也若棄면 則其天者全而其性得矣라 故로 吾不害其長而已요 非有能碩而茂之也며 不抑耗其實而已요 非有能蚤而蕃之也라
他植者則不然하여 根拳而土易하며 其培之也 若不過焉이면 則不及焉하고 苟有能反是者는 則又愛之太恩하고 憂之太勤하여 旦視而暮撫하고 已去而復顧하며 甚者는 爪其膚하여 以驗其生枯하고 搖其本하여 以觀其疎密하니 而木之性이 日以離矣라 雖曰愛之나 其實은 害之요 雖曰憂之나 其實은 讐之라 故로 不我若也니 吾又何能爲矣哉리오
問者曰 以子之道로 移之官理可乎아 駝曰 我知種樹而已요 理는 非吾業也라 然이나 吾居鄕에 見長人者好煩其令하여 若甚憐焉이로되 而卒以禍라 旦暮에 吏來而呼曰 官命促爾耕하며 勗爾植하며 督爾穫하나니 蚤繰而緖하고 蚤織而縷하며 字而幼孩하고 遂而鷄豚이라하여 鳴鼓而聚之하고 擊木而召之하니 吾小人이 具饔飧以勞吏도 且不得暇어든 又何以蕃吾生而安吾性邪아 故로 病且怠하나니 若是則與吾業者로 其亦有類乎인저 問者喜[嘻]曰 不亦善夫아 吾問養樹하여 得養人術이로다 傳其事하여 以爲官戒也하노라
愚溪詩序
 
 
柳宗元
 
灌水之陽에 有溪焉하니 東流入于瀟水라 或曰 冉氏嘗居也라 故로 姓是溪하여 爲冉溪라하고 或曰 可以染也일새 名之以其能이라 故로 謂之染溪라하니라 余以愚觸罪하여 謫瀟水上하니 愛是溪하여 入二三里에 得其尤絶者하여 家焉이라 古有愚公谷이러니 今予家是溪而名莫能定하고 土之居者 尤齗齗然하니 不可以不更也라 故로 更之爲愚溪하니라
愚溪之上에 買小丘하여 爲愚丘하고 自愚丘로 東北行六十步에 得泉焉이라 又買居之하여 爲愚泉하니라 愚泉은 凡六穴이니 皆出山下平地하니 蓋上出也라 合流屈曲而南하여 爲愚溝하니 遂負土累石하여 塞其隘하여 爲愚池하고 愚池之東에 爲愚堂하고 其南에 爲愚亭하고 池之中에 爲愚島하여 嘉木異石이 錯置하니 皆山水之奇者어늘 以余故로 咸以愚辱焉이라
夫水는 智者樂也어늘 今是溪獨見辱於愚는 何哉오 蓋其流甚下하여 不可以灌漑요 又峻急多坻石하여 大舟不可入也며 幽邃淺狹하여 蛟龍不屑하여 不能興雲雨하여 無以利世하여 而適類於余하니 然則雖辱而愚之라도 可也니라
寗武子邦無道則愚는 智而爲愚者也요 顔子終日不違如愚는 睿而爲愚者也니 皆不得爲眞愚라 今余는 遭有道하여 而違於理悖於事라 故로 凡爲愚者莫我若也니라 夫然則天下莫能爭是溪일새 余得專而名焉이로라
溪雖莫利於世나 而善鑑萬類하여 淸瑩秀澈하고 鏘鳴金石하여 能使愚者로 喜笑眷慕하여 樂而不能去也하나니 余雖不合於俗이나 亦頗以文墨自慰하여 漱滌萬物하고 牢籠百態하여 而無所避之하니 以愚辭로 歌愚溪하면 則茫然而不違하고 昏然而同歸하여 超鴻蒙하고 混希夷하여 寂寥而莫我知也라 於是에 作八愚詩하여 紀于溪石上하노라
桐葉封弟辨
 
 
柳宗元
 
之傳者有言호되 成王이 以桐葉으로 與小弱弟戲曰 以封汝하리라 周公入賀하니 王曰 戲也로다 周公曰 天子는 不可戲라한대 乃封小弱弟於唐이라하니 吾意不然이라 王之弟當封邪인댄 周公이 宜以時言於王이요 不待其戲而賀以成之也며 不當封邪인댄 周公이 乃成其不中之戲하여 以地以人으로 與小弱者爲之主면 其得爲聖乎아
且周公이 以王之言不可苟焉而已라하여 必從而成之邪인댄 設有不幸하여 王以桐葉戲婦寺라도 亦將擧而從之乎아 凡王者之德은 在行之何若이니 設未得其當이면 雖十易之라도 不爲病이라 要於其當에 不可使易也니 而況以其戲乎아 若戲而必行之면 是는 周公이 敎王遂過也니라
吾意周公輔成王에 宜以道從容優樂하여 要歸之大中而已요 必不逢其失而爲之辭하며 又不當束縛之馳驟之하여 使若牛馬然이니 急則敗矣라 且家人父子도 尙不能以此自克이어든 況號爲君臣者邪아 是直小丈夫缺缺者之事요 非周公所宜用이라 故로 不可信이니라 或曰 封唐叔은 史佚成之라하니라
晉文公問守原議
 
 
柳宗元
 
晉文公이 旣受原於王하고 難其守하여 問於寺人勃鞮하여 以畀趙衰하니 余謂 守原은 政之大者也라 所以承天子樹霸功하여 致命諸侯니 不宜謀及媟近하여 以忝王命이어늘 而晉君이 擇大任호되 不公議於朝하고 而私議於宮하며 不博謀於卿相하고 而獨謀於寺人하니 雖或衰之賢이 足以守하고 國之政이 不爲敗라도 而賊賢失政之端이 由是滋矣라 況當其時하여 不乏言議之臣乎아
狐偃이 爲謀臣하고 先軫이 將中軍이어늘 晉君이 疏而不咨하며 外而不求하고 乃卒定於內竪하니 其可以爲法乎아
且晉君이 將襲齊桓之業하여 以翼天子하니 乃大志也라 然而齊桓이 任管仲以興하고 進竪刁以敗하니 則獲原啓疆은 適其始政이라 所以觀視諸侯也어늘 而乃背其所以興하고 迹其所以敗아
然而能伯諸侯者는 以土則大하고 以力則强하고 以義則天子之冊也일새니 誠畏之矣라 烏能得其心服哉리오 其後에 景監이 得以相衛鞅하고 弘石이 得以殺望之하니 誤之者는 晉文公也라 嗚呼라 得賢臣하여 以守大邑하니 則問雖失問이나 擧非失擧也로되 然猶羞當時陷後代가 若此하니 況於問與擧又兩失者면 其何以救之哉리오 余故로 著晉君之罪하여 以附春秋許世子止晉趙盾之義하노라
連州郡復乳穴記
 
 
柳宗元
 
石鍾乳는 餌之最良者也라 楚越之山에 多産焉하되 于連于韶者獨名於世러니 連之人이 告盡焉者五載矣라 以貢則買諸他部러니 今刺史崔公이 至逾月에 穴人來하여 以乳復告라 邦人이 悅是祥也하여 雜然謠曰
甿之熙熙여 崔公之來로다
公化所徹에 土石蒙烈이로다
以爲不信인댄 起視乳穴하라
穴人이 笑之曰 是惡知所謂祥邪아 嚮吾以刺史之貪戾嗜利하여 徒吾役而不吾貨也일새 吾是以病而紿焉이러니 今吾刺史令明而志潔하고 先賴而後力하여 欺誣屛息하고 信順休洽하니 吾以是誠告焉이로라 且夫乳穴이 必在深山窮林하여 冰雪之所儲요 豺虎之所廬라 由而入者 觸昏霧하고 扞龍蛇하여 束火以知其物하고 縻繩以志其返하여 其勤若是어늘 出又不得吾直하니 吾用是라 安得不以盡告리오 今令人而乃誠하니 吾告故也니 何祥之爲리오
士聞之曰 謠者之祥也는 乃其所謂怪者也요 笑者之非祥也는 乃其所謂眞祥者也라 君子之祥也는 以政이요 不以怪하나니 誠乎物而信乎道하여 人樂用命하여 熙熙然以效其有하니 斯其爲政也而獨非祥也歟아
送薛存義序
 
柳宗元
 
河東薛存義將行할새 柳子載肉于俎하고 崇酒于觴하여 追而送之江之滸하여 飮食之하고 且告曰 凡吏于土者로 若知其職乎아 蓋民之役이요 非以役民而已也라 凡民之食于土者 出其十一하여 傭乎吏하여 使司平於我也라 今受其直怠其事者 天下皆然이니 豈惟怠之리오 又從而盜之라
向使傭一夫於家하여 受若直하고 怠若事하며 又盜若貨器하면 則必甚怒而黜罰之矣리니 以今天下多類此로되 而民莫敢肆其怒與黜罰는 何哉오 勢不同也일새라 勢不同而理同하니 如吾民何오 有達于理者면 得不恐而畏乎아
存義假令零陵이 二年矣라 蚤作而夜思하고 勤力而勞心하여 訟者平하고 賦者均하며 老弱이 無懷詐暴憎하니 其爲不虛取直也的矣요 其知恐而畏也審矣라 吾賤且辱하여 不得與考績幽明之說일새 於其往也에 故賞以酒肉而重之以辭하노라

養竹記
 
 
白居易(樂天)
 
竹似賢하니 何哉오 竹本固하니 固以樹德이라 君子見其本이면 則思善建不拔者하며 竹性直하니 直以立身이라 君子見其性이면 則思中立不倚者하며 竹心空하니 空以體道라 君子見其心이면 則思應用虛受者하며 竹節貞하니 貞以立志라 君子見其節이면 則思砥礪名行하여 夷險一致者하나니 夫如是故로 君子人이 多樹之하여 爲庭實焉하나니라
貞元十九年春에 居易以拔萃選及第하여 授校書郞이라 始於長安에 求假居處하여 得常樂里故關相國私第之東亭而處之러니 明日에 屨及于亭之東南隅하여 見叢竹於斯하니 枝葉殄瘁하여 無聲無色이라 詢乎關氏之老하니 則曰 此相國之手植者라 自相國捐館으로 他人假居하니 繇是로 筐篚者斬焉하고 篲箒者刈焉하여 刑餘之材가 長無尋焉이요 數無百焉이라 又有凡草木이 雜生其中하여 苯․薈蔚하여 有無竹之心焉이라
居易惜其嘗經長者之手로되 而見賤俗人之目하여 翦棄若是나 本性猶存이라 乃刪翳薈하고 除糞壤하며 疏其間하고 封其下하여 不終日而畢하니 於是에 日出에 有淸陰하고 風來에 有淸聲하여 依依然欣欣然若有情於感遇也러라
嗟乎라 竹은 植物也니 於人에 何有哉리오마는 以其有似於賢이라하여 而人猶愛惜之하여 封植之하니 況其眞賢者乎아 然則竹之於草木에 猶賢之於衆庶라 嗚呼라 竹不能自異요 惟人異之하며 賢不能自異요 惟用賢者異之라 故로 作養竹記하여 書于亭之壁하여 以貽其後之居斯者하고 亦欲以聞於今之用賢者云이라

阿房宮賦
 
 
杜牧(牧之)
 
六王畢하니 四海一이요 蜀山兀하니 阿房出이라 覆壓三百餘里하여 隔離天日이라 驪山이 北構而西折하여 直走咸陽하고 二川이 溶溶하여 流入宮墻이라 五步에 一樓요 十步에 一閣이라 廊腰縵廻하고 簷牙高啄하여 各抱地勢하여 鉤心鬪角하니 盤盤焉囷囷焉하여 蜂房水渦 矗不知其幾千萬落이로다 長橋臥波하니 未雩[雲]何龍이며 複道行空하니 不霽何虹가 高低冥迷하여 不知西東이라 歌臺暖響은 春光融融하고 舞殿冷袖는 風雨凄凄하여 一日之內와 一宮之間에 而氣候不齊라
妃嬪媵嬙과 王子皇孫이 辭樓下殿하여 輦來于秦하여 朝歌夜絃하여 爲秦宮人이라 明星熒熒은 開粧鏡也요 綠雲擾擾는 梳曉鬟也요 渭流漲膩는 棄脂水也요 煙斜霧橫은 焚椒蘭也요 雷霆乍驚은 宮車過也니 轆轆遠聽하여 杳不知其所之也로다 一肌一容을 盡態極姸하여 縵立遠視而望幸焉이로되 有不得見者 三十六年이라 燕趙之收藏과 韓魏之經營과 齊楚之精英이 幾世幾年에 摽掠其人하여 倚疊如山이러니 一旦不能有하여 輸來其間하니 鼎鐺玉石하고 金塊珠礫하여 棄擲邐迆하니 秦人視之에 亦不甚惜이라
嗟乎라 一人之心은 千萬人之心也라 秦愛紛奢어든 人亦念其家하나니 奈何取之盡錙銖하고 用之如泥沙하여 使負棟之柱 多於南畝之農夫하고 架梁之椽이 多於機上之工女하며 釘頭磷磷이 多於在庾之粟粒하고 瓦縫參差가 多於周身之帛縷하며 直欄橫檻이 多於九土之城郭하고 管絃嘔啞가 多於市人之言語하여 使天下之人으로 不敢言而敢怒하고 獨夫之心이 日益驕固러니 戍卒叫에 函谷擧하고 楚人一炬에 可憐焦土로다
嗚呼라 滅六國者는 六國也요 非秦也며 族秦者는 秦也요 非天下也라 嗟夫라 使六國으로 各愛其人이면 則足以拒秦이요 秦復愛六國之人이면 則遞二世하여 可至萬世而爲君이니 誰得而族滅也리오 秦人이 不暇自哀而後人哀之하고 後人哀之而不鑑之하여 亦使後人而復哀後人也하나니라

弔古戰場文
 
 
李華(遐叔)
 
浩浩乎平沙無垠하여 夐不見人이라 河水縈帶하고 群山糾紛하니 黯兮慘悴하여 風悲日曛하고 蓬斷草枯하여 凜若霜晨하니 鳥飛不下하고 獸挺亡群이라
亭長이 告余曰 此는 古戰場也라 嘗覆三軍하니 往往鬼哭하여 天陰則聞이니라 傷心哉라 秦歟아 漢歟아 將近代歟아 吾聞夫齊魏徭戍하고 荊韓召募하여 萬里奔走하고 連年暴露하여 沙草晨牧하고 河冰夜渡하니 地闊天長하여 不知歸路라 寄身鋒刃하니 腷臆誰訴오
秦漢而還으로 多事四夷하니 中州耗斁가 無世無之라 古稱戎夏不抗王師러니 文敎失宣하고 武臣用奇하니 奇兵은 有異於仁義하고 王道는 迂闊而莫爲라
嗚呼噫嘻로다 吾想夫北風振漠하고 胡兵伺便이어늘 主將驕敵하여 期門受戰이라 野竪旌旗하고 川回組練하니 法重心駭하고 威尊命賤이라 利鏃穿骨하고 驚沙入面하니 主客相搏에 山川震眩하여 聲拆江河하고 勢崩雷電이라
至若窮陰凝閉에 凜冽海隅하니 積雪沒脛하고 堅冰在鬚라 鷙鳥休巢하고 征馬踟躕하니 繒纊無溫하여 墮指裂膚라 當此苦寒에 天假强胡하여 憑陵殺氣하여 以相翦屠라 徑截輜重하고 橫攻士卒하니 都尉新降하고 將軍復沒이라 屍塡巨港之岸하고 血滿長城之窟하여 無貴無賤히 同爲枯骨하니 可勝言哉아
鼓衰兮力盡하고 矢竭兮弦絶이라 白刃交兮寶刀折하니 兩軍蹙兮生死決이라 降矣哉아 終身夷狄이요 戰矣哉아 骨暴沙礫이로다 鳥無聲兮山寂寂이요 夜正長兮風淅淅이라 魂魄結兮天沈沈이요 鬼神聚兮雲冪冪이라 日光寒兮草短하고 月色苦兮霜白하니 傷心慘目이 有如是耶아
吾聞之하니 牧用趙卒하여 大破林胡하고 開地千里하여 遁逃匈奴러니 漢傾天下하여 財殫力痡하니 任人而已라 其在多乎아 周逐獫狁하여 北至太原하고 旣城朔方하여 全師而還하여 飮至策勳하여 和樂且閑하니 穆穆棣棣 君臣之間이러니 秦起長城하여 竟海爲關하여 荼毒生靈하여 萬里朱殷이라 漢擊匈奴하여 雖得陰山이나 枕骸遍野하여 功不補患이라
蒼蒼烝民이 誰無父母오 提携捧負하여 畏其不壽라 誰無兄弟오 如足如手하며 誰無夫婦오 如賓如友라 生也何恩이며 殺之何咎오 其存其沒을 家莫聞知라 人或有言이면 將信將疑하여 娟娟[悁悁]心目하여 寤寐見之라 布奠傾觴하여 哭望天涯하니 天地爲愁하고 草木凄悲라 弔祭不至하여 精魂無依하니 必有凶年하여 人其流離로다 嗚呼噫嘻라 時耶아 命耶아 從古如斯하니 爲之奈何오 守在四夷하니라

待漏院記
 
 
王禹偁(元之)
 
天道不言而品物亨하고 歲功成者는 何謂也오 四時之吏와 五行之佐가 宣其氣矣요 聖人不言而百姓親하고 萬邦寧者는 何謂也오 三公論道하고 六卿分職하여 張其敎矣니 是知君逸於上하고 臣勞於下는 法乎天也니라
古之善相天下者는 自咎夔로 至房魏히 可數也니 是不獨有其德이요 亦皆務于勤爾라 況夙興夜寐하여 以事一人은 卿大夫猶然이어든 況宰相乎아
朝廷이 自國初로 因舊制하여 設宰臣待漏院于丹鳳門之右하니 示勤政也라 至若北闕向曙하고 東方未明에 相君啓行하니 煌煌火城이요 相君至止하니 噦噦鸞聲이라 金門未闢하고 玉漏猶滴이어든 撤蓋下車하여 于焉以息하니 待漏之際에 相君이 其有思乎인저
其或兆民未安이어든 思所泰之하며 四夷未附어든 思所來之하며 兵革未息이어든 何以弭之하며 田疇多蕪어든 何以闢之하며 賢人在野어든 我將進之하며 佞臣在朝어든 我將斥之하며 六氣不和하여 災眚荐至어든 願避位以禳之하며 五刑未措하여 欺詐日生이어든 請修德以釐之라하여 憂心忡忡하여 待旦而入하면 九門旣啓에 四聰甚邇라 相君言焉에 時君納焉하면 皇風이 於是乎淸夷하고 蒼生이 以之而富庶하리니 若然則總百官, 食萬錢이 非幸也요 宜也니라
其或私讐未復이어든 思所逐之하며 舊恩未報어든 思所榮之하며 子女玉帛을 何以致之하며 車馬器玩을 何以取之하며 姦人附勢어든 我將陟之하며 直士抗言이어든 我將黜之하며 三時告災하여 上有憂色이어든 構巧辭以悅之하며 群吏弄法하여 君聞怨言이어든 進諂容以媚之라하여 私心慆慆하여 假寐而坐라가 九門旣開에 重瞳屢回어든 相君言焉에 時君惑焉하면 政柄이 於是乎隳哉하고 帝位以之而危矣리니 若然則死下獄, 投遠方이 非不幸也요 亦宜也니라 是知一國之政과 萬人之命이 懸於宰相하니 可不愼歟아 復有無毁無譽하며 旅進旅退하여 竊位而苟祿하고 備員而全身者는 亦無所取焉이니라 棘寺小吏王禹偁은 爲文請誌院壁하여 用規于執政者하노라

黃州竹樓記
 
 
王禹偁
黃岡之地에 多竹하여 大者는 如椽이라 竹工破之하여 刳去其節하고 用代陶瓦하여 比屋皆然하니 以其價廉而工省也일새라 子城西北隅에 雉堞圮毁하고 蓁莽荒穢어늘 因作小樓二間하니 與月波樓通이라 遠呑山光하고 平挹江瀨하여 幽閴遼夐이 不可具狀이라 夏宜急雨하니 有瀑布聲이요 冬宜密雪하니 有碎玉聲이요 宜鼓琴하니 琴調和暢하고 宜詠詩하니 詩韻淸絶하며 宜圍棋하니 子聲이 丁丁然하고 宜投壺하니 矢聲이 錚錚然하니
公退之暇에 披鶴氅衣하고 戴華陽巾하고 手執周易一卷하고 焚香黙坐하여 消遣世慮하니 江山之外에 第見風帆沙鳥와 煙雲竹樹而已라 待其酒力醒하고 茶煙歇하여 送夕陽하고 迎素月하니 亦謫居之勝槪也라 彼齊雲落星이 高則高矣요 井幹麗譙가 華則華矣나 止于貯妓女, 藏歌舞요 非騷人之事라 吾所不取로라
吾聞竹工云 竹之爲瓦僅十稔이니 若重覆之면 得二十稔이라하니 噫라 吾以至道乙未歲로 自翰林出滁上하고 丙申에 移廣陵하고 丁酉에 又入西掖이라가 戊戌歲除日에 有齊安之命하여 己亥閏三月에 到郡하니 四年之間에 奔走不暇라 未知明年에 又在何處하니 豈懼竹樓之易朽乎리오 後之人이 與我同志하여 嗣而葺之면 庶斯樓之不朽也리라 咸平二年八月十五日에 記하노라
嚴先生祠堂記
 
 
范仲淹(希文)
 
先生은 漢光武之故人也라 相尙以道러니 及帝握赤符하고 乘六龍하여 得聖人之時하여 臣妾億兆하니 天下孰加焉고 惟先生이 以節高之라 旣而動星象하고 歸江湖하여 得聖人之淸하여 泥塗軒冕하니 天下孰加焉고 惟光武以禮下之라
在蠱之上九에 衆方有爲어늘 而獨不事王侯하여 高尙其事라하니 先生이 以之하고 在屯之初九에 陽德方亨이어늘 而能以貴下賤하여 大得民也라하니 光武以之라
蓋先生之心은 出乎日月之上하고 光武之量은 包乎天地之外하니 微先生이면 不能成光武之大요 微光武면 豈能遂先生之高哉리오 而使貪夫廉하고 懦夫立하니 是大有功於名敎也라
仲淹이 來守是邦하여 始構堂而奠焉하고 乃復其爲後者四家하여 以奉祠事하고 又從而歌曰 雲山蒼蒼하고 江水泱泱이라 先生之風은 山高水長이로다

岳陽樓記
 
范仲淹
慶曆四年春에 滕子京이 謫守巴陵郡하니 越明年에 政通人和하여 百廢具興이라 乃重修岳陽樓하여 增其舊制하고 刻唐賢今人詩賦于其上하고 屬予作文以記之라
予觀夫巴陵勝狀이 在洞庭一湖라 銜遠山하고 呑長江하여 浩浩蕩蕩하여 橫無際涯하여 朝暉夕陰에 氣象萬千하니 此則岳陽樓之大觀也니 前人之述에 備矣라 然則北通巫峽하고 南極瀟湘하여 遷客騷人이 多會于此하니 覽物之情이 得無異乎아
若夫霪雨霏霏하여 連月不開라 陰風怒號하여 濁浪排空하며 日星隱曜하고 山岳潛形하며 商旅不行하여 檣傾楫摧하며 薄暮冥冥에 虎嘯猿啼하니 登斯樓也면 則有去國懷鄕하고 憂讒畏譏하여 滿目蕭然하여 感極而悲者矣라
至若春和景明하고 波瀾不驚하여 上下天光이 一碧萬頃이라 沙鷗翔集하고 錦鱗游泳하며 岸芷汀蘭이 郁郁靑靑하고 而或長煙一空하며 皓月千里라 浮光은 躍金하고 靜影은 沈璧이라 漁歌互答하니 此樂何極가 登斯樓也면 則有心曠神怡하여 寵辱俱忘하고 把酒臨風하여 其喜洋洋者矣라
嗟夫라 予嘗求古仁人之心하니 或異二者之爲는 何哉오 不以物喜하며 不以己悲하여 居廟堂之高면 則憂其民하고 處江湖之遠이면 則憂其君하나니 是는 進亦憂, 退亦憂니 然則何時而樂耶아 其必曰 先天下之憂而憂하며 後天下之樂而樂歟인저 噫라 微斯人이면 吾誰與歸리오
擊蛇笏銘
 
 
石介(守道)
 
天地至大어늘 有邪氣干於其間하여 爲凶暴, 爲殘賊이라도 聽其肆行하여 如天地卵育之而莫禦也하며 人生最靈이어늘 或異類出於其表하여 爲妖怪, 爲淫惑이라도 信其異端하여 如人蔽覆之而莫露也라 祥符年에 寧州天慶觀에 有蛇妖하여 極怪異라 郡刺史日兩至於其庭하여 朝焉하니 人以爲龍이라하여 擧州人內外遠近이 罔不駿奔於門以覲호되 恭莊肅祗하여 無敢怠者라
今龍圖待制孔公이 時佐幕在是邦일새 亦隨郡刺史於其庭이러니 公曰 明則有禮樂이요 幽則有鬼神이니 是蛇不以誣乎아 惑吾民하며 亂吾俗하니 殺無赦라하고 以手板으로 擊其首하여 遂斃於前하니 則蛇無異焉이라 郡刺史曁內外遠近庶民이 昭然若發蒙하여 見靑天覩白日이라 故로 不能肆其凶殘而成其妖惑하니라 易曰 是故로 知鬼神之情狀이라하니 公之謂乎인저
夫天地間에 有純剛至正之氣하여 或鍾於物하고 或鍾於人하니 人有死하고 物有盡하되 此氣不滅烈烈하여 彌亘億萬世而長在라 在堯時에 爲指佞草하고 在魯에 爲孔子誅少正卯刃하고 在晉在齊에 爲董史筆하고 在漢武帝朝에 爲東方朔戟하고 在成帝朝에 爲朱雲劍하고 在東漢에 爲張綱輪하고 在唐에 爲韓愈論佛骨表, 逐鰐魚文하고 爲段太尉擊朱泚笏하고 今爲公擊蛇笏이라
故로 佞人去에 堯德聰하고 少正卯戮에 孔法擧하고 罪趙盾에 晉人懼하고 辟崔子에 齊刑明하고 距董偃하며 折張禹하며 劾梁冀에 漢室乂하고 佛老微에 聖道行하고 鰐魚徙에 潮患息하고 朱泚傷에 唐朝振하고 怪蛇死에 妖氣散이라
噫라 天地鍾純剛至正之氣하여 在公之笏하니 豈徒斃一蛇而已리오 軒陛之下에 有罔上欺民, 先意順旨者어든 公以此笏指之하고 廟堂之上에 有蔽賢蒙惡, 違法亂紀者어든 公以此笏麾之하고 朝廷之內에 有諛容佞色, 附邪背正者어든 公以此笏擊之리라 夫如是면 則軒陛之下에 不仁者去하고 廟堂之上에 無奸臣하고 朝廷之內에 無佞人하리니 則笏之功也 豈止在一蛇리오 公以笏爲任하고 笏得公而用하여 公方爲朝廷正人이요 笏方爲公之良器라 敢稱德于公하여 作笏銘하노라 曰
 
至正之氣가 天地則有하니 笏爲靈物일새 笏乃能受로다
笏之爲物이 純剛正直하니 公惟正人일새 公乃能得이로다
笏之在公에 能破淫妖하고 公之在朝에 讒人乃消로다
靈氣未竭이면 斯笏不折이요 正道未亡이면 斯笏不藏이라 惟公寶之하니 烈烈其光이로다
 
諫院題名記
 
 
司馬光(君實)
 
古者에 諫無官하여 自公卿大夫로 至于工商히 無不得諫者러니 漢興以來로 始置官하니 夫以天下之政과 四海之衆으로 得失利病이 萃于一官하여 使言之하니 其爲任이 亦重矣라 居是官者는 當志其大하고 捨其細하며 先其急하고 後其緩하여 專利國家요 而不爲身謀라 彼汲汲於名者는 猶汲汲於利也니 其間相去 何遠哉리오
天禧初에 眞宗이 詔置諫官六員하여 責其職事러니 慶曆中에 錢君이 始書其名於版이라 光이 恐久而漫滅일새 嘉祐八年에 刻著于石하노니 後之人이 將歷指其名而議之曰 某也忠하고 某也詐하며 某也直하고 某也曲이라하리니 嗚呼라 可不懼哉아

獨樂園記
 
 
司馬光
 
迂叟 平日讀書호되 上師聖人하고 下友群賢하여 窺仁義之原하고 探禮樂之緖하여 自未始有形之前으로 曁四達無窮之外하여 事物之理가 擧集目前하여 可者學之하되 未至夫可하니 何求於人이며 何待於外哉리오
志倦體疲하면 則投竿取魚하고 執袵菜藥하며 決渠灌花하고 操斧剖竹하며 濯熱盥水하고 臨高縱目하여 逍遙徜徉하여 惟意所適하니 明月이 時至하고 淸風이 自來라 行無所牽하고 止無所抳하여 耳目肺腸을 卷爲己有하여 踽踽焉, 洋洋焉하니 不知天壤之間에 復有何樂이 可以代此也로다 因合而命之曰獨樂이라하노라

讀孟嘗君傳
 
 
王安石(介甫)
 
世皆稱孟嘗君이 能得士라 士以故歸之하여 而卒賴其力하여 以脫於虎豹之秦이라하니 嗟乎라 孟嘗君은 特鷄鳴狗吠之雄耳라 豈足以言得士리오 不然이면 擅齊之强하여 得一士焉이라도 宜可以南面而制秦이어니 尙取鷄鳴狗吠之力哉아 鷄鳴狗吠之出其門이라 此士之所以不至也니라

上范諫書
 
歐陽脩(永叔)
 
前月中에 得進奏吏報하니 云自陳州召至闕하여 拜司諫이라하니 卽欲爲一書以賀로되 多事怱卒하여 未能也로라 司諫은 七品官爾라 於執事에 得之不爲喜로되 而獨區區欲一賀者는 誠以諫官者는 天下之得失과 一時之公議 繫焉일새라
今世之官이 自九卿百執事로 外至一郡縣吏히 非無貴官大職可以行其道也라 然이나 縣越其封하고 郡踰其境하여는 雖賢守長이라도 不得行은 以其有守也요 吏部之官이 不得理兵部하고 鴻臚之卿이 不得理光祿은 以其有司也라 若天下之得失과 生民之利害와 社稷之大計를 惟所見聞而不係職司者는 獨宰相可行之요 諫官可言之爾라
故로 士學古懷道者 仕於朝에 不得爲宰相인댄 必爲諫官이니 諫官雖卑나 與宰相等이라 天子曰不可라도 宰相曰可라하며 天子曰然이라도 宰相曰不然이라하여 坐乎廟堂之上하여 與天子相可否者는 宰相也요 天子曰是라도 諫官曰非라하며 天子曰必行이라도 諫官曰必不可行이라하여 立乎殿陛之前하여 與天子爭是非者는 諫官也라 宰相은 尊이라 行其道하고 諫官은 卑라 行其言이니 言行이면 道亦行也니라
九卿百司郡縣之吏는 守一職者라 任一職之責하고 宰相諫官은 繫天下之事라 亦任天下之責이니라 然이나 宰相九卿而下失職者는 受責於有司어니와 諫官之失職也는 取譏於君子하니 有司之法은 行乎一時어니와 君子之譏는 著之簡冊而昭明하고 垂之百世而不泯하니 甚可懼也라 夫七品之官이 任天下之責하고 懼百世之譏하니 豈不重耶아 非材且賢者면 不能爲也니라
近執事 始被召於陳州하니 洛之士大夫相與語曰 我識范君하니 知其材也라 其來에 不爲御史면 必爲諫官이라하더니 及命下에 果然이라 則又相與語曰 我識范君하니 知其賢也라 他日에 聞有立天子陛下하여 直辭正色하여 面爭廷論者는 非它人이요 必范君也라하더니 拜官以來로 翹首企足하여 竚乎有聞이로되 而卒未也하니 竊惑之하노라 豈洛之士大夫能料於前而不能料於後也아 將執事有待而爲也아
昔에 韓退之作爭臣論하여 以譏陽城不能極諫이러니 卒以諫顯하니 人皆謂城之不諫이 蓋有待而然이어늘 退之不識其意而妄譏라호되 脩獨以謂不然이라하노라 當退之作論時하여 城爲諫議大夫已五年이요 後又二年에 始廷論陸贄及沮裵延齡作相하여 欲裂其麻하니 纔兩事耳라 當德宗時하여 可謂多事矣라 授受失宜하여 叛將强臣이 羅列天下하고 又多猜忌하여 進任小人하니 於此之時에 豈無一事可言而須七年耶아 當時之事가 豈無急於沮延齡論陸贄兩事耶아 謂宜朝拜官而夕奏疏也니라 幸而城爲諫官七年에 適遇延齡陸贄事하여 一諫而罷하여 以塞其責하니 向使止五年六年而遂遷司業이런들 是는 終無一言而去也니 何所取哉리오 今之居官者는 率三歲而一遷하고 或一二歲하고 甚者는 半歲而遷也하니 此又非可以待乎七年也라
今天子躬親庶政하사 化理淸明하여 雖爲無事나 然自千里로 詔執事而拜是官者는 豈不欲聞正議而樂讜言乎아 然今未聞有所言說하여 使天下知朝廷有正士하고 而彰吾君納諫之明也라 夫布衣韋帶之士가 窮居草茅하여 坐誦書史하여는 常恨不見用이라가 及用也엔 又曰 彼非我職이니 不敢言이라하고 或曰 我位猶卑하여 不得言이라하며 得言矣엔 又曰 我有待라하면 是는 終無一人言也니 可不惜哉아
伏惟執事는 思天子所以見用之意하고 懼君子百世之譏하여 一陳昌言하여 以塞重望하고 且解洛之士大夫之惑則幸甚이라

相州晝錦堂記
 
 
歐陽脩
 
仕宦而至將相하고 富貴而歸故鄕은 此人情之所榮이요 而今昔之所同也라 蓋士方窮時에 困阨閭里하여 庸人孺子皆得易而侮之하나니 若季子不禮於其嫂하고 買臣이 見棄於其妻라가 一旦에 高車駟馬로 旗旄導前而騎卒擁後어든 夾道之人이 相與騈肩累跡하여 瞻望咨嗟하고 而所謂庸夫愚婦者 奔走駭汗하며 羞愧俯伏하여 以自悔罪於車塵馬足之間하나니 此는 一介之士 得志當時而意氣之盛을 昔人이 比之衣錦之榮也하나니라
惟大丞相魏國公則不然하니 公은 相人也라 世有令德하여 爲時名卿하니 自公少時로 已擢高科, 登顯仕하여 海內之士 聞下風而望餘光者가 蓋亦有年矣니 所謂將相而富貴는 皆公所宜素有라 非如窮阨之人이 僥倖得志於一時하여 出於庸夫愚婦之不意하여 以驚駭而誇耀之也라
然則高牙大纛이 不足爲公榮이요 桓圭袞裳이 不足爲公貴요 惟德被生民而功施社稷하여 勒之金石하며 播之聲詩하여 以耀後世而垂無窮이 此公之志요 而士亦以此望於公也니 豈止夸一時而榮一鄕哉아
公在至和中에 嘗以武康之節로 來治於相이라 乃作晝錦之堂于後圃하고 旣又刻詩於石하여 以遺相人호되 其言이 以快恩讐矜名譽爲可薄하니 蓋不以昔人所夸者爲榮이요 而以爲戒라 於此에 見公之視富貴爲如何니 而其志豈易量哉아
故로 能出入將相하여 勤勞王家하되 而夷險一節하고 至於臨大事, 決大議에 垂紳正笏하여 不動聲色하고 而措天下於泰山之安하니 可謂社稷之臣矣로다 其豊功盛烈이 所以銘彛鼎而被絃歌者는 乃邦家之光이요 非閭里之榮也라 余雖不獲登公之堂이나 幸嘗竊誦公之詩하여 樂公之志有成而喜爲天下道也일새 於是乎書하노라
醉翁亭記
 
歐陽脩
環滁는 皆山也라 其西南諸峰이 林壑尤美하여 望之蔚然而深秀者는 瑯琊也요 山行六七里에 漸聞水聲潺潺而瀉出于兩峰之間者는 釀泉也요 峰回路轉에 有亭翼然하여 臨于泉上者는 醉翁亭也라 作亭者誰오 山之僧智僊也요 名之者誰오 太守自謂也라 太守與客으로 來飮于此할새 飮少輒醉하고 而年又最高라 故로 自號曰 醉翁也라하니 醉翁之意는 不在酒하고 在乎山水之間也니 山水之樂을 得之心而寓之酒也라
若夫日出而林霏開하고 雲歸而巖穴暝하여 晦明變化者는 山間之朝暮也요 野芳發而幽香하고 嘉木秀而繁陰하며 風霜高潔하고 水落而石出者는 山間之四時也라 朝而往하고 暮而歸에 四時之景不同而樂亦無窮也라
至於負者歌于塗하고 行者休于樹하며 前者呼하고 後者應하여 傴僂提携하여 往來而不絶者는 滁人遊也요 臨谿而漁하니 谿深而魚肥하고 釀泉爲酒하니 泉冽而酒香이라 山肴野蔌을 雜然而前陳者는 太守宴也니 宴酣之樂은 非絲非竹이라 射者中하고 奕者勝하여 觥籌交錯하여 起坐而諠譁者는 衆賓歡也요 蒼顔白髮이 頹乎其間者는 太守醉也라
已而요 夕陽在山하고 人影散亂은 太守歸而賓客從也요 樹林陰翳하여 鳴聲上下는 遊人去而禽鳥樂也라 然而禽鳥는 知山林之樂하고 而不知人之樂하며 人은 知從太守遊而樂하고 而不知太守之樂其樂也라 醉能同其樂하고 醒能述以文者는 太守也니 太守는 謂誰오 廬陵歐陽脩也니라
秋聲賦
 
 
歐陽脩
 
歐陽子方夜讀書러니 聞有聲自西南來者하고 悚然而聽之曰 異哉라 初淅瀝以蕭颯이러니 忽奔騰而澎湃하여 如波濤夜驚하며 風雨驟至하여 其觸於物也에 鏦鏦錚錚하여 金鐵皆鳴하고 又如赴敵之兵이 銜枚疾走하여 不聞號令이요 但聞人馬之行聲이로다
予謂童子호되 此何聲也오 汝出視之하라 童子曰 星月皎潔하고 明河在天하니 四無人聲이요 聲在樹間이러이다 予曰 噫嘻悲哉라 此秋聲也로다 胡爲乎來哉오 蓋夫秋之爲狀也 其色慘淡하여 煙霏雲斂이요 其容淸明하여 天高日晶이요 其氣慄冽하여 砭人肌骨이요 其意蕭條하여 山川寂寥라 故로 其爲聲也 凄凄切切하고 呼號憤發하여 豐草綠縟而爭茂하고 佳木蔥蘢而可悅이라가 草拂之而色變하고 木遭之而葉脫하니 其所以摧敗零落者는 乃一氣之餘烈이라
夫秋는 刑官也라 於時爲陰이요 又兵象也라 於行에 爲金이니 是謂天地之義氣라 常以肅殺而爲心이니라 天之於物에 春生秋實이라 故로 其在樂也에 商聲이 主西方之音하고 夷則이 爲七月之律하니 商은 傷也니 物旣老而悲傷이요 夷는 戮也니 物過盛而當殺이니라
嗟乎라 草木은 無情이로되 有時飄零하나니 人爲動物하여 惟物之靈이라 百憂感其心하고 萬事勞其形하여 有動于中이면 必搖其精하나니 而況思其力之所不及하며 憂其智之所不能가 宜其渥然丹者爲槁木이요 黟然黑者爲星星이라 奈何非金石之質이어늘 欲與草木而爭榮가 念誰爲之戕賊이완대 亦何恨乎秋聲가 童子莫對하고 垂頭而睡하니 但聞四壁에 蟲聲喞喞하여 如助予之歎息이러라

憎蒼蠅賦
 
 
歐陽脩
 
蒼蠅蒼蠅아 吾嗟爾之爲生하노라 旣無蜂蠆之毒尾하고 又無蚊蝱之利觜라 幸不爲人之畏어니와 胡不爲人之喜오 爾形이 至眇하고 爾欲이 易盈하니 盃盂殘瀝과 砧几餘腥에 所希秒忽이라 過則難勝이어늘 苦何求而不足하여 乃終日而營營고 逐氣尋香하여 無處不到하여 頃刻而集하니 誰相告報오 其在物也雖微나 其爲害也至要라
若乃華榱廣厦와 珍簟方牀에 炎風之燠이요 夏日之長이라 神昏氣蹙하고 流汗成漿하여 委四肢而莫擧하고 眊兩目其茫洋하니 惟高枕之一覺하여 冀煩歊之蹔忘이어늘 念於爾而何負완대 乃於吾而見殃고 尋頭撲面하고 入袖穿裳하며 或集眉端하고 或沿眼眶하여 目欲瞑而復警하고 臂已痺而猶攘하니 於此之時에 孔子何由見周公於髣髴이며 莊生安得與蝴蝶而飛揚가 徒使蒼頭丫髻로 巨扇揮颺하여 或頭垂而腕脫하고 或立寐而顚僵하니 此其爲害者一也라
又如峻宇高堂에 嘉賓上客이 沽酒市脯하고 鋪筵設席하여 聊娛一日之餘閑이로되 奈爾衆多之莫敵고 或集器皿하고 或屯几格하며 或醉醇酎하여 因之沒溺하며 或投熱羹하여 遂喪其魄하니 諒雖死而不悔나 亦可戒夫貪得이라 尤忌赤頭하니 號爲景迹이라 一有霑汚면 人皆不食하나니 奈何引類呼朋하여 搖頭鼓翼하며 聚散焂忽하여 往來絡繹고 方其賓主獻酬하고 衣冠儼飾에 使吾揮手頓足하여 改容失色하니 於此之時에 王衍이 何暇於淸談이며 賈誼堪爲之太息이니 此其爲害者二也라
又如醯醢之品과 醬臡之制를 及時月而收藏하여 謹甁甖之固濟어늘 乃衆力以攻鑽하고 極百端而窺覬하며 至於大胾肥牲과 嘉殽美味에 蓋藏이 稍露而罅隙하고 守者或時而假寐하여 纔少怠於防嚴이면 已輒遺其種類하여 莫不養息蕃滋하여 淋漓敗壞하여 使親朋卒至에 索爾以無歡하고 臧獲懷憂하여 因之而得罪하니 此其爲害者三也라
是皆大者니 餘悉難名이로다 嗚呼라 止棘之詩 垂之六經하니 於此에 見詩人之博物과 比興之爲精이니 宜乎以爾刺讒人之亂國이라 誠可嫉而可憎이로다

鳴蟬賦
 
 
歐陽脩
 
嘉祐元年夏에 大雨水어늘 奉詔祈晴於醴泉宮할새 聞鳴蟬하고 有感而賦云이라
肅祠庭以祇事兮여 瞻玉宇之崢嶸이라 收視聽以淸慮兮여 齋予心以薦誠이라 因以靜而求動兮여 見乎萬物之情이라 於是에 朝雨驟止하고 微風不興하니 四無雲而靑天이요 雷曳曳其餘聲이라 乃席芳葯하고 臨華軒하니 古木數株 空庭草間이라
爰有一物이 鳴于樹顚하니 引淸風以長嘯하고 抱纖柯而永歎이라 嘒嘒非管이요 泠泠若絃하여 裂方號而復咽하고 凄欲斷而還連이라 吐孤韻以難律하여 含五音之自然하니 吾不知其何物이요 其名曰蟬이라
豈非因物造形하여 能變化者耶아 出自糞壤하여 慕淸虛者耶아 凌風高飛하여 知所止者耶아 嘉木茂盛에 喜淸陰者耶아 呼吸風露하여 能尸解者耶아 綽約雙鬢이 修嬋娟者耶아 其爲聲也不樂不哀요 非宮非徵라 胡然而鳴이며 亦胡然而止오
吾嘗悲夫萬物이 莫不好鳴이라 若乃四時代謝에 百鳥嚶兮며 一氣候至에 百蟲驚兮라 嬌兒姹女는 語鸝庚兮요 鳴機絡緯는 響蟋蟀兮라 轉喉弄舌이 誠可愛兮요 引腹動股는 豈勉强而爲之兮아 至於汚池濁水에 得雨而聒兮며 飮泉食土하여 長夜而歌兮라 彼蝦蟆는 固若有欲이어니와 而蚯蚓은 亦何求兮오 其餘大小萬狀을 不可悉名이로되 各有氣類하고 隨其物形하여 不知自止하여 有若爭能이라가 忽時變以物改면 咸漠然而無聲이라
嗚呼라 達士所齊는 萬物一類라 人於其間에 所以爲貴는 蓋以巧其語言하며 又能傳於文字라 是以로 窮彼思慮하며 耗其血氣하여 或吟哦其窮愁하고 或發揚其志意하여 雖共盡於萬物이나 乃長鳴於百世하니 予亦安知其然哉리오 聊爲樂以自喜라 方將考得失, 較同異러니 俄而雲陰復興하고 雷電俱擊하여 大雨旣作하니 蟬聲遂息하니라
送徐無黨南歸序
 
 
歐陽脩(永叔)
 
草木鳥獸之爲物과 衆人之爲人이 其爲生은 雖異나 而爲死則同하여 一歸於腐壞澌盡泯滅而已언마는 而衆人之中에 有聖賢者하니 固亦生且死於其間이로되 而獨異於草木鳥獸衆人者하여 雖死而不朽하고 愈遠而彌存也하나니 其所以爲聖賢者는 修之於身하며 施之於事하며 見之於言이니 是三者는 所以能不朽而存也라
修於身者는 無所不獲이요 施於事者는 有得, 有不得焉이요 其見於言者는 則又有能, 有不能焉이라 施於事矣면 不見於言이라도 可也니 自詩書史記所傳으로 其人이 豈必皆能言之士哉아 修於身矣면 而不施於事하고 不見於言이라도 亦可也니 孔門弟子 有能政事者矣요 有能言語者矣로되 若顔回者는 在陋巷하여 曲肱飢臥而已요 其群居則黙然終日하여 如愚人이라 然自當時群弟子로 皆推尊之하여 以爲不敢望而及하고 以後世更千百歲에 亦未有能及之者하니 其不朽而存者 固不待施於事어든 況於言乎아
予讀班固藝文志와 唐四庫書目하고 見其所列하니 自三代秦漢以來로 著書之士가 多者는 至百餘篇이요 少者도 猶三四十篇이니 其人을 不可勝數로되 而散亡磨滅하여 百不一二存焉이라 予竊悲其人의 文章麗矣요 言語工矣로되 無異草木榮華之飄風과 鳥獸好音之過耳也라 方其用心與力之勞가 亦何異衆人之汲汲營營이리오 而忽然以死者 雖有遲有速이나 而卒與三者로 同歸於泯滅하니 夫言之不可恃 蓋如此라 今之學者 莫不慕古聖賢之不朽而勤一世하여 以盡心於文字間者는 皆可悲也니라
東陽徐生이 少從予學하여 爲文章에 稍稍見稱於人이러니 旣去에 乃與群士로 試於禮部하여 得高第하니 由是知名이라 其文辭日進하여 如水涌而山出하니 予欲摧其盛氣而勉其思也라 故於其歸에 告以是言하노라 然이나 予固亦喜爲文辭者라 亦因以自警焉하노라
縱囚論
 
 
歐陽脩
 
信義는 行於君子하고 而刑戮은 施於小人하나니 刑入于死者는 乃罪大惡極이니 此又小人之尤甚者也요 寧以義死언정 不苟幸生하여 而視死如歸는 此又君子之尤難者也라
方唐太宗之六年에 錄大辟囚三百餘人하여 縱使還家하고 約其自歸以就死하니 是는 以君子之難能으로 期小人之尤者以必能也라 其囚及期而卒自歸하여 無後者하니 是는 君子之所難이요 而小人之所易也니 此豈近於人情이리오
或曰 罪大惡極은 誠小人矣나 及施恩德以臨之하여는 可使變而爲君子하니 蓋恩德入人之深而移人之速이 有如是者矣니라
曰太宗之爲此는 所以求此名也라 然이나 安知夫縱之去也에 不意其必來以冀免하여 所以縱之乎며 又安知夫被縱而去也에 不意其自歸而必獲免하여 所以復來乎아 夫意其必來而縱之면 是는 上賊下之情也요 意其必免而復來면 是는 下賊上之心也니 吾見上下交相賊하여 以成此名也로니 烏有所謂施恩德與夫知信義者哉리오 不然이면 太宗施德於天下 於玆六年矣라 不能使小人不爲極惡大罪하고 而一日之恩이 能使視死如歸而存信義는 此又不通之論也니라
然則何爲而可오 曰 縱而來歸어든 殺之無赦하고 而又縱之而又來면 則可知爲恩德之致爾라 然이나 此는 必無之事也라 若夫縱而來, 歸而赦之는 可偶一爲之爾니 若屢爲之면 則殺人者皆不死하리니 是可爲天下之常法乎아 不可爲常者 其聖人之法乎아 是以로 堯舜三王之治는 必本於人情하여 不立異以爲高하며 不逆情以干譽하나니라
朋黨論
 
 
歐陽脩
 
臣聞朋黨之說이 自古有之하니 惟幸人君이 辨其君子小人而已라 大凡君子는 與君子로 以同道爲朋하고 小人은 與小人으로 以同利爲朋하나니 此自然之理也라 然이나 臣謂小人無朋이요 惟君子則有之라하노니 其故何哉오
小人은 所好者利祿也요 所貪者財貨也니 當其同利之時하여 暫相黨引以爲朋者는 僞也라 及其見利而爭先하고 或利盡而交疎하여는 甚者反相賊害하여 雖其兄弟親戚이라도 不能相保라 故로 臣謂小人無朋이요 其暫爲朋者는 僞也라하노이다
君子則不然하여 所守者道義요 所行者忠信이요 所惜者名節이라 以之修身이면 則同道而相益하고 以之事國이면 則同心而共濟하여 終始如一하니 此君子之朋也라 故로 爲人君者는 但當退小人之僞朋하고 用君子之眞朋이면 則天下治矣리이다
堯之時에 小人共工驩兜等四人이 爲一朋하고 君子八元八愷十六人이 爲一朋이어늘 舜佐堯하사 退四凶小人之朋하시고 而進元愷君子之朋하시니 堯之天下大治하고 及舜自爲天子하여는 而皐夔稷契等二十二人이 並列于朝하여 更相稱美하며 更相推讓하여 凡二十二人이 爲一朋이어늘 而舜皆用之하사 天下亦大治하니이다
書曰 紂有臣億萬호되 惟億萬心이어니와 周有臣三千하니 惟一心이라하니 紂之時에 億萬人이 各異心하니 可謂不爲朋矣로되 然紂以此亡國하고 周武王之臣은 三千人이 爲一大朋이로되 而周用以興하니이다
後漢獻帝時에 盡取天下名士하여 囚禁之하고 目爲黨人이러니 及黃巾賊起하여 漢室大亂일새 後方悔悟하여 盡解黨人而釋之나 然已無救矣요 唐之晩年에 漸起朋黨之論이러니 及昭宗時에 盡殺朝之名士하여 或投之黃河曰 此輩는 淸流라 可投濁流라하니 而唐遂亡矣니이다
夫前世之主 能使人人異心하여 不爲朋이 莫如紂요 能禁絶善人爲朋이 莫如漢獻帝요 能誅戮淸流之朋이 莫如唐昭宗之世나 然皆亂亡其國하고 更相稱美推讓而不自疑가 莫如舜之二十二人이요 舜亦不疑而皆用之나 然而後世에 不誚舜爲二十二人朋黨所欺하고 而稱舜爲聰明之聖者는 以其能辨君子與小人也라 周武之世에 擧其國之臣三千人이 共爲一朋하니 自古爲朋之多且大가 莫如周나 然周用此以興者는 善人雖多而不厭也일새니 夫興亡治亂之迹을 爲人君者 可以鑑矣니이다
族譜序
 
蘇洵(明允)
蘇氏族譜는 譜蘇氏之族也라 蘇氏出於高陽하여 而蔓延於天下라 唐神堯初에 長史味道刺眉州라가 卒于官하고 一子留于眉하니 眉之有蘇氏는 自此始而譜不及者는 親盡也일새라 親盡則曷爲不及고 譜爲親作也니라 凡子得書而孫不得書者는 何也오 著代也니라 自吾之父로 以至吾之高祖는 仕不仕 娶某氏 享年幾 某日卒을 皆書하고 而它不書者는 何也오 詳吾之所自出也니라 自吾之父로 以至吾之高祖는 皆曰諱某하고 而它則遂名之는 何也오 尊吾之所自出也니라 譜爲蘇氏作이어늘 而獨吾之所自出을 得詳與尊은 何也오 譜吾作也일새니라 嗚呼라 觀吾之譜者는 孝悌之心이 可以油然而生矣리라 情見于親하고 親見于服하며 服始于衰하여 而至于緦麻하고 而至于無服하니 無服則親盡하고 親盡則情盡하고 情盡則喜不慶, 憂不弔하나니 喜不慶, 憂不弔면 則塗人也라 吾所與相視如塗人者 其初는 兄弟也요 兄弟其初는 一人之身也니 悲夫라 一人之身이 分而至於塗人하니 吾譜之所以作也니라 其意曰 分而至於塗人者는 勢也니 勢는 吾無如之何也니 幸其未至於塗人也에 使其無致於忽忘焉이 可也니라 嗚呼라 觀吾之譜者는 孝悌之心이 可以油然而生矣리라 系之以詩하니 曰 吾父之子가 今爲吾兄이니 吾疾在身이면 兄呻不寧이라 數世之後엔 不知何人하여 彼死而生에 不爲戚欣이라 兄弟之情이 如足如手어늘 其能幾何오 彼不相能은 彼獨何心고
張益州畵像記
 
 
蘇洵
 
至和元年秋에 蜀人傳言하되 有寇至邊이라 邊軍夜呼하니 野無居人하고 妖言流聞하니 京師震驚이라 方命擇帥할새 天子曰 毋養亂하며 毋助變하라 衆言朋興이나 朕志自定호라 外亂不作이라도 變且中起니 旣不可以文令이요 又不可以武競이라 惟朕一二大吏에 孰能爲處玆文武之間고 其命往撫朕師하리라 乃惟曰 張公方平이 其人이니이다 天子曰 然하다 公以親辭하되 不可라 遂行하여 冬十一月에 至蜀하니 至之日에 歸屯軍, 撤守備하고 使謂郡縣하되 寇來在吾하니 無以勞苦하라 明年正月朔旦에 蜀人이 相慶如它日하여 遂以無事라 又明年正月에 相告留公像于淨衆寺하니 公不能禁이라
眉陽蘇洵이 言于衆曰 未亂도 易治也요 旣亂도 易治也어니와 有亂之萌하고 無亂之形이 是謂將亂이니 將亂은 難治하니 不可以有亂急이요 亦不可以無亂弛라 惟是元年之秋는 如器之欹未墜於地어늘 惟爾張公이 安坐於旁하여 其顔色不變하고 徐起而正之하며 旣正에 油然而退하여 無矜容이라 爲天子牧小民不倦은 惟爾張公이라 爾繄以生하니 惟爾父母니라
且公嘗爲我言하되 民無常性하여 惟上所待라 人皆曰 蜀人多變이라하여 於是에 待之以待盜賊之意하고 而繩之以繩盜賊之法하여 重足屛息之民을 而以碪斧令이라 於是에 民始忍以其父母妻子之所仰賴之身으로 而棄之於盜賊이라 故로 每每大亂하나니 夫約之以禮하고 驅之以法은 惟蜀人爲易요 至於急之而生變은 雖齊魯亦然이라 吾以齊魯待蜀人이러니 而蜀人亦自以齊魯之人待其身이라 若夫肆意於法律之外하여 以威劫齊民은 吾不忍爲也로라하니 嗚呼라 愛蜀人之深하고 待蜀人之厚를 自公而前으론 吾未始見也로라 皆再拜稽首曰 然하다
蘇洵이 又曰 公之恩이 在爾心하니 爾死면 在爾子孫이요 其功業이 在史官하니 無以像爲也라 且公意不欲하니 如何오 皆曰 公則何事於斯리오 雖然이나 於我心에 有不釋焉이라 今夫平居에 聞一善이면 必問其人之姓名과 與其鄕里之所在하여 以至於其長短大小美惡之狀하고 甚者는 或詰其平生所嗜好하여 以想見其爲人하고 而史官亦書之於其傳하나니 意使天下之人으로 思之於心이면 則存之於目이니 存之於目이라 故로 其思之於心也固하니 由此觀之컨대 像亦不爲無助니라 蘇洵無以詰하여 遂爲之記하노라 公은 南京人이니 爲人이 慷慨有大節하고 以度量雄天下하니 天下有大事면 公可屬이니라 系之以詩하니 曰
 
天子在祚하신 歲在甲午에 西人傳言하되 有寇在垣이라
庭有武臣하고 謀夫如雲이어늘 天子曰嘻라하시고 命我張公이삿다
公來自東하니 旗纛舒舒라 西人聚觀하니 于巷于塗로다
謂公曁曁러니 公來于于로다 公謂西人호되 安爾室家하여 無或敢訛하라
訛言不祥이니 往卽爾常하여 春爾條桑하고 秋爾滌場하라
西人稽首하되 公我父兄이로다 公在西囿하니 草木騈騈이요
公宴其僚하니 伐鼓淵淵이라 西人來觀하고 祝公萬年이로다
有女娟娟하니 閨闥閑閑하고 有童哇哇하니 亦旣能言이라
昔公未來엔 期汝棄捐이러니라 禾麻芃芃하고 倉庾崇崇하니 嗟我婦子아 樂此歲豊이어다
公在朝廷이면 天子股肱이라 天子曰歸하시니 公敢不承이리오
作堂嚴嚴하니 有廡有庭이라 公像在中하니 朝服冠纓이라
西人相告하되 無敢逸荒하라 公歸京師나 公像在堂이니라
管仲論
 
 
蘇洵
 
管仲이 相威公하여 霸諸侯하고 攘夷狄하여 終其身토록 齊國富强하여 諸侯不敢叛이러니 管仲死에 竪刁 易牙 開方이 用하여 威公薨於亂하고 五公子爭立하여 其禍蔓延하여 訖簡公히 齊無寧歲하니라 夫功之成이 非成於成之日이라 蓋必有所由起하고 禍之作이 不作於作之日이라 亦必有所由兆하니 則齊之治也를 吾不曰管仲而曰鮑叔이요 及其亂也를 吾不曰竪刁 易牙 開方而曰管仲이라하노라
何則고 竪刁 易牙 開方三子는 彼固亂人國者어니와 顧其用之者 威公也라 夫有舜而後에 知放四凶하고 有仲尼而後에 知去少正卯하나니 彼威公은 何人也오 顧其使威公으로 得用三子者 管仲也라
仲之疾也에 公問之相하니 當是時也하여 吾以仲且擧天下之賢者以對러니 而其言이 乃不過曰 竪刁 易牙 開方三子는 非人情이니 不可近而已라하니 嗚呼라 仲以爲威公이 果能不用三子矣乎아 仲與威公處幾年矣니 亦知威公之爲人矣乎인저 威公이 聲不絶乎耳하며 色不絶於目이로되 而非三子者면 則無以遂其欲이니 彼其初之所以不用者는 徒以有仲焉耳라 一日無仲이면 則三子者 可以彈冠而相慶矣리니 仲以爲將死之言이 可以縶威公之手足耶아
夫齊國은 不患有三子요 而患無仲이니 有仲則三子者는 三匹夫耳라 不然이면 天下에 豈少三子之徒리오 雖威公이 幸而聽仲하여 誅此三人이라도 而其餘者를 仲能悉數而去之耶아 嗚呼라 仲은 可謂不知本者矣로다 因威公之問하여 擧天下之賢者以自代런들 則仲雖死나 而齊國未爲無仲也니 夫何患三子者리오 不言이라도 可也라
五覇莫盛於威文하니 文公之才 不過威公이요 其臣이 又皆不及仲이요 靈公之虐이 不如孝公之寬厚언마는 文公死에 諸侯不敢叛晉하고 晉襲文公之餘威하여 猶得爲諸侯之盟主百餘年하니 何者오 其君雖不肖나 而尙有老成人焉일새라
威公之死也에 一亂塗地는 無惑也니 彼獨恃一管仲이라가 而仲則死矣라 夫天下에 未嘗無賢者하니 蓋有有臣而無君者矣어니와 威公在焉而曰天下不復有管仲者는 吾不信也로라
仲之書에 有記其將死에 論鮑叔賓胥無之爲人하고 且各疏其短하니 是其心에 以爲是數子者는 皆不足而托國이요 而又逆知其將死하니 則其書誕謾不足信也라 吾觀史鰌以不能進蘧伯玉而退彌子瑕라 故로 有身後之諫하고 蕭何且死에 擧曹參以自代하니 大臣之用心이 固宜如此也니라 一國이 以一人興하고 以一人亡하나니 賢者는 不悲其身之死하고 而憂其國之衰라 故로 必復有賢者而後에 有以死하나니 彼管仲은 何以死哉오
木假山記
 
 
蘇洵
 
木之生이 或蘖而殤하고 或拱而夭하며 幸而至於任爲棟樑則伐하고 不幸而爲風之所拔 水之所漂하여 或破折 或腐하고 幸而得不破折 不腐하면 則爲人之所材하여 而有斧斤之患하나니 其最幸者는 漂沈汨沒於湍沙之間이 不知其幾百年이요 而其激射齧食之餘가 或髣髴於山者면 則爲好事者取去하여 强之以爲山하나니 然後可以脫泥沙而遠斧斤이로되 而荒江之濱에 如此者幾何며 不爲好事者所見이오 而爲樵夫野人所薪者 何可勝數리오 則其最幸者之中에 又有不幸者焉이라
 
予家에 有三峰하니 予每思之하면 則疑其有數存乎其間이라 且其蘖而不殤하고 拱而不夭하며 任爲棟樑而不伐하고 風拔水漂而不破折 不腐하며 不破折 不腐而不爲人所材以及於斧斤하고 出於湍沙之間而不爲樵夫野人之所薪而後에 得至乎此하니 則其理似不偶然也라 然이나 予之愛之는 則非徒愛其似山이라 而又有所感焉이요 非徒感之라 而又有所敬焉이로라 予見中峰이 魁岸踞肆하고 意氣端重하여 若有以服其旁之二峰이요 二峰者 莊栗刻削하여 凜乎不可犯하니 雖其勢服於中峰이나 而岌然決無阿附意하니 吁其可敬也夫인저 其可以有所感也夫인저

高祖論
 
 
蘇洵
 
漢高祖挾數用術하여 以制一時之利害는 不如陳平하고 揣摩天下之勢하여 擧指搖目하여 以劫制項羽는 不如張良하니 微此二人이면 則天下不歸漢이요 而高帝는 乃木彊之人而止耳라 然이나 天下已定에 後世子孫之計는 陳平張良智之所不及을 則高帝常先爲之規畫處置하여 使夫後世之所爲로 曉然如目見其事而爲之者하니 蓋高帝之智 明於大而暗於小를 至於此而後見也라
帝常語呂后曰 周勃은 重厚少文이나 然安劉氏者는 必勃也니 可令爲太尉라하니 方是時하여 劉氏旣安矣니 勃又將誰安耶아 故로 吾之意는 曰 高帝之以太尉屬勃也는 知有呂氏之禍也니라
雖然이나 其不去呂后는 何也오 勢不可也라 昔者에 武王沒에 成王幼而三監叛하니 帝意百歲後에 將相大臣及諸侯王이 有如武庚祿父而無有以制之也일새 獨計以爲家有主母면 而豪奴悍婢가 不敢與弱子抗하나니 呂氏佐帝定天下하여 爲諸侯大臣素所畏服하니 獨此可以鎭壓其邪心하여 以待嗣子之壯이라 故로 不去呂后者는 爲惠帝計也니라
呂后를 旣不可去라 故로 削其黨하여 以損其權하여 使雖有變이라도 而天下不搖라 是故로 以樊噲之功으로 一旦에 遂欲斬之而無疑하니 嗚呼라 彼獨於噲不仁耶아 且噲與帝偕起하여 拔城陷陣하여 功不爲少요 方亞父嗾項莊時하여 微噲譙羽런들 則漢之爲漢을 未可知也라 一旦에 人有惡噲하여 欲滅戚氏者라하니 時에 噲出伐燕이어늘 立命平勃하여 卽軍中斬之하니 夫噲之罪未形也요 惡之者誠僞를 未必也요 且帝之不以一女子로 斬天下功臣이 亦明矣라 彼其娶於呂氏하니 呂氏之族에 若産祿輩는 皆庸才라 不足恤이요 獨噲豪健하여 諸將所不能制니 後世之患이 無大於此矣라
夫高帝之視呂后는 猶醫者之視菫也하여 使其毒으로 可使治病이요 而無至於殺人而已라 噲死則呂氏之毒이 將不至於殺人이니 高帝以爲是足以死而無憂矣어늘 彼平勃者는 遺其憂者也로다 噲之死於惠帝之六年은 天也니 使之尙在런들 則呂祿不可紿요 太尉不得入北軍矣리라
或謂噲於帝最親하니 使之尙在라도 未必與産祿叛이라하니 夫韓信 黥布 盧綰이 皆南面稱孤하고 而綰又最爲親幸이나 然及高帝之未崩也하여 皆相繼以逆誅하니 誰謂百歲之後에 椎埋屠狗之人이 見其親戚得爲帝王하고 而不欣然從之耶아 吾故曰 彼平勃者는 遺其憂者也라하노라
 
上歐陽內翰書
 
 
蘇洵
 
洵이 布衣窮居하여 常竊自歎하여 以爲天下之人이 不能皆賢이요 不能皆不肖라 是以로 賢人君子之處於世에 合必離하고 離必合하나니라
往者에 天子方有意於治하실새 而范公이 在相府하고 富公이 在樞密하고 執事與余公蔡公이 爲諫官하고 尹公이 馳騁上下하여 用力於兵革之地하니 方是之時하여 天下之人이 毛髮絲粟之才 紛紛而起하여 合以爲一이어늘 而洵也自度其愚魯無用之身이 不足以自奮於其間일새 退而養其心하여 幸其道之將成이어든 而可以復見於當世之賢人君子러라
不幸道未成에 而范公西하고 富公北하고 執事與余公蔡公이 分散四出하고 而尹公이 亦失勢奔走於小官이라 洵이 時在京師하여 親見其事하고 忽忽仰天歎息하여 以爲斯人之去하니 而道雖成이나 不復足以爲榮也러라
旣復自思念하니 往者衆君子之進於朝에 其始也 必有善人焉推之하니 今也에 亦必有小人焉間之라 今世에 無復有善人也인댄 則已矣어니와 如其不然也인댄 吾何憂焉이리오 姑養其心하여 使其道大有成而待之가 何傷이리오
退而處十年에 雖未敢自謂其道有成矣나 然浩浩乎其胸中이 若與曩者異요 而余公이 適亦有成功於南方하고 執事與蔡公이 復相繼登於朝하고 富公이 復自外入爲宰相하여 其勢將復合于一이라 喜且自賀하여 以爲道旣已粗成하니 而果將有以發之也라호라
旣又反而思其向之所慕望愛悅之而不得見之者하니 蓋有六人焉이라 今將往見之矣로되 而六人者에 已有范公尹公二人亡焉하니 則又爲之潸焉出涕以悲로라 嗚呼라 二人者는 不可復見矣어니와 而所恃以慰此心者 猶有四人也일새 則又以自解하고 思其止於四人也일새 則又汲汲欲一識其面하여 以發其心之所欲言이로되 而富公은 又爲天子之宰相하니 遠方寒士가 未可遽以言通於其前이요 而余公蔡公은 遠者는 又在萬里外하고 獨執事在朝廷間이요 而其位差不甚貴하니 可以叫呼攀援而聞之以言이로되 而飢寒衰老之病이 又痼而留之하여 使不克自至於執事之庭이로라 夫以慕望愛悅其人之心으로 十年而不得見하여 而其人已死 如范公尹公二人者하니 則四人者之中에 非其勢不可遽以言通者면 何可以不能自往而遽已也리오
執事之文章을 天下之人이 莫不知之나 然竊以爲洵之知之也特深하여 愈於天下之人이라호라 何者오 孟子之文은 語約而意深하여 不爲巉刻斬截之言이로되 而其鋒不可犯이요 韓子之文은 如長江大河가 渾浩流轉하여 魚黿蛟龍이 萬怪惶惑이어늘 而抑遏蔽掩하여 不使自露로되 而人望見其淵然之光과 蒼然之色하고 亦自畏避하여 不敢迫視하고 執事之文은 紆餘委備하여 往復百折이로되 而條達疏暢하여 無所間斷하고 氣盡語極하여 急言竭論이로되 而容與閑易하여 無艱難辛苦之態하니 此三者는 皆斷然自爲一家之文也라
惟李翶之文은 其味黯然而長하고 其光油然而幽하여 俯仰揖遜하여 有執事之態하고 陸贄之文은 遣言措意가 切近的當하여 有執事之實이로되 而執事之才 又自有過人者하니 蓋執事之文은 非孟子韓子之文이요 而歐陽子之文也라
夫樂道人之善而不爲諂者는 以其人誠足以當之也일새라 彼不知者는 則以爲譽人以求其悅己也라하리니 夫譽人以求其悅己는 洵亦不爲也로되 而其所以道執事光明盛大之德而不自知止者는 亦欲執事之知其知我也라
 
雖然이나 執事之名은 滿於天下하니 雖不見其文이라도 而固已知有歐陽子矣어니와 而洵也는 不幸墮在草野泥塗之中하고 而其知道之心이 又近已粗成하니 欲徒手奉咫尺之書하여 自託於執事나 將使執事로 何從而知之며 何從而信之哉아
洵은 少年不學하고 生二十五歲에 始知讀書하여 從士君子游하니 年旣已晩이요 而又不遂刻意厲行하여 以古人自期하고 而視與己同列者에 皆不勝己일새 則遂以爲可矣러니 其後困益甚하여 復取古人之文而讀之하니 始覺其出言用意與己大異라 時復內顧하여 自思其才하니 則又似夫不遂止於是而已者라
由是로 盡燒其曩時所爲文數百篇하고 取論語孟子韓子及其他聖人賢人之文하여 而兀然端坐하여 終日以讀之者 七八年矣라
方其始也에 入其中而惶然以惑하고 博觀於其外而駭然以驚이러니 及其久也에 讀之益精하니 而其胸中이 豁然而明하여 若人之言이 固當然者라 然猶未敢自出其言也러니 時旣久에 胸中之言이 日益多하여 不能自制일새 試出而書之하고 已而再三讀之하니 渾渾乎覺其來之易也라 然猶未敢自以爲是也로라 近所爲洪範論史論凡七篇을 執事觀其如何하라
噫嘻라 區區而自言을 不知者는 又將以爲自譽以求人之知己也라하리라 惟執事는 思其十年之心이 如是之不偶然也而察之하라 不宣하노라 洵再拜하노라

上田樞密書
 
 
蘇洵
 
天之所以與我者가 夫豈偶然哉아 堯不得以與丹朱하시고 舜不得以與商均하시고 而瞽瞍不得奪諸舜하니 發於其心하여 出於其言하며 見於其事하여 確乎其不可易也라 聖人이 不得以與人하시고 父不得奪諸其子하니 於此에 見天之所以與我者 不偶然也라
夫其所以與我者는 必有以用我也니 我知之로되 不得行之하고 不以告人이면 天固用之어늘 我實置之니 其名曰棄天이요 自卑以求幸其言하고 自小以求用其道하면 天之所以與我者何如완대 而我如此也오 其名曰褻天이니 棄天도 我之罪也며 褻天도 亦我之罪也요 不棄不褻而人不我用은 不我用之罪也니 其名曰逆天이라
然則棄天褻天者는 其責이 在我하고 逆天者는 其責이 在人하나니 在我者는 吾將盡吾力之所能爲者하여 以塞夫天之所以與我之意하고 而求免夫天下後世之譏어니와 在人者를 吾何知焉이리오 吾求免夫一身之責之不暇어니 而暇爲人憂乎哉아
孔子孟軻之不遇에 老於道途하시되 而不倦, 不慍, 不怍, 不沮者는 夫固知夫責之所在也시니라 衛靈, 魯哀, 齊宣, 梁惠之徒가 不足相與以有爲也를 我亦知之矣로되 抑將盡吾心焉耳니 吾心之不盡이면 吾恐天下後世無以責夫衛靈魯哀齊宣梁惠之徒요 而彼亦將有以辭其責也리니 然則孔子孟軻之目이 將不瞑於地下矣시리라
夫聖人賢人之用心也 固如此하니 如此而生하고 如此而死하며 如此而貧賤하고 如此而富貴요 升而爲天하고 沈而爲淵하며 流而爲川하고 止而爲山은 彼不預吾事니 吾事畢矣라 竊怪夫後之賢者 不能自處其身也하여 飢寒窮困之不勝而號於人하니 嗚呼라 使吾誠死於飢寒困窮耶인댄 則天下後世之責이 將必有在리니 彼其身之責을 不自任以爲憂어늘 而我取而加之吾身이면 不亦過乎아
今洵之不肖가 何敢亦自列於聖賢이리오마는 然其心은 有所甚不自輕者로라 何則고 天下之學者가 孰不欲一蹴而造聖人之域이리오 然及其不成也엔 求一言之幾乎道나 而不可得也라 千金之子는 可以貧人이요 可以富人이로되 非天之所與면 雖以貧人富人之權으로도 求一言之幾乎道나 不可得也며 天子之宰相은 可以生人이요 可以殺人이로되 非天之所與면 雖以生人殺人之權으로도 求一言之幾乎道나 不可得也라
今洵이 用力於聖人賢人之術이 亦已久矣라 其言語와 其文章이 雖不識其果可以有用於今而傳於後與否나 獨怪夫得之之不勞하여 方其致思於心也에 若或起之하며 得之心而書之紙也에 若或相之하니 夫豈無一言之幾於道者乎아 千金之子와 天子之宰相이 求而不得者를 一旦在己라 故로 其心得以自負하니 或者天其亦有以與我也로다
曩者에 見執事於益州하니 當時之文이 淺狹可笑라 飢寒窮困이 亂其心하고 而聲律記問이 又從而破壞其體하여 不足觀也已러니 數年來로 退居山野하여 自分永棄하여 與世俗日疎闊일새 得以大肆其力於文章하여 詩人之優遊와 騷人之淸深과 孟韓之溫醇과 遷固之雄剛과 孫吳之簡切을 投之所向에 無不如意라
嘗試以爲董生은 得聖人之經이나 其失也流而爲迂하고 鼂錯는 得聖人之權이나 其失也流而爲詐하니 有二子之才而不流者는 其惟賈生乎인저 惜乎라 今之世에 愚未見其人也로라
作策二道하니 曰 審勢審敵이요 作書十篇하니 曰 權書라 洵有山田一頃하니 非凶歲면 可以無飢요 力耕而節用이면 亦足以自老하니 不肖之身은 不足惜이로되 而天之所與者를 不忍棄요 且不敢褻也라 執事之名이 滿天下하니 天下之士의 用與不用이 在執事라 故로 敢以所謂策二道 權書十篇으로 爲獻하노라 平生之文을 遠不可多致요 有洪範論史論十篇하여 近以獻內翰歐陽公하니 度執事與之朝夕相從하여 議天下之事하리니 則斯文也其亦庶乎得陳於前矣리라 若夫言之可用과 與其身之可貴與否者는 執事事也요 執事責也니 於洵에 何有哉리오

名二子說
 
 
蘇洵
 
輪輻蓋軫이 皆有職乎車로되 而軾은 獨若無所爲者라 雖然이나 去軾則吾未見其爲完車也로니 軾乎아 吾懼汝之不外飾也하노라 天下之車 莫不由轍이로되 而言車之功에 轍不與焉이라 雖然이나 車仆馬斃라도 而患不及轍하나니 是轍者는 禍福之間이니 轍乎아 吾知免矣로라
潮州韓文公廟碑
 
蘇軾(子瞻)
匹夫而爲百世師하고 一言而爲天下法은 是皆有以參天地之化하고 關盛衰之運하여 其生也有自來하고 其逝也有所爲라 故로 申呂自嶽降하고 傅說爲列星하니 古今所傳을 不可誣也라 孟子曰 我善養吾浩然之氣라하시니 是氣也가 寓於尋常之中하고 而塞乎天地之間하여 卒然遇之에 王公失其貴하고 晉楚失其富하며 良平失其智하고 賁育失其勇하며 儀秦失其辯하나니 是孰使之然哉오 其必有不依形而立하고 不恃力而行하며 不待生而存하고 不隨死而亡者矣라 故로 在天에 爲星辰하고 在地에 爲河嶽하고 幽則爲鬼神하고 而明則復爲人하나니 此理之常이니 無足怪者니라
自東漢以來로 道喪文弊하여 異端竝起하니 歷唐貞觀開元之盛하여 輔以房杜姚宋이로되 而不能救러니 獨韓文公이 起布衣하여 談笑而麾之하니 天下靡然從公하여 復歸于正이 蓋三百年於此矣라 文起八代之衰하고 而道濟天下之溺하며 忠犯人主之怒하고 而勇奪三軍之帥하니 此豈非參天地 關盛衰하여 浩然而獨存者乎아
蓋嘗論天人之辨하여 以謂人無所不至로되 惟天은 不容僞라 智可以欺王公이로되 不可以欺豚魚요 力可以得天下로되 不可以得匹夫匹婦之心이라 故로 公之精誠이 能開衡山之雲이로되 而不能回憲宗之惑하고 能馴鰐魚之暴로되 而不能弭皇甫鎛 李逢吉之謗하고 能信於南海之民하여 廟食百世로되 而不能使其身一日安於朝廷之上하니 蓋公之所能者는 天也요 其所不能者는 人也라
始潮人이 未知學이러니 公命進士趙德하여 爲之師하니 自是로 潮之士가 皆篤於文行하여 延及齊民하여 至于今號稱易治하니 信乎라 孔子之言曰 君子學道則愛人이요 小人學道則易使也여 潮人之事公也에 飮食에 必祭하며 水旱疾疫凡有求에 必禱焉하되 而廟在刺史公堂之後하여 民以出入爲艱이라 前守欲請諸朝하여 作新廟라가 不果러니 元祐五年에 朝散郞王君滌이 來守是邦할새 凡所以養士治民者를 一以公爲師하니 民旣悅服이라 則出令曰 願新公廟者면 聽이라하니 民讙趨之하여 卜地於州城之南七里하여 朞年而廟成하니라
或曰 公去國萬里而謫于潮하여 不能一歲而歸하니 沒而有知면 其不眷戀于潮也審矣라하니 軾曰 不然하다 公之神在天下者 如水之在地中하여 無所往而不在也어늘 而潮人이 獨信之深 思之至하여 焄蒿悽愴하여 若或見之하니 譬如鑿井得泉而曰水專在是라하면 豈理也哉리오
元豊元年에 詔封公昌黎伯이라 故로 榜曰 昌黎伯韓文公之廟라하니라 潮人이 請書其事于石하니 因爲作詩以遺之하여 使歌以祀公하노라 其辭曰 公昔騎龍白雲鄕하여 手抉雲漢分天章하니 天孫爲織雲錦裳이라 飄然乘風來帝旁하니 下與濁世掃粃糠이라 西游咸池略扶桑하니 草木衣被昭回光이라 追逐李杜參翶翔하니 汗流籍湜走且僵하여 滅沒倒景不得望이라 作書詆佛譏君王하니 要觀南海窺衡湘하고 歷舜九疑弔英皇이라 祝融先驅海若藏하니 約束鮫鰐如驅羊이라 鈞天無人帝悲傷하니 謳吟下招遣巫陽이라 犦牲鷄卜羞我觴하니 於粲荔丹與蕉黃이라 公不少留我涕滂하니 翩然被髮下大荒이라
前赤壁賦
 
 
蘇軾
 
壬戌之秋七月旣望에 蘇子與客泛舟하여 遊於赤壁之下하니 淸風은 徐來하고 水波는 不興이라 擧酒屬客하여 誦明月之詩하고 歌窈窕之章이러니 少焉에 月出於東山之上하여 徘徊於斗牛之間하니 白露는 橫江하고 水光은 接天이라 縱一葦之所如하여 凌萬頃之茫然하니 浩浩乎如憑虛御風而不知其所止하고 飄飄乎如遺世獨立하여 羽化而登仙이라 於是에 飮酒樂甚하여 扣舷而歌之하니 歌曰 桂棹兮蘭漿으로 擊空明兮泝流光이로다 渺渺兮余懷여 望美人兮天一方이로다
客有吹洞簫者하여 倚歌而和之하니 其聲이 嗚嗚然하여 如怨如慕하며 如泣如訴하고 餘音嫋嫋하여 不絶如縷하니 舞幽壑之潛蛟하고 泣孤舟之嫠婦라 蘇子愀然正襟危坐而問客曰 何爲其然也오 客曰 月明星稀에 烏鵲南飛는 此非曹孟德之詩乎아 西望夏口하고 東望武昌이라 山川相繆하여 鬱乎蒼蒼하니 此非孟德之困於周郞者乎아 方其破荊州 下江陵하여 順流而東也에 舳艫千里요 旌旗蔽空이라 釃酒臨江하고 橫槊賦詩하니 固一世之雄也러니 而今安在哉오 況吾與子는 漁樵於江渚之上하여 侶魚鰕而友麋鹿이라 駕一葉之扁舟하여 擧匏樽以相屬하니 寄蜉蝣於天地요 渺滄海之一粟이라 哀吾生之須臾하고 羨長江之無窮이라 挾飛仙以遨遊하며 抱明月而長終이나 知不可乎驟得일새 託遺響於悲風하노라
蘇子曰 客亦知夫水與月乎아 逝者如斯로되 而未嘗往也며 盈虛者如彼로되 而卒莫消長也니 蓋將自其變者而觀之면 則天地曾不能以一瞬이요 自其不變者而觀之면 則物與我皆無盡也니 而又何羨乎리오 且夫天地之間에 物各有主하니 苟非吾之所有인댄 雖一毫而莫取어니와 惟江上之淸風과 與山間之明月은 耳得之而爲聲하고 目寓之而成色하여 取之無禁하고 用之不竭하니 是는 造物者之無盡藏也요 而吾與子之所共樂이니라 客이 喜而笑하고 洗盞更酌하니 肴核이 旣盡이요 盃盤이 狼藉라 相與枕藉乎舟中하여 不知東方之旣白이러라
 
後赤壁賦
 
蘇軾
是歲十月之望에 步自雪堂하여 將歸于臨皐할새 二客이 從予라 過黃泥之坂하니 霜露旣降하고 木葉盡脫이라 人影在地어늘 仰見明月이라 顧而樂之하여 行歌相答이러니 已而요 歎曰 有客無酒요 有酒無肴로다 月白風淸하니 如此良夜何오 客曰 今者薄暮에 擧網得魚하니 巨口細鱗이 狀如松江之鱸라 顧安所得酒乎아 歸而謀諸婦하니 婦曰 我有斗酒하여 藏之久矣라 以待子不時之需로라
於是에 携酒與魚하고 復遊於赤壁之下하니 江流有聲하고 斷岸千尺이라 山高月小하고 水落石出하니 曾日月之幾何완대 而江山을 不可復識矣라 予乃攝衣而上하여 履巉巖하고 披蒙茸하여 踞虎豹하고 登虯龍하여 攀棲鶻之危巢하고 俯馮夷之幽宮하니 蓋二客之不能從焉이라 劃然長嘯하니 草木震動이라 山鳴谷應하고 風起水涌하니 予亦悄然而悲하고 肅然而恐하여 凜乎其不可留也라 反而登舟하여 放乎中流하여 聽其所止而休焉이러니 時夜將半에 四顧寂寥러니 適有孤鶴이 橫江東來하니 翅如車輪이요 玄裳縞衣로 戞然長鳴하여 掠予舟而西也러라
須臾에 客去하고 予亦就睡러니 夢에 一道士羽衣翩躚하여 過臨皐之下라가 揖予而言曰 赤壁之遊樂乎아 問其姓名하니 俛而不答이라 嗚呼噫嘻라 我知之矣로라 疇昔之夜에 飛鳴而過我者가 非子也耶아 道士顧笑하고 予亦驚悟하여 開戶視之하니 不見其處러라
祭歐陽公文
 
 
蘇軾
 
嗚乎哀哉라 公之生於世 六十有六年이라 民有父母하고 國有蓍龜하며 斯文有傳하고 學者有師하며 君子有所恃而不恐하고 小人有所畏而不爲하니 譬如大川喬嶽이 雖不見其運動이나 而功利之及於物者를 蓋不可數計而周知라 今公之沒也에 赤子無所仰庇하고 朝廷無所稽疑하며 斯文化爲異端하고 學者至於用夷하며 君子以爲無與爲善하고 而小人沛然自以爲得時하니 譬如深山大澤에 龍亡而虎逝면 則變怪百出하여 舞鰌鱔而號狐狸라
公之未用也엔 天下以爲病하고 而其旣用也엔 則又以爲遲하고 及其釋位而去也엔 莫不冀其復用하고 至於請老而歸也엔 莫不悵然失望이로되 而猶庶幾於萬一者는 幸公之未衰러니 孰謂公無復有意於斯世也하여 奄一去而莫予追오 豈厭世之溷濁하여 潔身而逝乎아 將民之無祿하여 而天莫之遺아 昔我先君이 懷寶遯世에 非公則莫能致요 而不肖無狀이 夤緣出入하여 受敎門下者 十有六年於斯라 聞公之喪에 義當匍匐往弔어늘 而懷祿不去하니 愧古人以恧怩라 緘辭千里하여 以寓一哀而已니 蓋上以爲天下慟이요 而下以哭吾私니이다
六一居士集序
 
 
蘇軾
 
夫言有大而非誇하니 達者는 信之하고 衆人은 疑焉하나니라 孔子曰 天之將喪斯文也인댄 後死者不得與於斯文也라하시고 孟子曰 禹抑洪水하시고 孔子作春秋하시고 而余距楊墨이라하시니 蓋以是配禹也라 文章之得喪이 何與於天이완대 而禹之功이 與天地竝이어늘 孔子孟子以空言配之하시니 不已誇乎아
自春秋作而亂臣賊子懼하고 孟子之言行에 而楊墨之道廢하니 天下以爲是固然이요 而不知大其功이러니 孟子旣沒에 有申商韓非之學이 違道而趨利하고 殘民以厚生하여 其說이 至陋也어늘 而士以是로 罔其上이어든 上之人이 僥倖一切之功하여 靡然從之호되 而世無大人先生如孔子孟子者하여 推其本末하고 權其禍福之輕重하여 以救其惑이라 故로 其學이 遂行하여 秦以是喪天下하고 陵夷至於勝廣劉項之禍 死者十八九라 天下蕭然하니 洪水之患이 蓋不至此也라 方秦之未得志也에 使復有一孟子런들 則申韓爲空言이니 作於其心하여 害於其事하며 作於其事하여 害於其政者가 必不至若是烈也리라 使楊墨得志於天下런들 其禍豈減於申韓哉리오 由此言之컨대 雖以孟子配禹라도 可也니라
太史公曰 蓋公은 言黃老하고 賈誼晁錯는 明申韓이라하니 錯는 不足道也어니와 而誼亦爲之하니 余以是로 知邪說之移人이 雖豪傑之士라도 有不免者하니 況衆人乎아 自漢以來로 道術이 不出於孔氏하여 而亂天下者多矣라 晉以老莊亡하고 梁以佛亡하되 莫或正之러니 五百餘年而後에 得韓愈하니 學者以愈配孟子하니 或庶幾焉이라
愈之後三百有餘年而後에 得歐陽子하니 其學이 推韓愈孟子하여 以達於孔氏하고 著禮樂仁義之實하여 以合於大道라 其言이 簡而明하고 信而通하여 引物連類하여 折之於至理하여 以服人心이라 故로 天下翕然師尊之라 自歐陽子之存으로 世之不悅者가 譁而攻之하여 能折困其身이로되 而不能屈其言이라 士無賢不肖히 不謀而同曰 歐陽子는 今之韓愈也라하나니라
宋興七十餘年에 民不知兵하고 富而敎之하여 至天聖景祐에 極矣로되 而斯文이 終有愧於古하고 士亦因陋守舊하여 論卑而氣弱이러니 自歐陽子出로 天下爭自濯磨하여 以通經學古爲高하고 以救時行道爲賢하고 以犯顔敢諫爲忠하여 長育成就하여 至嘉祐末하여 號稱多士하니 歐陽子之功이 爲多라 嗚呼라 此豈人力也哉아 非天이면 其孰能使之리오
歐陽子沒十有餘年에 士始爲新學하여 以佛老之似로 亂周孔之實하니 識者憂之러니 賴天子明聖하사 詔修取士法하여 風厲學者하여 專治孔氏하고 黜異端하니 然後風俗一變하여 考論師友淵源所自하여 復知誦習歐陽子之書라 予得其詩文七百六十六篇於其子棐하고 乃次而論之曰 歐陽子論大道는 似韓愈하고 論事는 似陸贄하고 記事는 似司馬遷하고 詩賦는 似李白이라하노니 此非予言也요 天下之言也니라 歐陽子는 諱脩요 字永叔이니 旣老에 自謂六一居士云이라
三槐堂銘
 
 
蘇軾
 
天可必乎아 賢者不必貴요 仁者不必壽니라 天不可必乎아 仁者必有後니라 二者에 將安取衷哉오 吾聞之하니 申包胥曰 人衆者는 勝天이요 天定이면 亦能勝人이라하니 世之論天者皆不待其定而求之라
故로 以天爲茫茫하여 善者以怠하고 惡者以肆하니 盜跖之壽와 孔顔之厄은 此皆天之未定者也라 松柏이 生於山林하여 其始也에 困於蓬蒿하고 厄於牛羊이라가 而其終也에 貫四時 閱千歲而不改者는 其天이 定也라 善惡之報가 至於子孫이면 則其定也久矣니 吾以所見所聞而考之컨대 其可必也審矣로다
國之將興에 必有世德之臣이 厚施而不食其報하나니 然後其子孫이 能與守文太平之主로 共天下之福하나니라 故兵部侍郞晉國王公이 顯於漢周之餘하여 歷事太祖太宗하여 文武忠孝하니 天下望以爲相이로되 而公卒以直道로 不容於時하니라 蓋嘗手植三槐於庭曰 吾子孫에 必有爲三公者라하더니 已而요 其子魏國文正公이 相眞宗皇帝於景德祥符之間하여 朝廷淸明 天下無事之時에 享其福祿榮名者 十有八年이라
今夫寓物於人하여 明日而取之라도 有得有否어늘 而晉公이 修德於身하여 責報於天하여 取必於數十年之後호되 如持左契하여 交手相付하니 吾以是로 知天之果可必也로라
 
吾不及見魏公이요 而見其子懿敏公하니 以直諫으로 事仁宗皇帝하여 出入侍從將帥三十餘年이로되 位不滿其德하니 天將復興王氏也歟아 何其子孫之多賢也오 世有以晉公으로 比李棲筠者하니 其雄才直氣가 眞不相上下요 而棲筠之子吉甫와 其孫德裕의 功名富貴가 略與王氏等이나 而忠信仁厚는 不及魏公父子하니 由此觀之컨대 王氏之福이 蓋未艾也로다 懿敏公之子鞏이 與吾遊하니 好德而文하여 以世其家일새 吾是以錄之 하노라 銘曰
 
嗚呼休哉라 魏公之業이 與槐俱萌이로다 封植之功이 必世乃成이라 旣相眞宗하니 四方砥平이요 歸視其家하니 槐陰滿庭이로다 吾儕小人이라 朝不謀夕하여 相時射利하니 皇恤厥德이리오 庶幾僥倖하여 不種而穫이라 不有君子면 其何能國이리오 王城之東은 晉公所廬니 鬱鬱三槐여 惟德之符로다 嗚呼休哉라
表忠觀碑
 
 
蘇軾
 
熙寧十年十月戊子에 資政殿大學士右諫議大夫知杭州軍事臣抃은 言하노이다 故吳越國王錢氏墳墓와 及其父祖妃夫人子孫之墳이 在錢塘者二十有六이요 在臨安者十有一이로되 皆蕪廢不治하니 父老過之에 有流涕者니이다
謹按故武肅王鏐가 始以鄕兵으로 破走黃巢하여 名聞江淮하고 復以八郡兵으로 討劉漢宏하고 幷越州하여 以奉董昌而自居於杭이러니 及昌以越叛에 則誅昌而幷越하여 盡有浙東西之地하여 傳其子文穆王元瓘하고 至其孫忠獻王仁佐하여 遂破李景兵하여 取福州하고 而仁佐之弟忠懿王俶이 又大出兵攻景하여 以迎周世宗之師러니 其後에 卒以國入覲하여 三世四王이 與五代로 相終始하니이다
天下大亂에 豪傑蜂起하니 方是時에 以數州之地로 盜名字者가 不可勝數러니 旣覆其族하고 延及于無辜之民하여 罔有孑遺어늘 而吳越은 地方千里요 帶甲十萬이요 鑄山煮海하고 象犀珠玉之富가 甲于天下라 然이나 終不失臣節하여 貢獻이 相望於道라 是以로 其民이 至於老死히 不識兵革하고 四時嬉遊하여 歌鼓之聲이 相聞하여 至于今不廢하니 其有德於斯民이 甚厚니이다
皇宋이 受命에 四方僭亂이 以次削平이나 西蜀 江南은 負其險遠하여 兵至城下하여 力屈勢窮然後束手하고 而河東劉氏는 百戰守死하여 以抗王師하여 積骸爲城하고 釃血爲池하여 竭天下之力하여 僅乃克之어늘 獨吳越은 不待告命하고 封府庫 籍郡縣하여 請吏于朝하여 視去其國을 如去傳舍하니 其有功於朝廷이 甚大니이다
昔에 竇融이 以河西歸漢이어늘 光武詔右扶風하여 修理其父祖墳塋하고 祠以大牢하니 今錢氏功德이 殆過於融이어늘 而未及百年에 墳墓不治하여 行道傷嗟하니 甚非所以勸獎功臣 慰答民心之義也니이다
臣은 願以龍山廢佛寺曰妙因院者로 爲觀하고 使錢氏之孫爲道士曰自然者로 居之하여 凡墳墓之在錢塘者는 以付自然하고 其在臨安者는 以付其縣之淨土寺僧曰道微하여 歲各度其徒一人하여 使世掌之하고 籍其地之所入하여 以時修其祠宇하며 封植其草木하되 有不治者어든 縣令丞이 察之하여 甚者는 易其人이면 庶幾永終不墜하여 以稱朝廷待錢氏之意리이다 臣抃은 昧死以聞하노이다 制曰可라하고 其妙因院을 改賜名曰 表忠觀이라하니라 銘曰
 
天目之山에 苕水出焉하니 龍飛鳳舞하여 萃于臨安이라
篤生異人하여 絶類離群하니 奮挺大呼에 從者如雲이라
仰天誓江하니 月星晦蒙이요 强弩射潮하니 江海爲東이라
殺宏誅昌하여 奄有吳越하니 金券玉冊이요 虎符龍節이라
大城其居하여 包絡山川하니 左江右湖요 控引島蠻이라
歲時歸休하여 以燕父老하니 曄如神人이 玉帶毬馬라
四十一年을 寅畏小心하여 厥篚相望하니 大貝南金이라
五朝昏亂하여 罔堪託國일새 三王相承하여 以待有德이러니
旣獲所歸하니 弗謀弗咨하고 先王之志를 我維行之라
 
天祚忠厚하여 世有爵邑하니 允文允武하여 子孫千億이라
帝謂守臣하시되 治其祠墳하여 毋俾樵牧하여 愧其後昆하라
龍山之陽에 巋然新宮이니 匪私于錢이라 惟以勸忠이니라
非忠無君이요 非孝無親이니 凡百有位는 視此刻文하라
凌虛臺記
 
蘇軾
臺於南山之下하니 宜若起居飮食이 與山接也라 四方之山이 莫高於終南이요 而都邑之最麗者가 莫近於扶風이라 以至近으로 求最高면 其勢必得이어늘 而太守之居에 未嘗知有山焉하니 雖非事之所以損益이나 而物理有不當然者니 此凌虛之所爲築也라
 
方其未築也에 太守陳公이 杖屨逍遙於其下러니 見山之出於林木之上者가 纍纍然如人之旅行於墻外而見其髻也하고 曰是必有異라하고 使工鑿其前하여 爲方池하고 以其土築臺하여 出於屋之簷而止하니 然後人之至於其上者가 怳然不知臺之高하고 而以爲山之踊躍奮迅而出也라 公曰 是宜名凌虛라하고 以告其從事蘇軾而俾爲之記하니라
 
軾이 復於公曰 物之廢興成毁를 不可得而知也라 昔者에 荒草野田이 霜露之所蒙翳요 狐虺之所竄伏이니 方是時에 豈知有凌虛臺耶아 廢興成毁가 相尋於無窮하니 則臺之復爲荒草野田을 皆不可知也라 嘗試與公으로 登臺而望하니 其東則秦穆公之祈年槖泉也요 其南則漢武之長楊五柞이요 而其北則隋之仁壽와 唐之九成也라 計其一時之盛컨댄 宏傑詭麗하고 堅固而不可動者가 豈特百倍於臺而已哉아 然而數世之後에 欲求其彷彿이나 而破瓦頹垣이 無復存者하여 旣已化爲禾黍荊棘과 丘墟隴畝矣어든 而況於此臺歟아 夫臺猶不足恃以長久어든 而況於人事之得喪이 忽往而忽來者歟아 而或者欲以夸世而自足則過矣라 蓋世有足恃者而不在乎臺之存亡也니이다
旣已言於公하고 退而爲之記하노라
李君山房記
 
 
蘇軾(子瞻)
 
象犀珠玉珍怪之物은 有悅於人之耳目이로되 而不適於用하며 金石草木絲麻五穀六材는 有適於用이로되 而用之則弊하고 取之則竭하나니 悅於人之耳目而適於用하며 用之而不弊하고 取之而不竭하여 賢不肖之所得이 各因其才하고 仁智之所見이 各隨其分하여 才分不同이나 而求無不獲者는 惟書乎인저
自孔子聖人으로도 其學이 必始於觀書라 當是時하여 惟周之柱下史老聃이 爲多書하고 韓宣子適魯然後에 見易象與魯春秋하고 季札이 聘於上國然後에 得聞詩之風雅頌하고 而楚獨有左史倚相이 能讀三墳五典八索九丘하니 士之生於是時하여 得見六經者蓋無幾하니 其學이 可謂難矣로되 而皆習於禮樂하고 深於道德하여 非後世君子所及이니라
自秦漢以來로 作者益衆하고 紙與字畫이 日趨於簡便하여 而書益多하여 世莫不有라 然學者益以苟簡은 何哉오
余猶及見老儒先生이 自言 其少時에 欲求史記漢書而不可得이요 幸而得之면 皆手自書하여 日夜誦讀하여 惟恐不及이러니 近世市人이 轉相模刻하여 諸子百家之書가 日傳萬紙라 學者之於書에 多且易致如此하니 其文辭學術이 當倍蓰於昔人이어늘 而後生科擧之士가 皆束書不觀하고 遊談無根하니 此又何也오
 
余友李公擇이 少時에 讀書於廬山五老峰下白石菴之僧舍러니 公擇旣去에 而山中之人이 思之하여 指其所居하여 爲李氏山房이라하니 藏書凡九千餘卷이라 公擇이 旣已涉其流하고 探其源하며 採剝其華實하고 而咀嚼其膏味하여 以爲己有하여 發於文辭하고 見於行事하여 以聞名於當世矣로되 而書顧自如也하여 未嘗少損하니 將以遺來者하여 供其無窮之求하여 而各足其才分之所當得이라 是以로 不藏於家하고 而藏於故所居之僧舍하니 此는 仁者之心也라
余旣衰且病하여 無所用於世하니 惟得數年之閑하여 盡讀其所未見之書요 而廬山은 固所願遊而不得者니 蓋將老焉하여 盡發公擇之藏하여 拾其遺棄以自補면 庶有益乎인저 而公擇이 求余文以爲記어늘 乃爲一言하여 使來者로 知昔之君子見書之難하고 而今之學者有書而不讀이 爲可惜也하노라
喜雨亭記
蘇軾
亭以雨名은 志喜也라 古者有喜면 卽以名物하니 示不忘也라 周公得禾하여 以名其書하시고 漢武得鼎하여 以名其年하고 叔孫勝敵하여 以名其子하니 其喜之大小不齊하나 其示不忘은 一也라
予至扶風之明年에 始治官舍하여 爲亭於堂之北而鑿池其南하고 引流種樹하여 以爲休息之所러니 是歲之春에 雨麥於岐山之陽하니 其占이 爲有年이라 旣而요 彌月不雨하니 民方以爲憂러니 越三日乙卯에 乃雨하고 甲子에 又雨호되 民以爲未足이러니 丁卯에 大雨하여 三日乃止라 官吏相與慶於庭하고 商賈相與歌於市하고 農夫相與抃於野하여 憂者以樂하고 病者以喜어늘 而吾亭이 適成이라
於是에 擧酒於亭上하여 以屬客而告之曰 五日不雨可乎아 曰五日不雨則無麥하리라 十日不雨可乎아 曰十日不雨則無禾하리라 無麥無禾하면 歲且荐饑하여 獄訟繁興하고 而盜賊滋熾하리니 則吾與二三子로 雖欲優遊以樂於此亭이나 其可得耶아 今天이 不遺斯民하사 始旱而賜之以雨하여 使吾與二三子로 得相與優遊以樂於此亭者는 皆雨之賜也니 其又可忘耶아 旣以名亭하고 又從而歌之曰
使天而雨珠라도 寒者不得以爲襦요 使天而雨玉이라도 飢者不得以爲粟이니 一雨三日이 伊誰之力고 民曰太守라하니 太守不有하고 歸之天子라 天子曰不然하다하시고 歸之造物하시니 造物이 不自以爲功하고 歸之太空하니 太空은 冥冥하여 不可得而名이라 吾以名吾亭하노라
四菩薩閣記
 
 
蘇軾
 
始吾先君이 於物에 無所好하여 燕居如齋하며 言笑有時로되 顧嘗嗜畵하시니 弟子門人이 無以悅之면 則爭致其所嗜하여 庶幾一解其顔이라 故로 雖爲布衣나 而致畵는 與公卿等하시니라
長安에 有故藏經龕하니 唐明皇帝所建이라 其門이 四達八板에 皆吳道子畵라 陽爲菩薩하고 陰爲天王하니 凡十有六軀라 廣明之亂에 爲賊所焚하니 有僧忘其名이 於兵火中에 拔其四板以逃러니 旣重不可負요 又迫於賊이라 恐不能皆全일새 遂竅其兩板以受荷하여 西奔於岐而託死於烏牙之僧舍하니 板留於是가 百八十年矣라
客有以錢十萬으로 得之하여 以示軾者어늘 軾이 歸其直而取之하여 以獻諸先君하니 先君之所嗜가 百有餘品이러니 一旦에 以是四板爲甲이라 治平四年에 先君이 沒于京師하시니 軾이 自汴入淮하여 泝于江하여 載是四板以歸하니라
旣免喪에 所嘗與往來浮屠人惟簡이 誦其師之言하여 敎軾爲先君捨施하되 必所甚愛와 與所不忍捨者라하여늘 軾用其說하여 思先君之所甚愛와 軾之所不忍捨者하니 莫若是板이라 故로 遂以與之하고 且告之曰
此는 明皇帝之所不能守而焚於賊者也니 而況於余乎아 余視天下之蓄此者多矣로되 有能及三世者乎아 其始求之엔 若不及하고 旣得엔 惟恐失之로되 而其子孫이 不以易衣食者鮮矣라 余自度不能長守此也일새 是以로 予子하노니 子將何以守之오
簡曰 吾以身守之하여 吾眼은 可矐이요 吾足은 可斮이라도 吾畵는 不可奪이니 若是면 足以守之歟아 軾曰 未也라 足以終子之世而已니라 簡曰 吾又盟於佛而以鬼守之하여 凡取是者와 與凡以是予人者를 其罪如律케하리니 若是면 足以守之歟아 軾曰 未也라 世有無佛而蔑鬼者하니라 然則何以守之오 曰 軾之以是予子者는 凡以爲先君捨也니 天下에 豈有無父之人歟아 其誰忍取之리오 若其聞是而不悛하여 不惟一觀而已요 將必取之然後爲快면 則其人之賢愚가 與廣明之焚此者로 一也라 全其子孫이 難矣리니 而況能久有此乎아 且夫不可取者는 存乎子하고 取不取者는 存乎人하니 子勉之矣어다 爲子之不可取者而已니 又何知焉이리오
旣以予簡하니 簡以錢百萬으로 度爲閣以藏之하고 且畵先君像其上이어늘 軾이 助錢二十之一하여 期以明年冬에 閣成하니라 熙寧元年十月日에 記하노라

田表聖奏議序
 
 
蘇軾
 
故諫議大夫贈司徒田公表聖의 奏議十篇이라 嗚呼라 田公은 古之遺直也라 其盡言不諱는 蓋自敵以下로도 受之에 有不能堪者어든 而況於人主乎아 吾以是로 知二宗之聖也로라
自太平興國以來로 至于咸平히 可謂天下大治 千載一時矣어늘 而田公之言이 常若有不測之憂가 近在朝夕者는 何哉오 古之君子는 必憂治世而危明主하나니 明主는 有絶人之資요 而治世는 無可畏之防일새라 夫有絶人之資면 必輕其臣하고 無可畏之防이면 必易其民하나니 此君子之所甚懼者也라
方漢文時에 刑措不用하고 兵革不試어늘 而賈誼之言曰 天下有可長太息者하며 有可流涕者하며 有可痛哭者라호되 後世에 不以是少漢文하고 亦不以是甚賈誼하니 由此觀之컨댄 君子之遇治世而事明主는 法當如是也니라
誼雖不遇나 而其所言이 略已施行이러니 不幸早世하여 功業이 不著於時라 然誼嘗建言하여 使諸侯王子孫으로 各以次受分地러니 文帝未及用이라가 歷孝景至武帝하여 而主父偃이 擧行之하여 漢受以安이라
今公가 之言이 十未用五六也하니 安知來世不有若偃者 擧而行之歟아 願廣其書於世하면 必有與公合者리니 此亦忠臣孝子之志也니라

錢塘勤上人詩集序
 
 
蘇軾
 
昔에 翟公罷廷尉에 賓客無一人至者러니 其後復用에 賓客欲往이어늘 翟公이 大書其門曰 一死一生에 乃知交情이요 一貧一富에 乃知交態요 一貴一賤에 交情乃見이라하니 世以爲口實이라 然이나 余嘗薄其爲人하여 以爲客則陋矣어니와 而公之所以待客者는 獨不爲小哉아호라
故太子太師歐陽公이 好士하여 爲天下第一이라 士有一言中於道면 不遠千里而求之하여 甚於士之求公이라 以故로 盡致天下豪傑하여 自庸衆人으로 以顯於世者固多矣라 然이나 士之負公者亦時有之라 蓋嘗慨然太息하여 以人之難知로 爲好士者之戒하니 意公之於士에 自是小倦이러니 而其退老於潁水之上할새 余往見之하니 則猶論士之賢者하여 惟恐其不聞於世也하고 至於負者하여는 則曰 是罪在我요 非其過라하시니라
翟公之客은 負公之於死生貴賤之間이요 而公之士는 叛公於瞬息俄頃之際어늘 翟公은 罪客호되 而公은 罪己하여 與士益厚하니 賢於古人이 遠矣라
公不喜佛老로되 其徒有治詩書學仁義之說者면 必引而進之라 佛者惠勤이 從公遊三十餘年하니 公嘗稱之爲聰明才智有學問者요 尤長於詩라 公薨於汝陰이어늘 余哭之於其室하고 其後見之에 語及於公이면 未嘗不涕泣也라 勤은 固無求於世요 而公은 又非有德於勤者니 其所以涕泣不忘이 豈爲利哉아 余然後에 益知勤之賢하니 使其得列於士大夫之間而從事於功名이면 其不負公也審矣라
熙寧七年에 予自錢塘으로 將赴高密할새 勤이 出其詩若干篇하여 求予文以傳於世하니 余以爲 詩는 非待文而傳者也어니와 若其爲人之大略은 則非斯文이면 莫之傳也하노라
稼說送同年張琥
 
蘇軾
 
蓋嘗觀於富人之稼乎아 其田이 美而多하고 其食이 足而有餘하니 其田이 美而多면 則可以更休而地力得完이요 其食이 足而有餘면 則種之常不後時하고 而斂之常及其熟이라 故로 富人之稼는 常美하여 少秕而多實하고 久藏而不腐하나니
今吾는 十口之家而共百畝之田하여 寸寸而取之하고 日夜而望之하여 鋤耰銍刈가 相尋於其上者如魚鱗而地力竭矣요 種之常不及時하고 而斂之常不待其熟하니 此豈能復有美稼哉아
古之人이 其才非有大過今之人也라 其平居에 所以自養而不敢輕用하여 以待其成者가 閔閔焉如嬰兒之望長也하여 弱者를 養之하여 以至於剛하고 虛者를 養之하여 以至於充하여 三十而後仕하고 五十而後爵이라 伸於久屈之中하고 而用於至足之後하며 流於旣溢之餘하고 而發於持滿之末하니 此古人之所以大過人而今之君子所以不及也라
吾少也에 有志於學이러니 不幸而早得與吾子同年하니 吾子之得이 亦不可謂不早矣라 吾今雖欲自以爲不足이나 而衆且妄推之矣라 嗚呼라 吾子其去此而務學也哉인저 博觀而約取하고 厚積而薄發이니 吾告吾子 止於此矣로라 子歸過京師而問焉이면 有曰轍子由者하리니 吾弟也니 其亦以是語之하라
王者不治夷狄論
 
 
蘇軾
 
論曰 夷狄은 不可以中國之治로 治也라 譬若禽獸然하여 求其大治면 必至於大亂하나니 先王이 知其然이라 是故로 以不治治之하시니 治之以不治者는 乃所以深治之也니라 春秋에 書公會戎于潛이라하니 何休曰 王者不治夷狄하니 錄戎은 來者不拒요 去者不追也라하니라
夫天下之至嚴而用法之至詳者는 莫過於春秋하니 凡春秋之書公 書侯 書字 書名하여 其君이 得爲諸侯하고 其臣이 得爲大夫者는 擧皆齊晉也요 不然則齊晉之與國也며 其書州 書國 書氏 書人하여 其君이 不得爲諸侯하고 其臣이 不得爲大夫者는 擧皆秦楚也요 不然則秦楚之與國也라
夫齊晉之君이 所以治其國家하고 擁衛天子而愛養百姓者가 豈能盡如古法哉아 蓋亦出於詐力而參之以仁義니 是齊晉亦未能純爲中國也라 秦楚者亦非獨貪冒無恥하여 肆行而不顧也요 蓋亦有秉道行義之君焉하니 是秦楚亦未至於純爲夷狄也라
齊晉之君이 不能純爲中國이어늘 而春秋之所與者常嚮焉하여 有善則汲汲而書之하여 惟恐其不得聞於後世하고 有過則多方而開赦之하여 惟恐其不得爲君子하며 秦楚之君이 未至於純爲夷狄이어늘 而春秋之所不與者常在焉하여 有善則累而後進하고 有惡則略而不錄하여 以爲不足錄也하니 是는 非獨私於齊晉而偏疾於秦楚也라 以見中國之不可以一日背요 而夷狄之不可以一日嚮也니라 其不純者도 不足以寄其褒貶하니 則其純者는 可知矣라 故로 曰天下之至嚴而用法之至詳者가 莫如春秋라하노라
夫戎者는 豈特如秦楚之流入於夷狄而已哉리오 然而春秋書之曰 公會戎于潛이라하여 公無所貶而戎爲可會는 是獨何歟오 夫戎之不能以會禮會公이 亦明矣니 此學者之所以深疑而求其說也라 故로 曰 王者不治夷狄하니 錄戎은 來者不拒요 去者不追也라하니라
夫以戎之不可以化誨懷服也로 彼其不悍然執兵以與我從事於邊鄙도 固亦幸矣어늘 又況知有所謂會者而欲行之하니 是豈不足以深嘉其意乎아 不然이요 將深責其禮면 彼將有所不堪하여 而發其暴怒하리니 則其禍大矣라 仲尼深憂之하사 故로 因其來而書之以會하사 曰若是足矣라하시니 是는 將以不治深治之也라 由是觀之컨대 春秋之疾戎狄者는 非疾純戎狄也요 疾其以中國而流入於戎狄者也니라

范增論
 
 
蘇軾
 
漢用陳平計하여 間疏楚君臣하니 項羽疑范增與漢有私하여 稍奪其權한대 增이 大怒曰 天下事大定矣니 君王은 自爲之하라 願賜骸骨歸卒伍라하더니 未至彭城하여 疽發背死하니라
蘇子曰 增之去 善矣라 不去면 羽必殺增하리니 獨恨其不蚤耳로라 然則當以何事去오 增勸羽殺沛公이어늘 羽不聽하여 終以此失天下하니 當於是去邪아 曰否라 增之欲殺沛公은 人臣之分也요 羽之不殺은 猶有君人之度也니 增이 曷爲以此去哉리오 易曰 知幾其神乎인저하고 詩曰 相彼雨雪한대 先集維霰이라하니 增之去는 當於羽殺卿子冠軍時也라
陳涉之得民也는 以項燕扶蘇요 項氏之興也는 以立楚懷王孫心이며 而諸侯叛之也는 以弑義帝라 且義帝之立에 增爲謀主矣니 義帝之存亡이 豈獨爲楚之盛衰리오 亦增之所與同禍福也니 未有義帝亡而增獨能久存者也라 羽之殺卿子冠軍也는 是弑義帝之兆也요 其弑義帝는 則疑增之本也니 豈必待陳平哉아 物必先腐也而後에 蟲生之하고 人必先疑也而後에 讒入之하나니 陳平이 雖智나 安能間無疑之主哉리오
吾嘗論 義帝는 天下之賢主也라 獨遣沛公入關而不遣項羽하고 識卿子冠軍於稠人之中하여 而擢以爲上將하니 不賢而能如是乎아 羽旣矯殺卿子冠軍하니 義帝必不能堪하리니 非羽弑帝면 則帝殺羽는 不待智者而後知也라 增이 始勸項梁立義帝하여 諸侯以此服從하니 中道而弑之는 非增之意也라 夫豈獨非其意리오 將必力爭而不聽也리라 不用其言而殺其所立하니 羽之疑增이 必自此始矣라
方羽殺卿子冠軍에 增與羽比肩而事義帝하여 君臣之分이 未定也하니 爲增計者컨대 力能誅羽則誅之요 不能則去之면 豈不毅然大丈夫也哉아 增이 年已七十이라 合則留요 不合則去어늘 不以此時明去就之分하고 而欲依羽以成功名하니 陋矣로다 雖然이나 增은 高帝之所畏也라 增不去면 項羽不亡하리니 嗚呼라 增亦人傑也哉인저

上樞密韓太尉書
 
 
蘇轍(子由)
 
轍이 生好爲文하여 思之至深하여 以爲文者는 氣之所形이라 然이나 文不可以學而能이요 氣可以養而致라 孟子曰 我는 善養吾浩然之氣라하시니 今觀其文章이 寬厚宏博하여 充乎天地之間하여 稱其氣之小大하며 太史公은 行天下하여 周覽四海名山大川하고 與燕趙間豪俊交遊라 故로 其文이 疏蕩하여 頗有奇氣하니 此二子者는 豈嘗執筆하여 學爲如此之文哉리오 其氣充乎其中而溢乎其貌하며 動乎其言而見乎其文而不自知也라
轍은 生十有九年矣라 其所居家與遊者가 不過其隣里鄕黨之人이요 所見이 不過數百里之間이라 無高山大野可登覽以自廣이요 百氏之書를 雖無所不讀이나 然皆古人之陳迹이니 不足激發其志氣일새 恐遂汨沒이라 故로 決然捨去하고 求天下之奇聞壯觀하여 以知天地之廣大호라
過秦漢之故都하여 恣觀終南嵩華之高하고 北顧黃河之奔流하여 慨然想見古人之豪傑하며 至京師하여 仰觀天子宮闕之壯과 與倉廩府庫城池苑囿之富且大也而後에 知天下之巨麗요 見翰林歐陽公하여 聽其議論之宏辨하고 觀其容貌之秀偉하며 與其門人賢士大夫遊而後에 知天下之文章이 聚乎此也로라
太尉以才略으로 冠天下하니 天下之所恃以無憂요 四夷之所憚而不敢發이라 入則周公召公이요 出則方叔召虎어늘 而轍也未之見焉이로라 且夫人之學也에 不志其大면 雖多而奚爲리오 轍之來也에 於山에 見終南嵩華之高하고 於水에 見黃河之大且深하고 於人에 見歐陽公이로되 而猶以未見太尉也라 故로 願得觀賢人之光耀하여 聞一言以自壯하니 然後可以盡天下之大觀而無憾者矣라
轍이 年少하여 未能通習吏事라 嚮之來는 非有取於升斗之祿이러니 偶然得之하니 非其所樂이라 然이나 幸得賜歸待選하여 使得優游數年之間이면 將以益治其文하고 且學爲政하리니 太尉苟以爲可敎而辱敎之면 又幸矣리이다

袁州學記
 
 
李覯(泰伯)
 
皇帝二十有三年에 制詔州縣立學하니 惟時守令이 有哲有愚라 有屈力殫慮하여 祗順德意하고 有假宮借師하여 苟具文書하여 或連數城에 亡誦絃聲하니 倡而不和하여 敎尼不行하니라
三十有二年에 范陽祖君無擇이 知袁州라 始至에 進諸生하여 知學宮闕狀하고 大懼人材放失하고 儒效闊疏하여 無以稱上意旨러니 通判穎川陳君侁이 聞而是之하여 議以克合이라 相舊夫子廟하니 陿隘하여 不足改爲일새 乃營治之東하니 厥土燥剛하고 厥位面陽하고 厥材孔良하며 瓦甓黝堊丹漆이 擧以法故하고 殿堂室房廡門이 各得其度라 生師有舍하고 庖廩有次하며 百爾器備를 竝手偕作하니 工善吏勤하여 晨夜展力하여 越明年에 成하여 舍菜且有日이라
旴江李覯諗于衆曰 惟四代之學은 考諸經可見已라 秦以山西로 鏖六國하여 欲帝萬世러니 劉氏一呼에 而關門不守하여 武夫健將이 賣降恐後는 何耶오 詩書之道廢하여 人惟見利而不聞義焉耳일새라 孝武乘豊富하고 世祖出戎行하여 皆孶孶學術하니 俗化之厚가 延于靈獻하여 草茅危言者가 折首而不悔하고 功烈震主者는 聞命而釋兵하여 群雄이 相視하여 不敢去臣位를 尙數十年하니 敎道之結人心이 如此라
今代遭聖神하고 爾袁이 得賢君하여 俾爾由庠序하여 踐古人之迹하니 天下治則譚禮樂以陶吾民하고 一有不幸이면 尤當仗大節하여 爲臣死忠하며 爲子死孝하여 使人有所賴요 且有所法이니 是惟朝家敎學之意라 若其弄筆墨하여 以徼利達而已인댄 豈徒二三子之羞리오 抑亦爲國者之憂니라
藥戒
 
 
張耒(文潛)
 
客有病痞하여 積於其中者가 伏而不能下하고 自外至者가 捍而不得納이라 從醫而問之하니 曰 非下之면 不可라하여늘 歸而飮其藥하니 旣飮而暴下하여 不終日而向之伏者散而無餘하고 向之捍者柔而不支하여 焦鬲이 導達하고 呼吸이 開利하여 快然若未始有疾者러니 不數日에 痞復作이어늘 投以故藥하니 其快然也亦如初라
自是로 不逾月而痞五作五下하여 每下輒愈나 然客之氣一語而三引하며 體不勞而汗하고 股不步而慄하여 膚革은 無所耗於前이로되 而其中은 苶然하여 莫知其所來하니 嗟夫라 心痞는 非下면 不可已니 予從而下之는 術未爽也어늘 苶然은 獨何歟오
聞楚之南에 有良醫焉하고 往而問之한대 醫曰 子無歎是然者也어다 凡子之術이 固爲是苶然也니라 坐하라 吾語女하리라 天下之理가 有甚快於予心者는 其末에 必有傷이니 求無傷於終者인댄 則初無望於快吾心이니라 夫陰伏而陽蓄하여 氣與血이 不運而爲痞하여 橫乎子之胸中者가 其累大矣니 擊而去之호되 不須臾而除甚大之累는 和平之物이 不能爲也요 必將擊搏震撓而後可리라 夫人之和氣는 沖然而甚微하여 泊乎其易危하니 擊搏震撓之功이 未成에 而子之和가 蓋已病矣라 由是觀之컨댄 則子之痞凡一快者면 子之和 一傷矣니 不終月而快者五면 則子之和平之氣가 不旣索乎아 故로 膚不勞而汗하고 股不步而慄하여 苶然如不可終日也니라 蓋將去子之痞而無害於和乎인댄 子歸하여 燕居三月而後에 予之藥을 可爲也리라
客歸하여 燕居三月에 齋戒而復請之한대 醫曰 子之氣少復矣라하고 取藥而授之曰 服之三月而病少平하고 又三月而少康하고 終是年而復常하리라 且飮藥에 不得亟進하라 客이 歸而行其說이나 然其初에 使人懣然遲之하여 蓋三投藥而三反之也하니라 然日不見其所攻之效로되 較則月異而時不同이러니 蓋終歲에 疾平하니라
客謁醫하여 再拜而謝之하고 坐而問其故한대 醫曰 是醫國之說也니 豈特醫之於疾哉리오 子獨不見夫秦之治乎아 民이 悍而不聽令하며 惰而不勤事하며 放而不畏法하여 令之不聽하고 治之不變하니 則秦之民이 嘗痞矣라 商君이 見其痞也하고 厲以刑法하며 威以斬伐하여 悍戾猛鷙하여 不貸毫髮하고 痛剗而力鋤之하니 於是乎秦之政이 如建瓴하여 流蕩四達하여 無敢或拒하니 而秦之痞 嘗一快矣라 自孝公으로 以至二世也에 凡幾痞而幾快矣乎아 頑者已圮하고 强者已柔나 而秦之民이 無歡心矣라 故로 猛政一快者는 懽心一亡이니 積快而不已하여 而秦之四支枵然하여 徒有其物而已라 民心日離而君孤立於上이라 故로 匹夫大呼에 不終日而百病皆起하니 秦欲運其手足肩膂나 而漠然不我應矣라 故로 秦之亡者는 是好爲快者之過也니라
昔先王之民이 其初亦嘗痞矣니 先王이 豈不知砉然擊去之以爲速也리오마는 惟其有懼於終也라 故로 不敢求快於吾心이요 優柔而撫存之하여 敎以仁義하고 導以禮樂하여 陰解其亂而除去其滯하여 使其悠然自趨於平安而不自知하니 方其未也에 旁視而懣然者가 有之矣나 然月計之하고 歲察之하면 前歲之俗이 非今歲之俗也라 不擊不搏하여 無所忤逆하니 是以로 日去其戾氣로되 而不嬰其歡心이라 於是에 政成敎達하여 安樂悠久而無後患矣라 是以로 三代之治는 皆更數聖人하여 歷數百年而後俗成하니 則予之藥이 終年而愈疾이 蓋無足怪라 故로 曰天下之理가 有甚快於吾心者는 其末也에 必有傷이니 求無傷於其終인댄 則初無望於快吾心이라하노라 雖然이나 豈獨於治天下哉리오 客이 再拜而記其說하니라

送秦少章序
 
 
張耒(文潛)
 
詩不云乎아 蒹葭蒼蒼하니 白露爲霜이라하니 夫物不受變則材不成하고 人不涉難則智不明하나니라 季秋之月에 天地始肅하여 寒氣欲至하니 方是時하여 天地之間에 凡植物이 出於春夏雨露之餘하여 華澤이 充溢하고 支節이 美茂라가 及繁霜夜零에 旦起而視之하면 如戰敗之軍이 卷旗棄鼓하고 裹瘡而馳하여 吏士無人色하니 豈特如是而已리오 於是에 天地閉塞而成冬이면 則摧敗拉毁之者過半이니 其爲變이 亦酷矣라
然이나 自是로 弱者堅하고 虛者實하고 津者燥하여 皆斂其英華於腹心而各效其成하나니 深山之木이 上撓靑雲하고 下庇千人者도 莫不病焉이어든 況所謂蒹葭者乎아 然匠石操斧하여 以遊山林이라가 一擧而盡之하여 以充棟梁桷杙輪輿輹輻하여 巨細强弱이 無不勝其任者하니 此之謂損之而益이요 敗之而成이요 虐之而樂者 是也라
吾黨에 有秦少章者하니 自余爲大學官時로 以其文章示余하고 愀然告我曰 余家貧하여 奉命大人而勉爲科擧之文也러니 異時에 率其意하여 爲詩章古文하니 往往淸麗奇偉하여 工於擧業이 百倍라하더니 元祐六年에 及第하여 調臨安主簿하니 擧子中第가 可少樂矣로되 而秦子每見余에 輒不樂이어늘 余問其故한대
秦子曰 余는 世之介士也라 性所不樂을 不能爲하고 言所不合을 不能交하고 飮食起居와 動靜百爲를 不能勉以隨人이어늘 今一爲吏에 皆失己而惟物之應하여 少自偃蹇이면 悔禍響至라 異時엔 一身이 資養於父母러니 今則婦子仰食於我하니 欲不爲吏나 又不可得이니 自今以往으로는 如沐漆而求解矣로다
余解之曰 子之前日은 春夏之草木也요 今日之病子者는 蒹葭之霜也라 凡人性이 惟安之求하나니 夫安者는 天下之大患也니 能遷之爲貴라 重耳不十九年於外면 則歸不能霸요 子胥不奔이면 則不能入郢이리니 二子者가 方其覊窮憂患之時하여 陰益其所短而進其所不能者하니 非如學於口耳者之淺淺也라 自今으로 吾子思前之所爲면 其可悔者衆矣요 其所知益加多矣리니 反身而安之면 則行於天下에 無可憚者矣리라 能
推食(퇴사)與人者는 常飢者也요 賜之車馬而辭者는 不畏徒步者也라 苟畏飢而惡步면 則將有苟得之心하리니 爲害不旣多乎아 故로 隕霜不殺者는 物之災也요 逸樂終身者는 非人之福也니라 元祐七年仲春十一日에 書하노라
書五代郭崇韜傳後
 
 
張耒
 
自古大臣이 權勢已隆極하고 富貴已亢滿하여 前無所希하면 則退爲身慮하나니 自非大姦雄包異志와 與夫甚庸駑昏闒茸이면 鮮有不然者라 其爲謀實難하니 不憂思之不深, 計之不工이나 然異日釁之所起는 往往自夫至深至工하나니 是故로 莫若以正이라 夫正者는 操術이 簡而周하고 智者는 爲緖多而拙하니 夫正者는 無所事計也요 行所當然하여 雖怨讐라도 不敢議之어든 況繼之者賢乎아
郭崇韜於五代에 亦聰明權智之士也라 佐莊宗하여 決策滅梁하고 遂一天下러니 自見功高權重하여 姦人議己하고 而莊宗之昏이 爲不足賴也라하여 乃爲自安之計하니 時에 劉氏有寵하여 莊宗이 嬖之라 因請立爲后而中莊宗之欲하고 又結劉氏之援하니 此於劉氏에 爲莫大之恩이요 而莊宗이 日以昏湎하여 內聽婦言하니 其爲計가 宜無如是之良者라 然卒之殺崇韜者는 劉氏也라 使崇韜謬計라도 不過劉氏不能有所助而已니 豈知身死其手哉아 好謀之士는 敗於謀하고 好辯之士는 敗於辯호되 惟道德之士는 爲無窮하나니 而禍福之變을 豈思慮能究之哉아
答李推官書
 
 
張耒
 
南來多事하여 久廢讀書러니 昨送簡人還에 忽辱惠及所作病暑賦及雜詩하니 誦詠愛歎하여 旣有以起竭涸之思하고 而又喜世之學者가 比來稍稍追古人之文章하여 述作體製가 往往已有所到也로라 耒不才라 少時에 喜爲文辭하고 與人遊에 又喜論文字하니 謂之嗜好則可어니와 以爲能文則世自有人하니 決不在我라 足下與耒로 平居飮食笑語에 忘去屑屑이러니 而忽持大軸하여 細書題官位姓名하여 如卑賤之見尊貴하니 此何爲者오 豈妄以耒爲知文이라하여 謬爲恭敬若請敎者乎아 欲持納而貪於愛玩이라 勢不可得捨하니 雖怛然不以自寧이나 而旣辱勤厚일새 不敢隱其所知於左右也로라
足下之文이 可謂奇矣라 捐去文墨常體하고 力爲瓌奇險怪하여 務欲使人讀之에 如見數千歲前科斗(蝌蚪)鳥跡所記絃匏之歌와 鍾鼎之文也라 足下之所嗜者如此하니 固無不善者로되 抑耒之所聞所謂能文者가 豈謂其能奇哉리오 能文者는 固不以能奇爲主也니라
夫文은 何爲而設也오 不知理者는 不能言이요 世之能言者多矣로되 而文者獨傳하니 豈獨傳哉리오 因其能文也而言益工하고 因其言工也而理益明이라 是以로 聖人貴之하시니 自六經으로 下至于諸子百氏, 騷人辯士論述히 大抵皆將以爲寓理之具也라
是故로 理勝者는 文不期工而工하고 理媿者는 巧於粉澤而間隙百出하나니 此猶兩人이 持牒而訟에 直者는 操筆하여 不待累累로되 讀之如破竹하여 橫斜反覆이 自中節目하고 曲者는 雖使假辭於子貢하고 問字於揚雄이라도 如列五味而不能調和하여 食之於口에 無一可愜하니 何況使人玩味之乎아 故로 學文之端은 急於明理하니 夫不知爲文者는 無所復道어니와 如知文而不務理하고 求文之工은 世未嘗有是也니라
夫決水於江河淮海에 水順道而行하여 滔滔汨汨하여 日夜不止하여 衝砥柱하고 絶呂梁하여 放於江湖而納之海하나니 其舒爲淪漣하고 鼓爲濤波하고 激之爲風飇하고 怒之爲雷霆하여 蛟龍魚黿이 噴薄出沒이 是水之奇變也나 而水初豈如此리오 順道而決之하여 因其所遇而變生焉일새니라 溝瀆은 東決而西竭하고 下滿而上虛하니 日夜激之하여 欲見其奇나 彼其所至者는 蛙蛭之玩耳라 江淮河海之水는 理達之文也니 不求奇而奇至矣니 激溝瀆而求水之奇는 此無見於理而欲以言語句讀爲奇之文也니라
六經之文이 莫奇於易하고 莫簡於春秋하니 夫豈以奇與簡爲務哉리오 勢自然耳라 傳曰 吉人之辭는 寡라하니 彼豈惡(오)繁而好寡哉아 雖欲爲繁而不可得也일새라 自唐以來至今에 文人好奇者不一이라 甚者는 或爲缺句斷章하여 使脈理不屬하고 又取古人訓詁의 希(稀)於見聞者하여 衣被而綴合之하여 或得其字하고 不得其句하며 或得其句하고 不得其章하여 反覆咀嚼이라도 卒亦無有하니 此最文之陋也라 足下之文이 雖不若此나 然其意靡靡하여 似主於奇矣라 故로 預爲足下陳之하노니 願無以僕之言質俚而不省也하라
與秦少游書
 
 
陳師道(無己)
 
辱書에 喩以章公이 降屈年德하여 以禮見招라하니 不佞이 何以得此오 豈侯嘗欺之耶아 公卿不下士 尙矣어늘 乃特見於今而親於其身하니 幸孰大焉고 愚雖不足以齒士나 猶當從侯之後하여 順下風而成公之名이로다
然이나 先王之制에 士不傳贄爲臣이면 則不見於王公하나니 夫相見은 所以成禮로되 而其弊必至於自鬻이라 故로 先王이 謹其始以爲之防하여 而爲士者世守焉이라 師道於公에 前有貴賤之嫌하고 後無平生之舊하니 公雖可見이나 禮可去乎아 且公之見招는 公豈以能守區區之禮乎아 若冒昧法義하고 聞命走門이면 則失其所以見招니 公又何取焉가 雖然이나 有一於此하니 幸公之他日에 成功謝事하고 幅巾東歸어든 師道當御款段하고 乘下澤하여 侯公於上東門外하리니 尙未晩也리라

上林秀州書
 
 
陳師道
 
宗周之制에 士見于大夫卿公에 介以厚其別하며 詞以正其名하며 贄以效其情하며 儀以致其敬하여 四者備矣라야 謂之禮成이라 士之相見이 如女之從人하여 有願見之心이나 而無自行之義하여 必有紹介爲之前焉하니 所以別嫌而愼微也라 故로 曰介以厚其別이라 名以擧事하고 詞以道名하나니 名者는 先王所以定民分也니 名正則詞不悖하고 分定則民不犯이라 故로 曰詞以正其名이라
言不足以盡意요 名不可以過情일새 又爲之贄하여 以成其終이라 故로 授受焉에 介以通名하고 擯以將命하니 勤亦至矣로되 然因人而後達也니 禮莫重於自盡이라 故로 祭主於盥하고 婚主於迎하고 賓主於贄라 故曰 贄以效其情이라
誠發于心而諭于身하고 達于容色이라 故로 又有儀焉하니 詞以三請하고 贄以三獻하며 三揖而升하고 三拜而出이니 禮繁則泰요 簡則野니 三者는 禮之中也라 故로 曰儀以致其敬이라 是以로 貴不陵賤하고 下不援上하여 謹其分守하고 順于時命하여 志不屈而身不辱하여 以成其善하나니 當是之世하여 豈特士之自賢이리오 蓋亦有禮爲之節也일새라
夫周之制禮는 其所爲防이 至矣로되 及其晩世에 禮存而俗變하여 猶自市而失身이어든 況於禮之亡乎아 自周之禮亡으로 士知免者寡矣라 世無君子明禮以正之하여 旣相循以爲常하고 而史官이 又載其事라 故로 其弊習而不自知也하나니라
師道는 鄙人也라 然이나 有聞於南豊先生하니 不敢不勉也로라 先生이 謂師道曰 子見林秀州乎아 曰未也로이다 先生曰 行矣어다하시니 師道承命以來하여 謹因先生而請焉하노라
 
 
 
王平甫文集後序
 
 
陳師道
 
歐陽永叔이 謂梅聖兪曰 世謂詩能窮人이라하나 非詩之窮이요 窮則工也라하니라 聖兪以詩名家로되 仕不前人하고 年不後人하니 可謂窮矣라 其同時에 有王平甫者하니 臨川人也라 年過四十에 始名薦書하여 群下士러니 歷年未幾에 復解章綬하고 歸田里하니 其窮이 甚矣로되 而文義蔚然하고 又能於詩라 惟其窮愈甚이라 故로 其得愈多하니 信所謂人窮而後工也로다 雖然이나 天之命物에 用之不全하여 實者不華하고 淵者不陸하니 物之不全은 物之理也라 盡天下之美면 則於富貴에 不得兼而有也니 詩之窮人을 又可信矣로다
方平甫之時에 其志抑而不伸하고 其才積而不發하여 其號位勢力이 不足動人이로되 而人聞其聲하고 家有其書하여 旁行於一時하고 而下達於千世하여 雖其怨敵이라도 不敢議也하니 則詩能達人矣요 未見其窮也로다
夫士之行世에 窮達은 不足論이니 論其所傳而已라 平甫孝悌于家하고 信于友하고 勇於義而好仁하니 不特文之可傳也라 向使平甫用力于世하여 薦聲詩于郊廟하고 施典策於朝廷이라도 而事負其言하고 後戾其前이런들 則幷其可傳而棄之리니 平生之學이 可謂勤矣요 天下之譽가 可謂盛矣어늘 一朝而失之하면 豈不哀哉아
南豊先生이 旣敍其文하여 以詔學者러니 先生之沒에 彭城陳師道가 因而伸之하여 以通于世라 誠愚不敏하니 其能使人後其所利而隆其所棄者耶아 因先生之言하여 以致其志하고 又以自勵云爾라

思亭記
 
陳師道
 
甄은 故徐富家러니 至甄君하여 始以明經敎授하여 鄕稱善人而家益貧하여 更數十歲토록 不克葬이라가 乞貸邑里하여 葬其父母兄弟凡幾喪하니 邑人憐之하여 多助之者라 旣葬에 益樹以木하고 作室其旁而問名於余어늘 余以謂目之所視而思從之하나니 視干戈則思鬪하며 視刀鋸則思懼하며 視廟社則思敬하며 視第家則思安하나니 夫人이 存好惡喜懼之心이면 物至而思는 固其理也라 今夫升高而望松梓하고 下丘壟而行墟墓之間하여 荊棘이 莽然하고 狐兎之迹이 交道하면 其有不思其親者乎아 請名之曰思亭이라하노라
親者는 人之所不忘也니 而君子愼之라 故로 爲墓於郊而封溝之하며 爲廟於家而嘗禘之하며 爲衰爲忌而悲哀之하나니 所以存其思也라 其可忘乎아 雖然이나 自親而下로 至于服盡하니 服盡則情盡이요 情盡則忘之矣라 夫自吾之親而至于忘之者는 遠故也니 此亭之所以作也라 凡君之子孫登斯亭者가 其有忘乎아 因其親하여 以廣其思하면 其有不興乎아
君曰 博哉라 子之言也여 吾其庶乎인저 曰 未也라 賢不肖異思하니 後豈不有望其木하고 思以爲材하며 視其榛棘하고 思以爲薪하며 登其丘墓하고 思發其所藏者乎아 於是에 遽然流涕以泣이어늘 曰 未也라 吾爲君記之하여 使君之子孫誦斯文者로 視其美以爲勸하고 視其惡以爲戒면 其可免乎인저 君이 攬涕而謝曰 免矣라하여늘 遂爲之記하노라
秦少游字敍
 
 
陳師道
 
熙寧元豐之間에 眉蘇公之守徐에 余以民事太守하여 間見如客하니 揚秦子過焉이면 置醴備樂하여 如師弟子라 其時에 余病臥旅中여 聞其行道雍容하여 逆者旋目하고 論說이 偉辨하여 坐者屬耳하니 世以此奇之요 而亦以此疑之하되 惟公이 以爲傑士라
是後數歲에 從吾歸하여 見于廣陵逆旅之家러니 夜半에 語未卒하고 別去하니 余亦以謂當建侯萬里外也로라 元豊之末에 余客東都할새 秦子從東來하니 別數歲矣라 其容이 充然하고 其口隱然이어늘 余驚焉以問하니 秦子曰 往吾少時에 如杜牧之하여 彊志盛氣하여 好大而見奇라 讀兵家書하고 乃與意合하여 謂功譽可立致요 而天下無難事라
顧今二虜有可勝之勢하니 願效至計하여 以行天誅하여 回幽夏之故墟하고 弔唐晉之遺人하여 流聲無窮하고 爲計不朽면 豈不偉哉아 於是에 字以太虛하여 以遺吾志러니 今吾年至而慮易하여 不待蹈險而悔及之하니 願還四方之事하고 歸老邑里를 如馬少游라하여 於是에 字以少游하여 以識吾過로라 嘗試以語公에 又以爲可하니 於子에 何如오
余以謂取善於人하여 以成其身을 君子偉之하나니라 且夫二子는 或進以經世하고 或退以存身하니 可與爲仁矣라 然이나 行者는 難工하고 處者는 易持하니 牧之之智得이 不若少游之拙失矣라 子以倍人之材로 學益明矣어늘 猶屈意於少游하니 豈過直以矯曲耶아 子年益高德益大하면 余將屢驚焉하여 不一再而已也리라 雖然이나 以子之才로 雖不效於世라도 世不捨子하리니 余意子終有萬里行也리라
如愚之愚는 莫宜於世하니 乃當守丘墓保田里하여 力農以奉公上하며 謹身以訓閭巷하여 生稱善人하고 死表於道曰處士陳君之墓니 或者天祚以年하여 見子功遂名成하고 奉身以還에 王侯將相이 高車大馬로 祖行帳飮이어든 於是에 乘庳御駑하고 候子上東門外하여 擧酒相屬하리니 成公知人之名하고 以爲子賀가 蓋自此始니라

子長遊贈蓋邦式
 
 
馬存(子才)
 
予友蓋邦式이 嘗爲予言하되 司馬子長之文章이 有奇偉氣라 切有志於斯文也하노니 子其爲說以贈我하라 予謂子長之文章이 不在書하니 學者每以書求之면 則終身不知其奇하리라 予有史記一部가 在名山大川壯麗可怪之處하니 將與子周遊而歷覽之하면 庶幾乎可以知此文矣리라 子長이 平生喜遊하여 方少年自負之時에 足跡이 不肯一日休하니 非直爲景物役也라 將以盡天下之大觀하여 以助吾氣然後에 吐而爲書니 今於其書觀之하면 則平生之所嘗遊者 皆在焉이라
南浮長淮하고 泝大江하여 見狂瀾驚波와 陰風怒號하여 逆走而橫擊이라 故로 其文이 奔放而浩漫하며 望雲夢洞庭之陂와 彭蠡之瀦가 涵混太虛하고 呼吸萬壑而不見介量이라 故로 其文이 渟滀而淵深하며 見九疑之邈綿과 巫山之嵯峨와 陽臺朝雲과 蒼梧暮煙이 態度無定하여 靡曼綽約하니 春粧은 如濃이요 秋飾은 如薄이라 故로 其文이 姸媚而蔚紆하며 泛沅渡湘하여 弔大夫之魂하고 悼妃子之恨하니 竹上에 猶有斑斑이요 而不知魚腹之骨이 尙無恙乎아 故로 其文이 感憤而傷激하며
北過大梁之墟하여 觀楚漢之戰場하여 想見項羽之喑啞와 高帝之慢罵가 龍跳虎躍하고 千兵萬馬와 大弓長戟이 俱遊而齊呼라 故로 其文이 雄勇猛健하여 使人心悸而膽慄하며 世家龍門하여 念神禹之鬼功하고 西使巴蜀하여 跨劍閣之鳥道하니 上有摩雲之崖요 不見斧鑿之痕이라 故로 其文이 斬截峻拔而不可援躋하며 講業齊魯之都하여 覩夫子之遺風하고 鄕射鄒嶧하여 彷徨乎汶陽洙泗之上이라 故로 其文이 典重溫雅하여 有似乎正人君子之容貌라
凡天地之間萬物之變에 可驚可愕可以娛心하며 使人憂使人悲者를 子長이 盡取而爲文章이라 是以로 變化出沒하여 如萬象供四時而無窮하니 今於其書而觀之면 豈不信哉아 予謂欲學子長之爲文인댄 先學其遊可也니 不知學遊以采奇하고 而欲操觚弄墨하여 組綴腐熟者는 乃其常常耳라
昔에 公孫氏善舞劍에 而學書者得之하여 乃入於神하고 庖丁氏善操刀에 而養生者得之하여 乃極其妙하니 事固有殊類而相感者는 其意同故也라 今天下之絶蹤詭觀이 何以異於昔이리오 子果能爲我遊者乎아 吾欲觀子矣로라 醉把杯酒하여 可以呑江南吳越之淸風하고 拂劍長嘯하여 可以吸燕趙秦隴之勁氣然後에 歸而治文著書면 子畏子長乎아 子長畏子乎아 不然이요 斷編敗冊을 朝吟而暮誦之면 吾不知所得矣로라

家藏古硯銘
 
 
唐庚(子西)
 
硯與筆墨은 蓋氣類也라 出處相近하고 任用寵遇相近也로되 獨壽夭不相近也하여 筆之壽는 以日計하고 墨之壽는 以月計하고 硯之壽는 以世計하니 其故何也오 其爲體也筆最銳하고 墨次之하고 硯은 鈍者也니 豈非鈍者壽而銳者夭乎아
其爲用也筆最動하고 墨次之하고 硯은 靜者也니 豈非靜者壽而動者夭乎아 吾於是에 得養生焉호니 以鈍爲體하고 以靜爲用이니라 或曰 壽夭는 數也니 非鈍銳動靜所制라 借令筆不銳不動이라도 吾知其不能與硯久遠矣로라 雖然이나 寧爲此언정 勿爲彼也리라
銘曰 不能銳라 因以鈍爲體하고 不能動이라 因以靜爲用하나니 惟其然이라 是以能永年이니라
上席侍郞書
 
 
唐庚
 
某備員學校가 三載于此라 在輩流中에 年齒最爲老大하고 詞氣學術이 最爲淺陋하고 敎養訓導之方이 最爲疏拙이로되 所以未卽遂去는 正賴主人以爲重이러니 今閤下還朝하여 曉夕大用하여 爲執政爲宰相爲公爲師리니 此誠門下小子之所願聞이라 然孤宦小官이 遽奪所依하니 此其胸中에 不能無介然者라 日夜思慮하여 求所以補報萬一이로되 而書生門戶가 無有它技일새 因效其所得於古人者하니 惟閤下裁擇하라
某初讀書時에 未習時事라 意謂古之聖賢이 例須建立功名이러니 其後에 涉世益深하고 更事益多하며 攷論前代經史하여 益見首尾하니 乃知古人之心이 本不如此라 舟遇險則有功하고 燭遇夜則有功하고 藥遇病則有功하고 桔橰遇旱則有功하고 戈弩劍戟臨衝兜鍪는 遇戰鬪則有功하니 凡物有功이 悉非得已라 龍蛇雜處而禹有功하고 草木障塞而益有功하고 民不粒食而稷有功하고 天理人倫이 顚倒失次而契有功하고 夷蠻賊寇가 干紀亂治而皐陶有功하니 自此以降으로 不可勝擧라 然皆因時立功이요 非聖賢本意라
伊陟臣扈巫咸이 相太戊에 無它奇功하고 以格上帝乂王家爲功하며 巫賢甘盤傅說이 相祖乙相武丁에 不聞有功이요 以保乂有商爲功하며 君陳이 相成王하고 畢公이 相康王에 不自立功이요 以循周公之業爲功이어늘 後世는 知有功之爲功하고 而不知無功之爲功하니 其去道已遠이요 至謂聖賢有心於功名이라하니 其探聖賢이 亦淺矣로다
天下承平日久하여 綱紀文章이 纖悉備具하여 無有毫髮未盡未便하니 一部周禮를 擧行略遍이요 但不姓姬耳라 竊謂今日에 正當持循法度요 不宜復有增廣建置니 歌呼於吏舍者를 勿問하고 醉吐於車茵者를 勿逐하며 客至에 欲有所開說者어든 飮以醇酒하고 勿聽하며 擇士에 唯取通大體知古誼者하여 用之하면 雖不立功이나 功在其中矣라 某之所得於古人者如此하니 不知其當否也로라 閤下倘以爲然이어든 歸見何丞相하고 其亦以此說告之하라

書洛陽名園記後
 
 
李格非(文叔)
 
洛陽은 處天下之中하여 挾殽黽之阻하고 當秦隴之襟喉하여 而趙魏走集하니 蓋四方必爭之地也라 天下當無事則已어니와 有事則洛陽이 必先受兵이라 余故嘗曰 洛陽之盛衰者는 天下治亂之候也라하노라
方唐貞觀開元之間하여 公卿貴戚이 開館列第於東都者가 號千有餘邸러니 及其亂離에 繼以五季之酷하여 其池塘竹樹를 兵車蹂蹴하여 廢而爲丘墟하고 高亭大榭를 煙火焚燎하여 化而爲灰燼하여 與唐共滅而俱亡하여 無餘處矣라 余故嘗曰 園囿之興廢는 洛陽盛衰之候也라하노라
且天下之治亂을 候於洛陽之盛衰而知하고 洛陽之盛衰를 候於園囿之興廢而得하니 則名園記之作이 予豈徒然哉아 嗚呼라 公卿大夫方進於朝에 放乎以一己之私自爲하여 而忘天下之治忽하고 欲退享此면 得乎아 唐之末路是已니라
愛蓮說
 
 
周惇頤(茂叔)
 
水陸草木之花가 可愛者甚蕃이로되 晉陶淵明은 獨愛菊하고 自李唐來로 世人이 甚愛牧丹하되 予獨愛蓮之出於淤泥而不染하고 濯淸漣而不夭하며 中通外直不蔓不枝하고 香遠益淸하여 亭亭淨植하여 可遠觀而不可褻翫焉이라
予謂菊은 花之隱逸者也요 牧丹은 花之富貴者也요 蓮은 花之君子者也라하노니 噫라 菊之愛는 陶後에 鮮有聞이요 蓮之愛는 同予者何人고 牧丹之愛는 宜乎衆矣로다

太極圖說
 
 
周惇頤
 
無極而太極이니 太極動而生陽하여 動極而靜하고 靜而生陰하여 靜極復動이라 一動一靜이 互爲其根하여 分陰分陽에 兩儀立焉이니라 陽變陰合하여 而生水火木金土하여 五氣順布에 四時行焉하나니 五行은 一陰陽也요 陰陽은 一太極也니 太極은 本無極也라 五行之生也에 各一其性이니 無極之眞과 二五之精이 妙合而凝하여 乾道成男하고 坤道成女하여 二氣交感하여 化生萬物하니 萬物生生而變化無窮焉이니라
惟人也得其秀而最靈하니 形旣生矣에 神發知矣라 五性感動하여 而善惡分하고 萬事出矣니라 聖人이 定之以中正仁義而主靜하사 立人極焉하시니 故로 聖人은 與天地合其德하며 日月合其明하며 四時合其序하며 鬼神合其吉凶하나니 君子는 修之라 吉하고 小人은 悖之라 凶이니라 故로 曰 立天之道는 曰陰與陽이요 立地之道는 曰柔與剛이요 立人之道는 曰仁與義라하고 又曰 原始反終이라 故로 知死生之說이라하니 大哉라 易也여 斯其至矣로다

四勿箴
 
 
程頤(正叔)
 
[視箴] 心兮本虛하니 應物無迹이라 操之有要하니 視爲之則이라 蔽交於前하면 其中則遷하나니 制之於外하여 以安其內니라 克己復禮하면 久而誠矣리라
[聽箴] 人有秉彛는 本乎天性이언마는 知誘物化하여 遂亡其正하나니라 卓彼先覺은 知止有定이라 閑邪存誠하여 非禮勿聽하나니라
[言箴] 人心之動이 因言以宣하나니 發禁躁妄이라야 內斯靜專하나니라 矧是樞機라 興戎出好하나니 吉凶榮辱이 惟其所召니라 傷易則誕하고 傷煩則支하며 己肆物忤하고 出悖來違하나니 非法不道하여 欽哉訓辭하라
[動箴] 哲人은 知幾하여 誠之於思하고 志士는 勵行하여 守之於爲하나니 順理則裕요 從欲惟危니 造次克念하여 戰兢自持하라 習與性成하면 聖賢同歸하리라

西銘
 
 
張載(子厚)
 
乾稱父요 坤稱母라 予玆藐焉이 乃混然中處로다 故로 天地之塞이 吾其體요 天地之帥 吾其性이니 民吾同胞요 物吾與也라 大君者는 吾父母宗子요 其大臣은 宗子之家相也니라 尊高年은 所以長其長이요 慈孤弱은 所以幼吾幼니 聖其合德이요 賢其秀者也며 凡天下疲癃殘疾惸獨鰥寡는 皆吾兄弟之顚連而無告者也니라

 
于時保之는 子之翼也요 樂且不憂는 純乎孝者也라 違曰悖德이요 害仁曰賊이며 濟惡者는 不才요 其踐形은 惟肖者也라 知化則善述其事요 窮神則善繼其志라 不愧屋漏爲無忝이요 存心養性이 爲匪懈라 惡旨酒는 崇伯子之顧養이요 育英才는 穎封人之錫類라 不弛勞而底豫는 舜其功也요 無所逃而待烹은 申生其恭也라 體其受而歸全者는 參乎요 勇於從而順令者는 伯奇也라 富貴福澤은 將厚吾之生也요 貧賤憂戚은 庸玉汝於成也니 存吾順事요 沒吾寧也니라

東銘
 
 
張載
 
戲言은 出於思也요 戲動은 作於謀也라 發於聲하며 見乎四肢어늘 謂非己心이면 不明也요 欲人無己疑면 不能也니라 過言은 非心也요 過動은 非誠也라 失於聲하며 繆迷其四體어늘 謂己當然이면 自誣也요 欲他人己從이면 誣人也니라 或者謂出於心者를 歸咎爲己戲하고 失於思者를 自誣爲己誠하여 不知戒其出汝者하고 反歸咎其不出汝者하여 長傲且遂非하니 不知孰甚焉고

克己銘
 
 
呂大臨(與叔)
 
凡厥有生이 均氣同體어늘 胡爲不仁고 我則有己일새니라 物我旣立에 私爲町畦하여 勝心橫發하여 擾擾不齊니라 大人存誠하여 心見帝則하니 初無吝驕가 作我蟊賊이라 志以爲帥요 氣爲卒徒라 奉辭于天이어니 誰敢侮予아 且戰且徠하여 勝私窒慾하니 昔爲寇讐러니 今則臣僕이라 方其未克엔 窘吾室廬하여 婦姑勃磎어니 安取厥餘리오 亦旣克之면 皇皇四達하여 洞然八荒이 皆在我闥이니라 孰曰天下 不歸吾仁고 癢痾疾痛이 擧切吾身이니 一日至焉이면 莫非吾事라 顔何人哉오 希之則是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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